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기준 일반원칙 중 '경제성' 삭제 우려확산

복지부, 관련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시민단체 "본말전도 정책...의도 미심쩍어"

"비용효과성을 따지지 않고 급여를 적용하는 나라가 있으면 알려달라."

정부가 급여기준 일반원칙에서 '비용효과성' 문구를 삭제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1은 요양급여의 일반원칙, 진찰검사 및 처치수술 기타의 치료, 약제의 지급, 치료재료의 지급, 예방재활, 입원, 가정간호, 의료장비 등 요양급여의 적용기준과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기본원칙이자 가이드라인격인 항목이 '요양급여의 일반원칙'인데, 이중에는 '요양급여는 경제적으로 비용효과적인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한국의 건강보험 보상체계가 비용효과적인 선택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고, 이를 근거로 급여평가나 심사 및 조정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이 문구 전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날까지 의견을 수렴했다. 복지부가 입법예고 당시 제시한 추진배경에는 '예비급여'가 자리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따라 예비급여를 도입하는데, 일부 경제성이 낮아도 건강회복에 잠재적 이득이 있으면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당 문구를 삭제한다고 했다.

복지부 설명처럼 예비급여나 약제 선별급여는 '비용효과적 선택'이라는 일반원칙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비급여나 약제 선별급여가 일반원칙이 아닌 예외적 경로인 점을 감안하면 본 경로에 대한 일반원칙 문구 자체를 삭제하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예비급여 도입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해당 문구를 삭제하지 않고 단서를 추가하면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미심쩍은 개정안"이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복지부 내부에서도 의료계가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이른바 '심평의학'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예비급여 도입을 지렛대 삼아 심사평가원의 급여심사에서 '비용효과적인'이라는 기준을 들어내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개정안에 대해서는 복지부 내부에서조차 합의가 되지 않은 모양새다. 실제 곽명섭 보험약제과장은 최근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 "약제의 경우 비용효과성을 포기할 수 없다. (해당 개정안은) 내 소관이 아니다. 심사와 관련해 추진하는 걸로 아는데 아직 내부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문재인케어가 추구하는 목적이 국민의 건강보장인지, 의약사업자의 수익보장인지 헛갈리게 한다. 이른바 '심평의학'이 의약학적 타당성이 검증된 행위 등에 대해 비용효과를 따지는 것이라면 당연한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비용효과성과 무관하게 급여 보상체계를 운영하는 나라가 있으면 내놔 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십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의료영리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이 시행규칙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요양급여 일반원칙에서 비용효과성 조항을 삭제하는 건 건강보험 급여 신청, 급여 등재 여부, 진료비 심사 등 건강보험 급여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비용효과성 배제는 예외적 상황에 국한해 적용돼야 할 사항으로 이를 전제로 하지 않은 일반원칙 기준 삭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또 "심사평가원의 비용효과성 판단이나 심사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일차적으로 의사결정의 투명성이나 절차, 기술적 문제를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 의료계의 심사기준 완화 등 민원 사항과 결부시켜 일반원칙 기준 자체를 삭제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건강보험 가입자를 포함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행된 이번 입법예고의 배경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정부는 공개해야 한다. 또 건강보험 요양급여 결정에 대한 기준은 보다 명시적으로 설정해 법률에 상향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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