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계, '7.7약가제도' 개정안 강력 성토..."국내사 역차별"

솔리리스주 같은 약제에 제한적으로 적용가능
혁신형 제약기업 '기업요건'서 제외돼
다국적제약사들도 "장벽높다" 시큰둥

한미FTA 이행이슈인 ‘7.7 약가우대제도’ 개정안이 7일 공개된 뒤, 제약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이게 한국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맞느냐”며 격앙된 분위기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국내 개발신약이 발 딛을 손바닥만한 땅조차 사라졌다고 아우성이다. 약가우대 요건 기준을 정한 관련 규정을 사문화한 것이자, 사실상 폐기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제약계 뿐 아니라 다국적제약사들도 볼멘소리다. '진료상 필수약제'에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제시해 기대할 게 없다는 의견이다.

제약계의 이런 격앙된 반응은 왜 나오는 걸까.

사실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도 이번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은 고통과 격무의 연속이었다. 미국 측이 이행이슈로 ‘7.7약가우대제도’를 ‘원포인트’로 지목해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과제였다.

수십개 버전을 만들어 놓고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가령 국내제약사에 적용할 기준과 외자계 제약사에 적용할 기준을 분리하는 방안도 있었다. 그러나 통상관련 규정은 이렇게 이원화할 수 없게 돼 있어서 이런 복안은 폐기됐다.

수십개 버전 만들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는 데

심사평가원은 보도참고자료에서 한미 양측이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제도’를 한미 FTA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고, 거기에 부합하게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국내 제약사를 '역차별'하는 다국적사 우대제도라며, 국내 제약계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이렇다. '7.7 약가우대제도'는 기업조건과 품목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의약품을 우대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먼저 기업조건을 보면, 혁신형제약기업 또는 R&D 투자비율이나 개방형 혁신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 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기업조건을 WHO 추천 필수의약품 또는 국가필수의약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기업으로 변경했다. 정부가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인증한 혁신형제약기업은 요건에서 사라졌다. R&D와 신약개발을 유인하기 위한 약가우대제도에 국내 R&D의 상징인 ‘혁신형제약기업’을 제외시키고 조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이 불가피하게 미국 측의 요구를 부분적으로라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수의약품에 대한 공급노력을 약가우대제도와 연계시킨 건 의미있는 시도로 보인다. 개정안의 기업조건을 충족하는 제약기업은 성분명을 약제급여목록표와 매칭시킨 결과 약 280개로 분석됐다. WHO 추천 필수의약품 공급업체는 229개(국내 188개, 외자 41개)인데 여기다 국가필수의약품 공급업체를 더해 중복을 제거한 결과 280개 정도가 나온 것이다. 이중 외자계 제약사는 44개다.

기업요건 충족 제약사 약 280개...외자계 44개

일단 첫 번째 기업조건을 만족한 제약사는 혁신형제약사와 이에 준하는 기업과 비교하면 대거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 다국적제약사들은 "최근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를 내놓고 있는 바이오 기반 제약사들은 혁신의약품을 개발해도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값싼 저가 필수의약품을 단 한품목만 허가받아서 공급해도 되기 때문에 바이오제약사들에게 원천적인 진입장벽은 못된다.

이 조건에 부합해도 공급의무 위반 또는 불법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았거나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된 업체는 제외된다. 단 개정안 시행일부터 적용하기로 해 이전 이력은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정부 측 관계자는 설명했다.

품목조건은 국내 전공정 생산, 국내기업-외국계 제약기업 간 공동개발, 국내에서 허가 임상 수행, 기타 보건의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으로 정해져 있다. 미국이 국내 제약사에게 유리한 규정이라며, 개정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한 게 바로 품목조건이다.

'대체가능한 다른 치료법 없음'...가장 큰 허들

개정안은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대체가능한 다른 치료법(약제포함) 없음, 생존기간의 상당한 연장 등 임상적 유용성 개선입증, 미국 FDA의 획기적의약품지정(BTD) 또는 유럽 EMA 신속심사(PRIME) 적용, 희귀질환치료제 또는 항암제 등 5개 요건을 모두 만족하는 혁신적 신약으로 품목조건을 변경했다.

국내 제약사들은 "FDA나 EMA 심사결과를 받아오라는 건 다국적사 신약에 더 유리한 조건이고, 국내개발신약에 사실상 약가우대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국적제약사들도 “대체가능한 치료법이 없는 약제는 거의 없다. 진료상필수약제에나 해당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 건 우대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실제 이 기준은 생존기간 상당기간 연장 등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개선을 입증한 경우를 포함해 2개 항목이 진료상필수약제 인정기준과 겹친다. 이에 대해 정부 측 관계자는 “진료상필수약제 기준을 참고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프랑스 등 해외국가들도 혁신신약 인정기준으로 이런 요건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식약처가 신속심사제도를 도입할 경우 기준에 추가할지 여부를 물은 기자의 질문에는 “글로벌 혁신신약이라는 취지를 감안해 FDA와 EMA 신속심사를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식약처 신속심사제도가 도입되면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개정안 논의과정에서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세포치료제 우대요건은 현행대로...일관성 결여

‘대체가능한 치료법이 없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있는 경우는 대체가능한 치료법이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존적 치료나 증상완화 등의 요법만 있는 경우는 해당된다”고 했다.

약가우대 측면에서 개정안은 일관적이지 않은 점도 있다. 세포치료제 관련 규정은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실제 현 규정은 ▲기허가 약제와 세포기원, 유래 조직/세포, 세포 종류 중 2가지 이상의 요소가 상이하고 국내에서 전공정 생산한 것으로 인정한 세포치료제 ▲국내에서 허가 임상 수행 ▲치료적 확증성을 입증한 경우 ▲혁신형 제약기업 또는 이에 준하는 기업 등을 우대대상 요건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는 국내 전공정 생산, 혁신형제약기업 등이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정부 측 관계자는 “미국 측이 굳이 지목하는 않은 항목까지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보고, 세포치료제 관련 규정은 그대로 뒀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제약사들은 기업조건은 대폭 완화됐지만 품목조건이 까다로워서 이 개정안이 확정되면 국내외 제약사 품목 모두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약가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상 출입문을 폐쇄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국내사와 다국적사의 시각차이는 존재한다.

"역차별...개정안 보고 눈을 의심했다"

국내사 한 관계자는 “개정안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런 역차별도 없다. '7.7약가우대제도'는 정부가 세계 7대 제약강국으로 국내 제약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야심차게 마련한 제도인데, 국내개발신약 진입로는 폐쇄하고, 거꾸로 다국적제약사에 탄탄대로를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사실 '7.7약가우대제도'는 국내 제약사에 유리한 기준으로 돼 있다고 했지만 제도도입 이후 2년이 넘는동안 수혜를 입은 품목은 두개 품목에 불과했다. 다국적사는 차별을 주장하지만 이 제도를 적용받은 국산신약이 그만큼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국적사 측은 '역차별'이 아니라 사실상의 우대제도 폐기라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국적사 관계자는 “개정안이 확정되면 승자는 한국정부이고 복지부다. 복지부는 항상 통상문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내준 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개정안 요건에 부합하는 약제는 실제 몇 개정도나 될까. ‘과거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부가 분석한 결과 품목수는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정 가능한 건 BTD나 PRIME 대상이 된 약제는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국내사들이 다국적사에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또 그동안 진료상 필수약제로 인정받은 8~9개 약제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 요건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FDA BTD 적용약제 요건 충족 가능성 있어

정부 측 관계자는 “허가당시 BTD제도가 없어서 이 제도 적용을 받지 못했지만 솔리리스주와 같은 약제가 개정안 요건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제약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도 비판논평을 오늘(9일)부터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이번 개정안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셈이다. 이 논평들의 골자는 역시 '역차별'과 다국적사 신약 가격인상 우려다. 여기다 결국 미국 측에 빌미를 제공한 건 '7.7약가우대제도'라며, 폐지 필요성을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심사평가원은 이 내용이 담긴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 대해 내달 17일까지 의견을 듣는다. 시행목표일은 같은 달 31일이다. 이 개정안이 확정되면 여기에 맞춰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기준’도 손질해야 한다. 현재는 임상적 유용성이 대체약제와 유사한 경우도 우대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평가기준은 사실상 전면 개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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