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가격 인상 때문에 틈만 나면
모자라기 전에, 오르기 전에 사놓는 루틴 생겨

서울 소재 한 약국의 창고. 발 딛을 틈이 없다. 
서울 소재 한 약국의 창고. 발 딛을 틈이 없다. 

약국 창고가 미어터진다. 적정 재고를 넘어 약국들이 너무 많은 재고를 안고 있다. 이는 2년여 '코로나 기간' 동안 전 세계적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약국 몸부림의 결과다. 다빈도 의약품의 잦은 품절, 잇따른 일반의약품 가격 인상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창고에 재고가 쌓여있지만 정작 필요한 약은 구할 수 없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 약국들은 감기와 코로나19 증상 관련 일반약, 지사제, 진통제 등 다빈도 중에서도 다빈도 의약품들을 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넘쳐나는 재고와 모자라는 약을 구하고자 약국들이 이중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한 약사는 "코로나 이전 평소와 비교해 재고량이 3배 정도 된다"며 재고 정리만 하려 해도 하루 날을 잡아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약사는 "창고는 이미 가득 찬 지 오래다. 약국 빈 공간, 창고로 가는 복도와 계단에도 약을 쌓아놓고 있다. 지금은 남은 공간이 없다"고 상황을 전했다. 

서울의 또 다른 약사는 "조제용 타이레놀이 귀하신 몸이다. 우리도 이제 몇 정 남지 않았다"며 다빈도 의약품 품귀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강조했다. 

 

① 다빈도 조제용 타이레놀, 기침 관련 일반약은 완전 실종

길고 길었던 코로나 시대, 그리고 감기와 장염과 같은 계절성 질병 유행은 다빈도 의약품 품귀를 부추기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타이레놀을 시작으로 동일성분의 아세트아미노펜 재고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약국들은 가장 시급한 재고로 조제용 타이레놀을 꼽았다.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진통제 중 높은 인지도로 코로나 이전부터 수급 불안정을 피할 수 없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타이레놀은 재고가 늘 부족한 의약품 중 하나"라며 "재고가 넉넉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타이레놀은 '코로나 접종 후 타이레놀을 복용하라'는 질병관리청의 발표 후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 수급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타이레놀 뿐만 아니다. 많은 감기약들이 코로나 감염에 따른 증상 완화에 대거 쓰이면서 품귀를 피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보다 봄,여름 동안 일반적인 감기 환자까지 늘어나 감기약 소비가 더 많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남의 K의사는 "코로나 기간 동안 아이들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감기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라며 "코로나가 끝나고 봄, 여름이 되면서 단체활동, 외부활동이 잦아져 감기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듯 하다"고 설명했다. 

'기침' 관련 캔디류는 소위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스트랩실 등 기침을 가라앉히는 제품들은 유통업체에도 들어온 지 오래라고 입을 모은다. 기침을 완화하는 각종 일반약부터 이제는 목캔디까지도 귀한 몸이 되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코로나로 기침 환자가 많이 늘어난 데다, 요즘 같은 때 대면 상황에서 기침은 큰 실례가 될 수 있어 환자들이 특히 기침에 예민하게 반응해 약을 챙기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때마침 여름과 휴가철을 맞아 바이러스 성 장염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유아용 지사제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일선 약국에서는 '약이 없으니 환자가 더 늘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지사제는 코로나 환자의 설사를 멎기 위해서도 처방됐는데, 최근 코로나 환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재고는 더 빨리 소진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약사는 "영유아에게는 쓸 수 있는 약이 정해져있는데, 이젠 그마저도 쓰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상비약에 대한 국민적 인식에 변화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영유아가 있는 집은 어린이용 해열제, 기침약, 콧물약, 거담제 구비가 필수다. 소비가 늘어나니 약국도 더 많은 재고를 준비해야 했다. 최근 코로나가 6차유행을 맞으며 소비자 불안심리가 고조됐고, 감기약을 비롯한 가정상비약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국들은 필요한 의약품 재고가 발견되면 즉시즉시 주문해 확보하고 있다. 
 

② 오르고 또 오르는 공급가격..."오르기 전에 사둬야"

한편 의약품 가격 인상은 약국 재고 증가에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가 인상은 약국이 재고 확보에 더 조급함을 느끼게 한다. 자고 일어나면 뛰는 공급가에, 언제 또 가격이 오를지 모르니 다빈도 의약품은 재고가 있을 때 확보해두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단 공급가 인상 소식이 알려지면 약국의 사재기는 피할 수 없다. 가격 인상을 앞두고는 아예 재고를 출하하지 않는 제약사도 있어 약국은 재고를 미리 확보하려 한다. 

유통가에 따르면 최근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공산품 할 것 없이 수십 가지 제품의 공급가격이 경쟁적으로 인상되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에 따르면 가격을 인상했거나 인상 계획을 통보한 제품이 100여 가지에 이른다. 여름에 많이 팔리는 살충제, 모기기피제는 물론 파스류, 드링크, 종합비타민 등 인상 품목은 종류도 다양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일양약품의 '원비디'가 12%, '노루모'가 16% 가격을 인상했다. 6월에는 광동제약 '쌍화탕'이 15%, 신신제약 '아레스' '신신찜파스'가 9% 인상한다고 약국에 알려왔다. 일동제약 '아로나민 씨플러스', 녹십자 '제놀쿨', 맨소래담아시아퍼시픽 '맨소래담', 고려은단 '마시는 비타민C', 존스앤 존슨 '리스테린', 옥시레킷벤키저 '스트렙실', 태극제약 '도미나 크림', 퍼슨 '칼라민로오숀', 한독 '클리어틴이부더블스팟톡크림' 등 내용제와 외용제가 가격을 인상했거나 조만간 인상할 예정이다. 

이밖에 각종 한방제재도 인상했거나 인상 계획을 세워놓았다. 

인상폭은 9%에서 많게는 16%까지 다양하다. 제약사들은 원료는 물론 포장지, 유통비, 물류비, 인건비 등 원자재가격이 모두 오르고 있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식품과 공산품 등은 이미 여러차례 가격은 올렸지만 그에 비하면 의약품은 가격인상에 보수적인 편"이라며 "현재 상황을 보면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③ 부피 큰 마스크, 손세정제 충분히 갖추다보니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판매처도 약국, 마트, 할인상점, 온라인 등 다양해졌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약국이 취급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마스크 등 개인 위생용품들의 브랜드와 종류와 크기가 다양해지면서 약국의 중요한 관리 품목이 됐다. 

이러한 위생용품을 크기, 종류별로 구색을 갖추다 보니 창고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적지 않다. 이런 품목들은 대량으로 주문해야 매인단가가 저렴해져 약국 입장에서는 대량 구입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서울의 한 약사는 "어디에나 손세정제가 비치되어 있고, 사람들도 여분의 마스크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필수품이 되었다"며 "특히 유동인구 많은 입지의 약국들은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어 "창고의 상당부분을 마스크와 소독제가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약국 입장에서 재고는 짐이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보관할 공간이 부족한 소규모 약국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젠 놓을 자리가 없어 약을 주문하기 꺼려진다'는 말도 한다. 유통기한이라도 임박하면 반품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재고 유통기한을 수시로 체크하고, 반품과 교환을 거듭하고 있다. 정상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유통기한이 더 길게 남은 재고로 교환을 반복하는 약국들 때문에 제약사 영업사원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잦은 품절과 공급가 인상이 약국 불안심리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약국 재고 부담을 늘리고 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약국이 사재기를 하면 유통업체도 재고 관리에 애를 먹는다. 아예 재고 '관리'를 할 수가 없다"며 "하지만 약국 상황도 이해되기에 재고 주문을 막을 수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의 한 약사는 "재유행에 재유행을 거듭하며 사회가 점차 코로나 상황을 벗어나고 있지 않나. 그동안 코로나를 이유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던 부분이 정상화되고 있고, 약국의 재고 부담도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 중 하나로 보인다"며 "어서 팬데믹을 극복하고 약국 운영도 안정되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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