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해결에 집중하며 약사 희망도 이야기 할 차례

김대업 후보가 39대 대한약사회장에 당선됐다(사진=대한약사회 제공)
김대업 후보가 39대 대한약사회장에 당선됐다(사진=대한약사회 제공)

김대업 후보(54)가 13일 대한약사회 39대 회장에 당선됐다. 이로써 김 당선자는 고비고비 그를 가둬왔던 '편의점 감옥'으로부터 풀려나 '약사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됐다.

2012년 '당장 안전상비의약품을 편의점에 내 놓으라'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와 언론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전향적 협의에 나섰던' 그의 입은 막혔고, 두 발엔 족쇄를 차게됐다. 

'편의점 감옥' '매약노 프레임'은 질기고도 견고했다. '심판론'이 득세했던 2012년 대한약사회장 선거에선 그와 함께 협의에 나섰던 박인춘 현 대한약사회 부회장이 조찬휘 현 대한약사회장과 맞붙었지만 처참할 정도로 패배했다. '집행부 심판론'을 내세운 조찬휘 후보가 무려 60.5% 득표율로 대한약사회장에 당선됐다.

박인춘의 패배로 원희목, 김구 집행부에서 함께 일했던 김대업 당선자 역시 자신의 약국 안에 유폐되다시피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존재자체가 희미해 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5년, 대한약사회장 후보로 약사들 앞에 나서 조찬휘 후보와 맞대결을 벌였지만 1만8094표 중 9525표를 얻은 조 후보에게 1685표 차이로 낙선했다.

'매약노 프레임'에 갇힌 그를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던 약사들은 외면했다. 그는 조찬휘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약사회가 약사 미래 정책에 투자하는 미래 지향적인 조직으로 바뀌어가길 기대한다"는 힘없는 말을 던지고 약사회 무대에서 다시 쓸쓸히 퇴장했다. 그는 또 다시 잊혀지고 있었다.  

야인으로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약학정보원 소송 , 소송을 둘러싼 조찬휘 회장과 갈등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던 때 그는 2018년 하반기 '약사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한층 단단해져 돌아왔다. 조찬휘 회장이 그를 외곽으로 밀어냈지만,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도 조찬휘 회장이었다. 회관 재건축, 연수교육비 문제 등으로 탄핵국면에 몰렸던 조찬휘 현 회장에 대한 약사사회의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그의 희망의 메시지는 크게 들렸다.

조찬휘 회장의 연속선상에 있는 최광훈 후보가 편의점 상비약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지만 "당시 임원으로서 책임이 있고,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편의점으로 더 나가는 건 목숨 걸고 열심히 막겠다"는 김 후보의 대응에 편의점 카드는 더는 힘을 쓰지 못했다. 

6년동안 고초를 겪은 김 당선자에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월계관이 있다. 바로 PM2000이다. 모든 것을 그가 했다고 할 수 없으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약국 두 곳 중 1곳이 쓴다는 PM2000이 의약분업 이전에 개발되지 않았다면 의약분업 초창기 혼란은 훨씬 컸을 것이며 '약은 약사에게'라는 불멸의 명제를 뒷 받침하는 약학정보원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탱크처럼 몰아치며 PM2000을 개발했던 그에겐 지금도 그 때처럼 해야만 하는 수없는 과제들이 놓여있다. 과단성 있고, 정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인물로 그는 평가받고 있지만 한약사, 약대증설, 안전상비약 확대, 약국 보조원, 산업약사회 별도 설립, 선거로 갈라진 약사들의 화합 같은 키워드는 만만치 않은 현안들이다.

반면 4차 산업혁명시대와 정부의 건강관리정책에서 약사의 좌표를 잡고 약국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아 제도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문제다. '마법'에서 풀려난 그는 과연 그의 저서 '약사! 희망을 이야기하다'에 담은 그의 사색과 철학을 온전히 실행하는 약사들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그에게 30대 열정과 50대 연륜을 균형있게 발현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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