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xS 박정관 대표, 비대면 정책 두고 약사회에 일침
미국,일본,중국 사례 보며 '약국 주도의 안전한 배송' 필요성 절감
"약사사회가 주도하지 않으면 환자 안전도 약국 미래도 없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준 챗GPT 시대, 약사가 인공지능과 차별화되는 '인간다움'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약사는 기계적인 정보 전달 역할에서 벗어나 환자를 케어하는 진심을 가져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약국은? 약국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박정관 디알엑스솔루션(DRxS) 대표이사를 만났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데, 약사들은 뭘 준비해야 할까요?"

이 질문을 던지자 박정관 대표는 한숨부터 쉬었다. '지금의 상황이 쉽지 않다'는 데에서 오는 한숨일까 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이 한숨의 이유가 쉽지 않은 이 상황에 지금 약사사회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박 대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박정관 디알엑스솔루션(DRxS) 대표
박정관 디알엑스솔루션(DRxS) 대표

대표님이 세운 DRxS 근황이 궁금합니다. 약국과 환자가 어플을 통해 소통하는 '내손안의약국'이 서비스도 많아지고 질적으로 많이 향상됐어요.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약국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 고민 끝에 '1약국 1어플'을 개발한지 5년이 됐습니다. 그간 제도 변화나 고객 니즈를 파악하며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내손안의약국'을 개발한 건 앞으로 가장 중요한 건 '정보'라는 확신이 들어서입니다. 약국으로 따지면 환자 정보겠죠. 플랫폼은 정보가 어디에 모이느냐에 따라 다면플랫폼과 단면플랫폼으로 나뉩니다. 부동산이 대표적인 다면플랫폼인데요, 집을 팔려는 사람 A와 구하는 사람 B가 부동산을 통해 만나고, 이들의 정보가 부동산에 쌓입니다. 반면 단면플랫폼은 A와 B 중 어느 한 쪽에 정보가 쌓이는 형태를 말합니다. 

약국의 상황을 보면 약국과 의원, 환자 사이에서 정보를 축적하는 '닥터나우'는 다면플랫폼입니다. 저는 결국 중요한 건 환자 정보이고 이걸 약국이 빼앗기면 안된다는 생각에 내손안의약국을 만들었습니다. 환자 정보는 약국이 가져야 하고, 약사를 이를 통해 환자들을 더 잘 도울 수 있도록이요. 그러기 위해 그간 어플을 무료로 배포해왔습니다. 약국이 중심이 된 단면플랫폼이 정착돼야 한다는 확신이자 개인적인 사명에 따른 거였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사회 전반적으로 비대면 서비스가 정착됐는데요, 내손안의약국도 많이 활성화됐겠죠?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대면서비스 활성화는 전세계적, 시대적 흐름이고 코로나19가 이를 앞당겼을 뿐이죠. 저는 지부, 분회를 돌며 약국이 비대면을 준비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제 설명이 부족했는지 약사사회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부장은 제가 약사사회가 비대면 투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의하니 '매약노'라며 더 이상 분회에 강의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긴 했지만 결국 약국도 반강제로 비대면 투약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사사회가 코로나에 앞서 먼저 준비해왔다면 충분히 주도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가 손 놓고 있던 사이 그 틈새를 '닥터나우'가 치고 들어온 겁니다. 닥터나우는 지금도 비대면진료 어플이 아닌, 배달어플이라 말합니다. 진료보다 약 배송에 치중돼있고 이 부분으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약국이 먼저 비대면 투약을 준비하고 실행했다면 닥터나우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약사사회의 헛점과 논쟁이 닥터나우를 키워준 꼴이 됐어요."

 

약국이 먼저 나서서 '조제약을 배송해주겠다'고 하긴 어렵지 않았을까요? 시대적 흐름도 있지만 안전성이 간과되면 안되니까요.

"안전성을 간과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약사는 환자에게 약을 안전하게 전달해 제대로 복용하고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이 분명하다면, 약을 어떻게 전달하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환자와 약사가 선택할 수 있는데, 문제는 환자가 비대면을 원한다는 거예요. 편리하니까요. 약국에서 예방접종까지 하는 선진국 약국들도 모두 비대면 투약을 하고 있어요. 환자를 위해서 말입니다.

대면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도 어불성설입니다. 얼굴보며 전해주고 복용순응도도 살피지 않고 사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대면 투약이 무슨 소용입니까. 

비대면으로 투약하더라도 약사와 환자가 디지털로 연결돼 전화든 어플이든 약사가 환자 건강과 안전을 살필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합니다. 안전하게 배송하고 약사가 전화로 확인하고 꾸준히 관리해주면 됩니다. 이런 '케어'를 하지 않으니 국민들은 약사를 약의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약을 먹다 문제가 생기면 의사에게 가지 약사에게 오지 않아요. 이런 국민 의식을 냉정하게 보고 현실을 판단해야 합니다."

 

의사들도 처음엔 요양기관 쏠림현상을 이유로 비대면을 반대했었어요.

"하지만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의사들은 정부와 비대면진료 정책을 논의하며 병의원을 중심으로 한 단면플랫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는거죠. 그리고 이제는 처방전을 어떤 약국에 전달할 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병의원에 가까운 약국이 종속된 형태를 유지하려는 거죠. 그러기 위해 처방전을 의사가 선택한 약국에 전달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반면 약사회는 극구 반대만 하다 정책의 틀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비대면진료를 하면서 조제약은 와서 받아가라는 건 말이 안됩니다. 약사들이 지금처럼 계속 반대만 하고 환자를 위한 '비대면 의료 서비스' 틀을 거부한다면 결국 완전히 열외가 될 겁니다. 벌써 정부쪽에선 약사를 논의의 틀에서 배제하고 있어요. 약사가 빠진 자리에는 닥터나우 같은, 엉뚱한 존재가 이익을 얻을 겁니다. 

조제약 배송 시장이 적지 않은 규모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사에서 보니 연간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처방건수는 퀵배달 서비스 규모와 맞먹는 규모에요. 소위 돈이 되다 보니, 여기저기 모두 뛰어들었습니다.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이 모두 조제약 배송 사업에 나섰습니다. 성공한 곳도, 실패한 곳도 있고요."

아마존이 인수한 의약품 조제 배송 기업 필팩. 파란색 상자에 시간대별로 복용해야 하는 약을 조제해 배송한다. (사진출처=PillPack)
아마존이 인수한 의약품 조제 배송 기업 필팩. 파란색 상자에 시간대별로 복용해야 하는 약을 조제해 배송한다. (사진출처=PillPack)

 

성공한 곳은 어디고, 실패한 곳은 어디인가요. 

"성공한 곳은 중국 기업들입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비대면 진료, 투약을 시행했는데 여기에 참여한 알리바바, 징동닷컴, 중국평안이 전국으로 조제약을 배송합니다. 전국에 수십개의 거점을 만들고 처방받은 약을 공장형 조제약국에서 조제해 각 가정에 배송하고 있어요. 결국 지역의 로컬약국들은 한약조제를 하는 정도로 전락했고 제대로 된 조제약국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반면 아마존은 고전 중입니다. 원인은 환자 접근성입니다. 아마존은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을 선택했고 환자에게 72시간 내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약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했습니다. 지역 약국으로 처방전을 받으면 2시간 내로 배송되고, 오가며 직접 약을 픽업해 배송료도 아낄 수 있고요. 결국 환자들은 '편의성'을 선택합니다."

 

중국 식으로 가느냐, 미국 식으로 가느냐, 중요한 문제가 되겠네요. 

"맞습니다. 지금 비대면진료 탁상에서 약사가 빠지면 중국처럼 될 겁니다. 의사와 배송업체가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제도를 디자인하겠죠. 처방전도 의사가 원하는 약국을 지정해 전달하고, 배송업체가 이를 받아 전달하며 높은 수수료를 요구할 겁니다. 약국은 여전히 병의원 입지에 종속되고요. 

'조제약 배송'하면 약사들은 무조건 조제약 공장형 약국이 독식할 거란 공포감이 있는 듯 해요. 이건 법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약사 숫자 별로 처방 건수를 제한하고 있죠. 제도만 잘 만든다면 조제약 배송이 오히려 동네 약국을 살립니다. 환자들은 자기가 익숙한,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받길 원합니다. 

일본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편의점으로 약이 나가면서 드럭스토어 매출이 한동안 정체기를 보였죠. 하지만 조제약 배송을 하면서 드럭스토어 매출이 6~7%까지 성장했어요. 약을 배송받으면서 다른 필요한 물품이나 일반의약품도 같이 구매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놀라운 건 또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 가보니 동네 곳곳, 주택가에 조제 전문약국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어요. 선택권을 환자에게 준다면, 비대면 제도가 동네약국을 살릴 수 있다는 충분한 방증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약국이 환자 정보를 갖는 것과 동시에 약국 선택권, 즉 처방전 전달 시스템을 환자 중심에 둬야 한다는 건 절대 놓쳐선 안됩니다. 이게 환자 주권을 지키면서 약국도 살아남는 길입니다."

대한약사회 건물에는 문제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펼침막이 내려 걸린다.
대한약사회 건물에는 문제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펼침막이 내려 걸린다.

 

'비대면', '배송' 하면 반대만 하는 지금 약사회를 보면 답답하시겠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하죠. 3년 간 약사회 임원, 지부 분회 누구든 찾아가 이런 점을 강조했습니다. 강의든 뭐든 가리지 않고 지금 현실을 알렸고요. 지금 변화하는 시대에 약국이 할 수 있는 건 비대면을 준비하는 건데 이건 정책적 열쇠를 쥐고 있는 약사회만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약사회는 '대면'비대면' 프레임에 빠져 다른 건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대면 여부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약국에 가야만 약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약국과 약사가 나를 건강하고, 편리하게 해준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런 대의명분 아래 모든 정책을 결정해야 합니다.

약국의 미래를 결정할 정책을 결정하는 약사회가 대면-비대면 프레임에 빠져 약국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외면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경계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인공지능과 과학기술 발전은 결국 인간과 화합해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거라 내다봅니다. "

 

따로 준비하시는 게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전 우리 아파트 건물 입구에 닥터나우가 배송해둔 약 봉투를 보았습니다. 비밀번호 누르는 입구 앞에, 누구나 지나다니는 곳에 조제약을 두고 갔더군요. 개인정보 보호는 차치하고 당장 약이 분실될 우려가 큰 상태였어요. 이렇게 방치하면 안되겠다 했습니다. 요즘은 음식을 주문해도 이렇개 무책임하게 두고 가지 않아요. 하물며 조제약이 이렇게 배송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습니다. 

4월 중 조제약 배송을 해보려 합니다. 약사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약사와 약국이 주도한 안전하고 편리한 배송 서비스가 될 겁니다. 저를 향한 약사사회의 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안 할 수 없습니다. 뭐라도 계속 해보고 대안을 찾아야 하니까요. 당장 약국이 무너질 게 보이는 게 시선이 두렵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