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심사비용 제약사 부담 조건으로 PDUFA 법안 통과
FDA 이 돈으로 심사 인력 채용함으로써 심사기간 단축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8]  FDA의 신속허가심사 제도(1)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퀴즈를 내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갖은 아이디어가 속출하였다. 상금을 탄 주인공의 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로 응모한 작품이었다. 

1962년 Kefauver-Harris 수정법의 통과 후 20년 동안 신약의 허가 속도는 급격히 느려졌다. 약물의 안전성은 물론이고 유효성까지 입증하는 자료의 마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새로운 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이 시작되고 나서, 보통 8년에서 10년은 걸려야 신약으로 허가될 수 있었다. 제약회사도 광고회사처럼 이런 퀴즈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FDA에서 가장 빠르게 신약을 허가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AIDS 환자는 더 궁금하였다. HIV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에 달하였지만, 미국 정부는 치료 방법의 모색에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AIDS의 원인이 HIV로 규명된 1981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에서만 10만 명 이상의 AIDS 환자가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허가된 AIDS 치료제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1985년부터 몇몇 소수는 AIDS 치료제의 신속한 개발과 허가를 위한 로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AIDS 치료제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쉽게 일지 않았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1990년 후반까지 미국의 공중위생국(PHS)은 동성애자를 정신장애로 판단하여 이민을 금지할 정도였다. 
  
1987년 3월 10일 뉴욕의 Gay and Lesbian Community에서 Larry Kramer는 AIDS 환자를 대상으로 연설하였다. "지금의 속도로 진행되면 여기 계신 여러분의 2/3는 5년 이내 죽을 것입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이틀 후 그들은 ACT UP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AIDS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 정부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FDA의 과학적 의사 결정 과정에 환자 단체가 참여하려는 첫 번째 시도였다. 

사실 그때 AIDS 치료제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새로운 물질 AZT에 대한 임상시험에서 치료의 가능성이 보였다. AZT가 허가되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돌파구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987년 3월 19일 FDA는 첫 번째 AIDS 치료제인 AZT를 허가하였다. 임상시험이 시작되고 20개월 만이었다. 항암제 파클리탁셀 주사제의 경우 임상시험이 시작된 후 10년이 지나서 허가된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파격이었다. 조기에 끝난 제2상 임상시험 결과에 근거한 조건부 허가가 주요한 이유였다. 시판 후에도 임상시험을 계속한다는 조건이었다. 장기 복용에서 관찰되는 임상변수를 통한 안전성과 유효성의 입증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FDA는 신속하게 허가한 이유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유 중의 하나로 "개발 초기부터 제약사와 긴밀하게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국 광고회사의 퀴즈에서 당첨된 응모작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간다"와 다름없는 견해였다. 

AIDS 환자에게 AZT의 처방이 시작되었다. 죽음의 길목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또한 HIV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또 다른 화합물 DDI와 DDC도 AZT의 허가 방식으로 곧 허가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AZT의 대안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대체제를 마련해 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AZT를 투약받고 1년이 지나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환자의 최대 50%는 메스꺼움과 근육 소실 등의 증상이 나타나서 더 이상 복용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었다. AZT에 대한 내성으로 약효도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대체제로 기대하였던 DDI와 DDC의 허가 소식마저 감감하였다. 

AIDS 환자에게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DDI와 DDC의 조속한 허가였다. 아주 명쾌하고 분명한 목적이었다. ACT UP은 시위대를 조직하여 FDA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FDA의 정문까지 몰려가서 외쳤다. 

정부는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의약품의 신속한 허가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의 신속한 허가 절차를 요구하였다. FDA는 의약품의 허가심사 규정을 새로이 마련하였다. AZT의 개발, 평가 그리고 허가의 경험을 토대로 하였다. 

1988년 10월 21일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에 Subpart E가 게재되었다. CFR 21 Part 312에 도입되는 새로운 규정이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나 심각하게 악화하는 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신약, 항생제 그리고 생물학적 제품을 대상으로 신속하게 허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제1상 임상시험이 끝나면 제2상 임상시험의 설계를 FDA와 협의하도록 의무화하였다. 기존의 제3상 임상시험에서 도출되는 종류의 자료를 제2상 임상시험에서 미리 얻어 제3상 임상시험의 결과 없이 허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FDA와 함께 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둘째는 제2상 임상시험이 완료되면 FDA는 유익성/위해성을 분석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질환의 심각성에 따라 약물의 유익성/위해성의 비를 달리하여 허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생명을 위협받는 질환의 경우 대체 치료법이 없다면 약물의 위해성을 감수하더라도 투약받고 싶은 환자의 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셋째는 제약회사의 동의를 구하여 시판 후에도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를 위한 임상 연구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1991년 10월 9일 AIDS 환자를 치료하는 두 번째 항바이러스제 DDI가 허가되었다.  AZT 허가 후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러나 임상시험이 시작된 후 허가까지의 시간은 AZT보다 약간 단축되었다. 임상시험에서 약물을 복용한 환자의 혈액 중 CD4의 수치를 대리변수로 삼아 가속승인경로( Accelerated Approval Pathway)를 밟아 허가했기 때문이다.

CD4 수치를 대리변수로 인정한 이유는 환자의 사망률과 상관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AIDS 환자의 CD4 수가 50을 넘으면 거의 사망하지 않았다. 또한 DDI는 AIDS 환자의 CD4 수를 10% 정도 증가시켜 환자의 사망률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가속승인경로가 공식화된 제도는 아니었다. 1990년 3월 AZT를 소아용으로 허가할 때 최초로 가속승인한 경험을 토대로 FDA가 마련한 내부 규정이었다.

FDA 청장 David Kessler는 조건부로 허가된 DDI가 제2상 임상시험에서 약효가 입증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다행히 1992년 4월 완료된 제2상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증명하였다.

DDI의 허가로 AIDS 환자는 다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AIDS만이 아니었다. 암 환자도 죽음의 문턱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항암제는 AIDS 치료제처럼 신속하게 허가되지 않았다. 암 환자는 의문을 품었다. 항암제는 왜 AIDS 치료제처럼 신속하게 허가되지 않는지 물음을 던졌다. 

CAN ACT 의 자문위원인 Heather Canning 박사는 AIDS 환자를 위한 국제적 행동 단체 ACT UP이 AZT를 빠르게 신약으로 허가되도록 로비한 것처럼 암 환자들도 항암제의 신속한 출시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2년 6월 세 번째 AIDS 치료제 DDC를 AZT와 병용 투약을 조건으로 가속승인하였다. 그럼에도 AIDS 환자의 FDA에 대한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AIDS 치료제를 늑장 허가하여 수만 명의 환자가 치료의 기회를 잃었다고 주장하였다. 미 의회는 조사에 착수하였다. 의약품 허가 절차 등 제도적 측면에서 문제점은 지적되지 않았다. 다만 FDA의 자원 부족이 부분적인 지연을 초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미 의회는 FDA의 허가심사 인력 증원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1992년 10월 신약의 심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약회사가 부담하도록 하는 PDUFA 법안을 통과시켰다. FDA는 제약회사가 지불하는 비용으로 의약품 심사에 필요한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의약품의 심사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FDA는 표준심사(Standard Review)와 우선심사(Priority Review) 제도를 마련하였다. 표준심사의 경우는 10개월의 심사 기간이 소요되지만, 우선심사로 지정되면 6개월 이내로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선심사는 FDA에 신약허가신청서(NDA/BLA)를 제출할 때 신청하면 60일 이내 지정 여부를 신청자에게 알려준다. 중대한 질병을 치료하거나, 안전성과 유효성이 상당히 개선할 것으로 판단되는 의약품이라면 지정될 수 있다. 

우선심사로 지정되더라도 임상시험 기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허가 기준이나 요구하는 근거 자료의 수준도 변경되지 않는다. [계속]

★ 용어와 약자의 상세 설명은 http://www.drug.co.kr에서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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