[Hit 트렌드 읽기] 기술 주고받으며 스핀아웃, 분사...새 시장도 창출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 구멍 뚫린 깔때기 혁신모형은 개방형 혁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내가 발굴한 기술이든, 남이 발굴한 기술이든 상관이 없고, 필요에 따라 팔아치우든지 분사를 하든지, 조인트벤처를 만들든지, 벤처에 지분을 투자하든지 필요에 따른 선택으로 혁신해 가는 시대다. 개방형 혁신은 R&D 연구비가 높아지는데 비해 성과가 보잘 것 없어지며 더 각광받고 있다. Henry Chesbrough, 2004

2019년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역동성은 이 한장의 '개방형 혁신 모형(Open Innovation Model) 이미지가 상징한다. 종전 폐쇄형 혁신 깔때기 모형과 다른 점이라면 깔때기에 숭숭 구멍이 뚫려 유연하게 콜라보레이션 파트너를 찾아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혁신신약의 꿈을 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JP모건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 연구자, 기업, 투자자들은 물론 '기술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과 돈을 가진 벤처캐피탈'은 늘 근원적으로 서로를 그리워한다. JP모건컨퍼런스는 그래서 개방혁신의 아고라(Agora)다.

작년 11월 벤처기업 오스코텍(대표 김정근)이 원천기술로 갖고 있던 레이저티닙은, 그리워하던 연인 유한양행을 만났고, 그 품에서 자라, 다시 얀센바이오텍 품에 안겼다. 개방형 혁신의 사례다. 폐쇄형 모형의 시대였다면 오스코텍이든 유한양행이든 비소세포암 시장을 바라보며 외길을 걸었을 것이다. 7일 유한이 전임상단계 비알콜성간염치료 기술을 수출한 것도 길리아드 입장에선 전형적 개방형 혁신이다.

작년 12월 연구는 않고 개발만 하는 NRDO 기업 브릿지바이오와 대웅제약간 기술 이전도 같은 맥락의 사례다. 브릿지바이오가 한국화학연구원과 성균관대 박석희 교수팀이 공동 발굴한 신약후보물질의 개발권 및 판권을 사들여 '부화'시키다 대웅제약 품에 넘겼다. 대웅제약의 목표나 상황적 필요성에 따라 궤양성 대장염 등 염증성질환치료제 신약 후보물질 BBT-401의 운명도 달라질 터다.

프로젝트 회사를 운용하는 부광약품도 개방형 혁신의 선두 주자. 위암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 판매권리 양도(400억원), 일라이 릴리가 인수한 북미 제약회사 오르카파마 투자이익 환수(330억), 안트로젠 40만주 처분(408억원)이 다 개방형 혁신의 과실들이다. 부광은 2014년 덴마크소재 콘테라파마를 A&D(Acquisition & Development )했다. 연구개발 인력 부족이나 시간 절감, 비용 절감을 위해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을 아예 사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광은 이를 통해 '레보도파'라는 치료제로 파킨슨병을 치료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이상운동증상을 치료하는 JM-010 물질을 확보했다. 조인트벤처 비엔오바이오도 보유하고 있다.

국내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기술 수출이 개방형 혁신의 산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불을 지핀 것은 2015년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수출이 출발점이다. 국내 기술도 팔려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돈의 흐름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이로인해 기술과 돈의 결합이 훨씬 유연해 졌다. 이제 내가, 내 기술로 신약을 만들어 세계시장에서 판매해 독점적 이익을 쟁취하겠다는 전략은 기업혁신 관련 책자에만 존재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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