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국내개발 신약..."다국적사가 쪽박깼다"

국내 제약계는 '7.7약가우대제도' 개선안을 보고 약가제도 상의' 역차별'이 더 확대됐다고 주장한다. 다국적제약사들을 향해서는 '쪽박을 깼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왜 '역차별'이고, '쪽박'은 왜 깼다는 걸까?

10일 관련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미 FTA 이행이슈가 처음 제기됐을 때 국내 제약사들은 미국 측의 '차별' 주장에 반발했다. '7.7약가우대제도' 규정만 놓고보면 미국 측이나 다국적사들의 주장이 맞는 말이긴하다.

이 제도가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국내개발신약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만큼 다국적제약사가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은 '바늘귀' 수준도 안됐다. 품목요건인 국내 최초 허가, 국내 전공정 생산 등이 대표적인 '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개정안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심지어 기업요건에서 혁신형제약기업도 뺐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대체가능한 다른 치료법(약제포함) 없음 ▲생존기간의 상당한 연장 등 임상적 유용성 개선 입증 ▲미국 FDA의 획기적의약품지정(BTD) 또는 유럽 EMA의 신속심사(PRIME) 적용 ▲희귀질환치료제 또는 항암제 등 5개 요건을 집어넣었다.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외에는 하나 같이 국내 제약사가 헤짚고 들어가기 힘든 요건들인데, '7.7약가우대제도'를 적용받으려면 이 5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2년 반만에 신약 1개 혜택...차별 논할 수준인가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혜를 입은 품목은 2개, 실질적인 의미로 보면 단 1개에 불과하다. 미국 측이나 다국적제약사는 '차별'을 이야기하지만 아직 한국의 제약산업은 그 차별이라는 게 2~3년에 1개 신약이 '차별적'으로 우대를 받을 만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이 요구하는 요건을 국내개발 신약이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다국적제약사는 어떻까? 글로벌의약산업협회는 다국적제약사도 5개 기준에 부합하는 신약을 내놓을 수 없다면서,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개정안에 불만을 털어놨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치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과거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 기준들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신약은 존재했다. 더구나 BTD나 PRIME으로 신속 심사를 받은 약제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제약사들이 개정안의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내사 한 관계자는 "미국 측이 차별해소를 요구했더니 한국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내 제약사를 역차별하는 대안을 내놨다"고 황당해했다. 이 관계자의 말은 일반적인 국내 제약사들의 정서이기도 하다. 물론 다국적제약사에게도 '천국의 문'은 좁다.

국내 제약계도 역차별 요소가 존재하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역차별'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제도자체를 무력화하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미국 측 요구에만 지나치게 경도돼 국산신약 개발을 유인하고 장려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안적 고민' 자체가 없다는 점이고, 이 부분에 제약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개정안 검토 단계에서 '7.7약가우대제도'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FTA 협정의 한계로 있던 제도를 폐지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자 아예 무력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고 했다.

한 마디로 겨우 입술을 적실 수 있는 양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쪽박'마저 깨져버렸다는 얘기다. 국내 제약계의 불만의 화살은 다국적제약사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국내 제약계는 미국 측이 '7.7약가우대제도'의 차별성을 이야기 할 때 신약 접근성 강화 차원에서 2014년 이후 도입된 ICER 임계값 탄력 적용, 위험분담제도, 경제성평가 면제특례 등을 거론하며, 2016년 도입된 '7.7약가우대제도'는 차별이 아니라 '균형'이라고 주장했다.

외국계 RSA·경평면제 vs 국내사 7·7제도...차별아닌 균형

위험분담제 등은 '접근성과 보장성 강화'이고, '7.7제도'는 '우대'라는 측면에서 키워드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어려운 급여 '허들'을 넘고, 표시가격을 일정부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두 가지 다 매우 중요한 장치들이다. 그런데 위험분담제 등의 수혜는 다국적사로 사실상 '완전히' 쏠려있다. 실제 그동안 위험분담제와 경평면제로 등재된 48개 급여등재 품목 중 순수하게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제품은 한미약품의 올리타 2품목(도입신약인 피레스파 미포함)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다국적제약사 제품들이었다.

국내 제약계는 이런 제도들이 도입됐을 때 국내사들이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약제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견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대신 글로벌 진출 신약에 대한 우대 필요성에 주목하고, '7.7약가우대제도'를 만드는데 올인했다. 다시 말해 국내 제약계는 조금 시차는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논의됐던 제도들에서 처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국적제약사들은 '7.7약가우대제도' 논의과정에서도 '혁신신약'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차별'에 대해 계속 문제 제기했고, 정부는 불가피 '사회적 기여도'나 '혁신형제약기업에 준하는 기업' 등의 요건을 통해 다국적사를 위한 작은 통로를 마련해줬다.

문제는 '사회적 기여도' 등의 개념이나 범위, 기준 등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제기되면서 이들 관련 규정은 시행되지 못하고 계속 유보돼 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FTA 재협상 이슈가 생기자 미국 측은 '7.7약가우대제도'를 공격 포인트로 삼았다. 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으로 미뤄보면, 다국적사들은 기업요건을 삭제하고 품목요건을 간소화해 약가우대를 받고 싶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는 요건완화보다는 국내 제약산업 우대를 포기하면서 동시에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쪽으로 물길을 잡았다.

국내 제약사 또다른 관계자는 "다국적사가 위험분담제 등 등재완화 조치에다가, 약가우대까지 욕심을 내 결국 쪽박을 깨버린 꼴이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정부는 앞으로 약가우대에 대해 이전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이번 개정안도 그렇고, 기존에 운용해온 제도들도 역차별적 요소가 있다"면서 "정부가 한미FTA에만 골몰해 제약산업의 미래를 송두리째 포기하는 우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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