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평면제 총액제한에 환급형 RSA까지 동원

약평위 "그래도 비싸"...'재심의'로 숨고르기

보험당국이 해외 비급여 시판 가격으로 첫 해 투약비용이 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이넥스(바이오젠)의 척수성 근위축증치료제(SMA) 스핀라자주(뉴시너센나트륨)에 대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종의 약가제도판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하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지난 22일 급여적정 여부 심의 안건에 오른 스핀라자주에 대해 '재심의' 결정했다. 급여 적정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것인데, 이는 여전히 투약비용을 더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심사평가원이 실무 검토단계에서 재정부담액을 줄이기 위해 이미 상당한 '다이어트'를 진행한 만큼 앞으로 추가 검토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스핀라자는 경제성평가 면제 특례와 함께 환급형 위험분담제(RSA)를 동시에 적용해 급여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가솔린과 전기를 동시에 활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빗대 일각에서는 '하이브리드 약가제도'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당연히 처음 시도되는 사례다. 스핀라자 뿐 아니라 앞으로 나올 초고가 의약품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보험당국이 이런 선택을 한 건 두 말할 필요없이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보장하면서 보험재정 부담도 줄이려는 데 있다. 재정부담 '다이어트'는 보험상한가를 상대적으로 낮게 정하는 게 효과가 가장 크다. 여기다 급여기준을 좁게 설정하거나 환급률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급여기준은 심사평가원, 약가와 환급률은 건보공단 단계에서 각각 설정된다. 스핀라자도 마찬가지다.

영유아에 제한된 급여기준=스핀라자는 연령에 제한없이 사용 가능하도록 허가돼 있다. 단 허가임상은 신생아에서 17세까지 환자에게만 연구됐고,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자료는 없다. 유전질환으로 주로 영유아와 소아 연령대에서 발병하기 때문에 연구 당시 연령대가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심사평가원 측은 일단 기도수술을 하지 않은 영유아에만 적용하도록 급여기준을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제성평가 면제특례 기준 중 하나인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을 충족시키기 위한 복안으로 보인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팔, 다리, 목 등 몸통에 가까운 신경근육을 손상시킨다. 영유아 환자의 경우 음식물 섭취나 호흡이 어려워 1~2년 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영유아 연령대에서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특성 때문에 국내에서는 호흡을 유지시키기 위해 기도 수술을 시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당장 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줄어 경평면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급여기준은 영유아 환자의 특성과 한국 진료실태를 반영해 설정된 것이다.

한편 국내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 수는 200명 규모로 추정된다. 제약계는 이 급여기준에 부합하는 환자 수를 50명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평가원이 추정하는 예상 급여 환자 수는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스핀라자는 초고가 약제여서 추정 환자 수가 10명만 차이가 나도 재정영향 편차가 매우 커진다. 실제 이날 약평위도 업체 측과 심사평가원이 제시한 환자 수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재정영향 편차가 큰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시가는 A7최저가, 환급율은?=스핀라자가 경제성평가 면제 특례를 적용받으면서 관련 규정에 따라 심사평가원 단계 급여 적정가격은 'A7최저가'가 됐다. 현재 최저가는 바이알당 9200만~9300만원 수준인 일본 가격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과 협상에서 추가 조정되겠지만 일단 표시가격은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첫 발매당시 비급여 가격이 1억4000만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약가 덕분에 심사평가원 단계에서 표시가격이 5000만원 가량 1차로 '살(가격)'을 쏙 뺀 것이다.

경평면제 특례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스핀라자는 당연히 '총액제한'으로 총약품비도 통제받는다. 예상청구액을 일정비율 이상 넘어서면 초과분을 건보공단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다 보험당국은 스핀라자에 조건을 하나 더 걸었다. 바로 환급형 RSA다. '총액제한'과 상관없이 업체는 청구액에서 '환급률'만큼 약품비를  건보공단에 돌려줘야 한다. 이는 표시가격이 더 낮아지는 걸 막기위한 사이넥스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평위는 여전히 재정부담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해 6회, 두번째 해부터는 4개월 단위로 3회 투여하는 스핀라자의 용법을 고려하면 표시가격을 9000만원, 환자수를 50명으로 가정해도 급여 청구액은 첫해 270억원, 두번째 해부터는 135억원이 소요된다. 물론 환급률에 따른 환금액을 포함한 금액이기는 해도 극희귀질환 약품비치고는 너무 많다.

약평위의 이번 '재심의' 결정은 약품비를 더 줄일 수 있는 다른 가용한 제도나 심평원 단계에서 급여 적정평가를 받을 환급률 수준을 더 낮추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스핀라자는 이 어려운 관문을 무사 통과할 수 있을까. 정부 측은 스핀라자가 초고가인건 사실이지만 솔리리스주와 같은 약제가 단위당 가격은 더 비싸다고 말했다.

이미 더 비싼 약도 통제권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이지만, 스핀라자는 환자 수가 생각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사평가원 단계를 넘어서더라도 건보공단 단계에서 또 한 차례 강한 샅바싸움이 예상된다.  어쨌든 스핀라자는 약가제도판 '하이브리드' 전략 가이드라인의 단초를 제공할 약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암젠코리아의 골전이 암환자의 골격계 합병증과 희귀질환 골거대세포종 치료제인 엑스지바도 적응증에 따라 경평면제와 일반등재 절차를 밟은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해 등재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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