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신년초대석] 파멥신 유진산 대표

돌연변이(mutation).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기자는 ‘돌연변이’라고 말하겠다. 돌연변이는 유전학적으로는 여러 요인에 의해 원래 유전자가 원본과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돌연변이는 환경에 적응하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로 이어진다. 유진산 대표 역시 돌연변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국내 대기업에서 저분자의약품이 이식된 DNA에 ‘항체의약품’이라는 새로운 돌연변이를 일으켜 결국 파멥신 창업까지 했다. 그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를 저분자의약품에서 항체의약품으로 진화를 일군 주역이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로 벤처 기업에만 있었을 것 같았던 그. 하지만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LG화학과 국책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거쳐 파멥신을 창업했다. 국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조직 문화를 가진 대기업과 국책연구소에서 그가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기업 문화에 부침도 겪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는 항체 신약을 개발할 수 없었지만, 그 조직에서 이룰 수 없던 신약개발의 꿈을 창업을 통해 이뤄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1일 그가 창업한 파멥신은 코스닥 시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해 12월 6일은 파멥신의 상장을 기념해 대전 파멥신 본사에서 오픈하우스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를 비롯해 김문정 싸토리우스 상무 등 혁신신약살롱 판교 주요 멤버들뿐만 아니라 각계 바이오 업계 인사 100여명이 파멥신의 상장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는 손님들과 가볍게 주고받은 와인으로 한껏 편안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유진산 파멥신 대표

LG화학에서 중단된 항체로 파멥신 창업까지

▶파멥신 창업하기 전에 LG화학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들었다.

날씨 좋은 샌디에고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다. 20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조국을 위해 글로벌 항암제를 만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2001년 항체를 위한 항암제를 연구하려고 5년 동안 연구에만 매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는 저분자의약품(small molecule) 항암제 연구만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연구 방식은 ‘me too’ 또는 'me better' 전략이었다. 

당시 나는 저분자의약품은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분자의약품은 라이브러리 크기(size), 질(quality), 다양성(diversity)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 라이브러리가 GSK, 화이자의 라이브러리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전략인 ‘항체’로 눈을 돌렸다. '완전인간항체치료제 개발'로 준비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크립스(Scripps) 연구소 선배와 동료 실험실의 지원을 받아 관련된 재료 업체(material organization)와 인적 네트워크를 준비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G화학조차 당시 항체를 다룰 수 있는 ‘항체룸’이 없었다. 완전인간항체치료제 개발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진행하려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책연구 과제를 따오니, 회사에서 항체치료제개발팀 프로젝트가 만들어 졌다. 우리는 이 연구에 사활을 걸었다. 이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 하면 내가 한국에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LG화학(당시 LG생명과학)의 열정적이었던 5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떻게 파멥신을 창업하게 됐나?

생명연에서 수주하는 연구비로는 혁신항체치료제 개발을 진행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노바티스다. 스크립스 연구소와 LG화학에 있을 때부터 노바티스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조기 기술이전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노바티스가 내가 가진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 할 계획을 가지고 접촉했다. 그런데 노바티스 측에서 자신들이 지분투자와 전략적파트너로서의 지원을 하는 'GATE 프로젝트'를 있다고 알려줬다. 노바티스 측은 이 프로젝트에 도전해서 선정되면 창업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당시 노바티스, 보건산업진흥원, KOTRA, 삼성종합기술원, 맥킨지 등이 GATE 프로젝트의 지원팀으로 나섰다. 노바티스는 한국에 좋은 기술이 있는데, 글로벌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36개 회사가 경쟁했고 그 경쟁에서 당당하게 1등을 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투자자가 모였다.

▶그 이후에는 탄탄대로를 달렸나?

2008년 9월 3일 창업하고 조만간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런데 9월 15일 리먼사태가 터졌다.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니, 투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모두 연락두절 이었다.

노바티스만 남았다. 이상한 투자자자들도 꼬였지만, 2008년 1월 JP 모건 컨퍼런스에서 오비메드의 전설적인 인물 낸시 챙 박사를 만나게 됐다. 그해 3월 파멥신 투자를 위해 대만 타이페이 하야트에서 3시간이 넘는 프레젠테이션과 자세한 질의응답(Q&A)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낸시 챙 박사가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특허, 경쟁사에 대한 분석이 피 터지게 이뤄졌다. 영어 폰트 사이즈 10으로 된 글자가 빽빽하게 새겨진 문서를 150 페이지 넘게 만들었다. 창업하고 일년이 지난 2009년 9월 오비메드, 녹십자, 동양창업투자, 엔젤 투자자들이 함께 투자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노바티스와 오비메드가 함께 투자한 회사가 유일하게 우리였다. 아직도 여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신약개발 위해 호주로...글로벌 제약사 투자를 받기 까지

▶파멥신을 신약개발을 계획대로 잘 이뤄졌나?

일주일에 3번씩 낸시 챙 박사에게 우리 R&D 데이터를 업데이트 했다. 낸시 챙 박사에겐 하루에 20여건이 넘는 사업계획서(business plan)가 들어온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개발속도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낸시 챙 박사는 우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타니비루맵이 2011년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 IND 승인을 받아 임상을 잘 마쳤다. 데이터 결과 역시 안전성(safety) 측면에서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임상 1상을 잘 마치고 2상으로 가려고 하는데 식약처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2명 중 1명이 1-2 등급인(grade) 모세혈관종(reversible capillary hemangioma)이 나왔다. 식약처에서는 당시 모세혈관종이 생기는 작용기전(MOA)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하라고 했다. 그러나 동물에서는 모세혈관종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우리는 첫 번째 상장 도전은 기술성 평가를 못 받고 실패했다.

▶호주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넘어가게 된 것인가?

한국에서 완료한 임상 1상 데이터를 가지고 한국에서 임상을 할 지 호주로 갈지 당시에는 고민했다. 한국에서 임상 2상 IND가 시기가 계속 늦춰졌다. 앞서 말한 모세혈관종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글로벌키오피니언리더(Global Key Opinion Leader)들은 모세혈관종이 안전성 문제(safety concern)가 될 수 없다는 공통된 의견을 우리에게 밝혔다. 이러한 의견에 따라 일단 호주 임상을 먼저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결국 호주에서 타니비루맵 임상 2a상을 순조롭게 마쳤다. 현재 재발성 뇌종양 환자에게 흔히 쓰는 아바스틴은 혈압이 올라가는 등 부작용이 한번 발생하면 더 이상 이 약제를 쓸 수 없다. 우리는 타니비루맵이 이런 시장을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래 계획은 한국에서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적은 예산을 들여 임상을 진행하려고 했다. 결국 호주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이 전화위복이 돼 글로벌 제약사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됐다. 결국 글로벌 제약사는 한국 환자 데이터보다는 백인 환자 데이터를 원했다. 또 호주 임상 데이터를 가지고 가니 美 FDA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그 가치를 인정을 해줬다.

▶키트루다와 타니비루맵을 병용투여하는 임상 1상에도 돌입한 것으로 알고있다.

거의 4년동안 머크를 방문해 설득했다. 머크 리서치 연구소에 가서 매번 프레젠테이션과 미팅을 통해 우리 연구개발에서 진보된 점(R&D progress)을 업데이트해 줬다. 당시 나는 키트루다는 타니비루맵과 병용투여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후 키트루다는 아바스틴과 병용투여 임상연구를 했고, 이후 사이람자와 병용투여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결국 호주 임상 2a 가 나오고 타니비루맵이 아바스틴과 사이람자와 달리 우수한 안전성과 효능을 인정받받았다. 머크는 키투루다와 타니비루맵 병용투여 임상연구에 합의했다. 당시 머크는 물리적 제약으로 한국 기업과 공동 연구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호주에서임상을 진행하고 있어 접근성 역시 좋았다. 

▶창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가?

우리가 호주에서 임상을 한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임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호주로 갔다는 소문이 증권가 무성했다. 금융업계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무시할 수 있었지만, 동종 업계 사람들마저 우리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바이오 창업하려면 글로벌 제약사 VC에 투자유치 도전해야

▶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를 바라 보며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부도 제약바이오가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규정하고, 다방면에서 지원하고 있어 (업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욕심을 내자면) 더 지원하고, 더 개선하고, 더 속도를 내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경청하시고, 정부 지원과 제도개선에 더 많은 노력을 해주시길 바란다.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파멥신 비즈니스와 별개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케어 생태계에 공헌 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문제들을 후배들이 반복해서 겪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선배들이 그랬듯 이젠 내가 받은 생태계를 더 나은 생태계로 잘 만들어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투명하고, 건설적인 바이오-헬스케어 생태계를 후배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후배들이 중국, 일본과 경쟁을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처럼 후배들마저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 생각을 하면 착찹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요즘 중국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일단 규모 면에서는 중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시스템과 인재는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 바이오-헬스케어를 가지고 먹고 살 것이라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말이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에 가면 로슈와 노바티스가 있다. 대전보다 훨씬 작은 도시다. 우리라고 안 될 이유가 있나? 내수시장이 없어서? 로슈와 노바티스가 스위스 내수시장 보고 있나? 그들은 전 세계인이 모두 자기 고객이다. 그들은 글로벌 인재들을 국적을 가지지 않고 채용한다. 바젤은 작은도시의 한계를 이렇게 극복한다.

우리 정부는 스위스 정부를, 우리의 도시는 바젤을, 우리 기업은 노바티스와 로슈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제약을 우리 먹거리 산업으로 만들지 고민해 봐야 한다. 

▶삼성, 셀트리온, LG화학 등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바이오시밀러만 해서는 경쟁력이 없다. 결국 시밀러 기술을 발판으로 혁신신약 개발로 가야 한다.

해외 학회에 나가보면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결국 시밀러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리지널 약물이 시밀러와 같은 수준으로 가격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오리지널 약물들은 이미 특허기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오시밀러는 생산설비 자체가 높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무한정 가격을 내릴 수도 없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단순히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특히 삼성은 자신들이 가진 IT 등과 같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바이오시밀러 비즈니스로 훈련된 인력을 활용해 차세대 신약개발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에겐 큰 기회와 경쟁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이오 분야에 창업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글로벌 제약사 코퍼레이트(corporate) 벤처 캐피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로슈, 제넨텍, 화이자, 노바티스, 릴리는 corporate venture capital을 통해 하루에도 100개 이상 비즈니스 플랜을 받는다. 왜 거기에 도전을 안 하나? 그들의 의견을 받는 것 자체가 수천만원 컨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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