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전문 택배사들, 잇따라 드링크 배송 거부
유통업체, 저마진·운반 난이도 높아 물량 축소 움직임
"대안은 제약사 직접 배송 뿐...드링크 약국 떠나는 원인"

소위 '물약'이라 부르는 드링크 배송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의약품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회사들이 잇따라 전담 배송을 거부하는데다, 의약품 전문 유통업체들도 취급 물량을 최소화했다. 드링크가 들어오는 루트에 연달아 빨간 불이 켜지면서 약국의 드링크 구색도 갈수록 초라해지는 모양새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정제 위주의 의약품들 사이에서 드링크는 무게와 부피가 상당해 취급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 때문인데,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거래 확산이 도화선이 됐다. 

 

약국 효자상품이던 드링크, 배송경로 갈수록 축소

약국에 배송된 박카스와 비타500. 대표적인 '약국 드링크'로 꼽힌다.
약국에 배송된 박카스와 비타500. 대표적인 '약국 드링크'로 꼽힌다.

약국이 판매하는 드링크는 '박카스'로 대표되는 자양강장제, '쌍화탕'으로 일컬어지는 한방제제, '비타500' 등 비타민 음료, '까스활명수큐' 등 소화제로 구분된다. 일반의약품이 대부분이었던 드링크류는 점차 종류가 많아지고 신제품이 늘어나면서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드링크는 오랜 기간 약국 효자상품이었다. 일반의약품을 구매하는 환자에게 드링크제를 하나씩 끼워 판매하기 용이한데다, 박카스와 같은 유명 광고품목은 그 자체로 소비자를 약국에 끌어오는 존재였다. 약국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상드링크 제공이 약사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드링크제가 약사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요긴한 제품이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드링크 약국 배송을 거부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드링크제는 해당 제약사 영업사원, 전담직원 등이 직접 배송하거나 의약품 전문 택배회사, 전문 유통업체를 통해 약국에 들어오고 있는데, 전담 직원이 있는 '박카스'·'비타500' 외엔 배송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잘 알려져있듯 동아제약은 박카스 유니폼을 입은 전담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고 배송한다. 직원이 일명 '박카스차'로 약국을 돌며 배송부터 진열까지 신경써준다. 동아제약은 용마로지스라는 전문 택배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박카스가 워낙 인기제품인데다 약국 주문량이 많고 재고 확보 경쟁이 치열해 전담직원을 운용하고 있다.

전담직원은 모두 정직원으로, 배송 직원 중에는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아 제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박카스 전담직원이 약국에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박카스 전담직원이 약국에 제품을 진열하고 있다.

문제는 박카스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들이다. 드링크는 무게가 상당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병에 담겨있어 일반 배송직원들의 기피상품으로 통한다. 고려택배와 용마로지스 등이 최근 이런 이유로 드링크 배송을 거부하면서 제약사들이 배송처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물약은 무겁고 부피도 커 배송이 어렵다. 가벼운 정제 위주의 의약품배송 상황에서 드링크류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며 "또 약사들도 직접 옮기기 어렵다며 약국 안까지 옮겨주길 바라니 배송기사들이 기피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물약은 대부분 5톤에서 16톤까지 트럭에 가득 싣고 와 창고에 하차까지 해주는 '차떼기'로 온다. 전에는 택배회사가 쭉 가져왔었는데, 지금은 개별 용달로 오거나 매번 다른 직원이 가져오는 등 중구난방이다. 매번 다른 기사가 임기응변으로 배송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드링크류가 일반 음료보다 배송이 어려운 건 캔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병에 들어있다는 점, 한 박스에 많은 양이 들어있어 운반하려면 웬만한 젊은 사람도 힘겨운 수준이라는 점 의 이유가 있다. 의약품 택배회사나 유통업체 배송기사 중 연로한 기사가 많다는 점과 맞물려 업계에서는 '드링크 때문에 힘들어 그만두는 직원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도 한 몫했다. 코로나로 비대면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배달업체 기사들이 수백만원의 소득을 올리자, 의약품 전문 택배사 인력이 대거 이탈해 배달업체로 쏠렸다. 노사 간에 인건비를 놓고 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송 인력이 급감하면서, 업계는 택배회사들이 평소 부담스러웠던 드링크 배송부터 내려놓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도매도 배송량 절반 이상 줄여...약국 취급물량 최소로 유지

의약품 전문 유통업체들은 같은 이유로 오랜 기간 드링크 배송을 줄여왔다. 지금은 구색 갖추기 수준의 최소 물량만 소화하고 있다. 약국 주문 단위를 100병이 들어있는 큰 박스에서 10병 단위 작은 박스로 변경한 업체도 있다. 유통업체들은 약국 주문을 되도록 적게 받는 게 이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물량 취급량은 1/4 이하로 줄어들었다. 내부에서는 아예 취급하지 말자는 말까지 나오지만, 약국 서비스 차원에서 적은 양만 배송하고 있다"며 "배송기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다, 약국 창고까지 옮겨달라는 요구도 많고 잘 깨져 손실이 많아 내린 결정"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거래가 큰 약국에 서비스 차원에서 배송한다. 또 드링크를 많이 쓰는 약국은 대부분 제약사 직거래를 통해 받고 있어 약국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약국도 모든 제약사에 직거래를 두긴 어려우니 예전처럼 드링크를 다품목으로 다양하게 갖추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통업체가 드링크 배송을 줄인 데에는 적은 마진, 일부 제약사의 꼼수도 영향을 미쳤다. 품은 많이 들지만 대부분 TV광고를 하는 유명제품이란 이유로 마진율이 낮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일부 제약사가 도매 거래를 유지하면서 직거래 약국에 더 싼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사례도 알려졌다. 일부 업체는 거래 약국에 '드링크는 제약사에 직접 주문하라'고 권유할 지경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드링크는 제약사가 직접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물류나 배송을 직접하기 어렵다면 유통에 충분한 마진을 제공해야 한다"며 "배송 환경이 나빠지다 보니, 신제품들이 모두 하이퍼마켓이나 대형마켓으로 빠지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지적대로 최근 출시된 드링크 대부분이 일반의약품이 아닌 건강식품 또는 식품으로 허가를 받아 마트, 편의점 등 일반유통에 집중하고 있다. 유제품과 탄산 일색이었던 음료시장에 '제약사가 만든 건강 음료'라는 콘셉트로 파고드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드링크는 제약사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제약사들이 일반약보다 건기식, 화장품, 음료에 집중하고 있다. 드링크 배송이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제는 약국 유통에 투자하지 않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약사는 "약국과 배송기사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인 것이고 제약사의 배송기사 처우, 일반 택배기사와 의약품 택배기사 간의 임금 차이, 의약품 유통마진 문제 등이 드링크 배송문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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