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논의 시작한 베뉴가이드라인, 현재까지도 케이스별 정비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다국적제약 영업·마케팅 부서의 컴플레인 중 하나가 ‘장소’ 문제라고 합니다. 제품설명회를 진행하는 장소에 대한 제한규정이 너무 까다로운데다 국내 제약회사가 섭외하는 장소와의 상대적 비교 때문에 내부 컴플라이언스 부서에 꽤 깐깐하게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모양입니다.

다국적사들은 ①지나치게 사치스러운 호텔 ②대다수 참석자들이 근무 또는 거주하는 지역 ③관광, 오락, 유흥이 주된 목적이 아닌 곳 등 KRPIA의 가이드라인(Venue Guideline)을 기본으로 내부규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③번 가이드라인이 확장되면서 온천, 해수욕장, 골프, 스키, 카지노, 워터파크와 같은 금지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바다(해수욕장)가 보이면 안된다”는 극단의 표현과 “3면이 바다인데 어디가서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판촉물이나 제품설명회 장소규정이 내년부터 강화된다는 뉴스를 접한 국내제약 영업·마케팅 관계자들은 당장 답답해합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9월 ①스포츠, 레저, 취미, 오락에 관련되는 판촉물과 ②관광, 스포츠, 레저 등 부대시설이 있는 장소에서의 제품설명회를 내년부터 금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약협회가 밝힌 기준은 해석의 여지를 어느 정도 열어뒀다는 측면에서 KRPIA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한규정이 점점 많아지니 영업·마케팅 담당자들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업체의 입장 일부를 정리해보면 ▲규모(100~300명) 있는 제품설명회를 열 수 있는 호텔은 지역별로 제한적이고 ▲의사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제주도 같은 매력적인 지역의 호텔을 선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제품설명회가 몰리는 봄, 가을에는 호텔예약 경쟁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는 하소연도 있었습니다.

국내업체의 이런 하소연은 다국적사에 비해 상대적 열세에 있는 ‘품목 경쟁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국적사도 지금의 가이드라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꽤 오랜 세월을 노력했다는 점을 알고나면 마냥 불평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시작된 장소 가이드라인(Venue Guideline)에 대한 논의는 2014년에야 명문화(written)됐습니다. 제품설명회 뿐만 아니라 KRPIA 회원사들이 진행하는 모든 학술행사로 이 기준이 확대된 것은 2016년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케이스별 논의를 통해 세밀하게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베뉴 가이드라인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흥미롭습니다. 인천 소래포구의 한 호텔이 이 기준에 맞는지 사내 의견이 분분하자 “호텔 옥상에 올라가서 바다가 보이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또 부산 해운대 인근 호텔에서는 현장을 확인한 담당자 마다 바다가 보이는지 여부를 다르게 판단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물론 관점의 차이였다고 합니다만.

“바다가 보인다”가 아니라 “바다가 보이지만...”이라는 세밀한 잣대는 그렇게 7년을 다듬어져 적용되고 있습니다. 항구에 인접한 비즈니스 성격의 호텔, 20만원 안팎의 숙박비 등의 보강기준을 통해 회사마다 적합한 장소기준을 다국적사들은 운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사 입장을 이해한다. 우리도 처음엔 어려웠지만, 의사 선생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다국적사 컴플라이언스 관계자의 말은 되새겨볼만 합니다.

당장 국내제약이 다국적사 수준의 장소기준이나 판촉물 금지를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또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방향성에 동의한다면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녹록한 상황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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