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00% 깨진 후 23%찍고 91% 회복에 56년
업체 과밀과 뒤처진 물류 등, 1965년 상황과 흡사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 허투루 지나칠 일 아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21 완제의약품 유통정보 통계집'에 따르면 도매를 통한 의약품 유통일원화 비중이 지난해 91.1%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요양기관(약국과 의료기관)이 작년 구매한 의약품 총액(32조1908억 원) 중, 91.1%(29조3330억 원)를 도매유통업체에서 구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 8.9%는 제약업체 또는 의약품수입업체에서 도매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구매했다. 

따라서 91.1%는 요양기관에 의약품을 공급한 3278곳 도매유통업체들의 전체 밥그릇 크기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중요한 '유통일원화' 개념이 어느 새 업계에서 2010년 이후 까맣게 잊힌 용어가 됐다. 유통일원화는 도매업계가 원상복구 되기를 염원했던 길고긴 질곡의 개념이었고 2010년에는 보건복지부 정문 앞에서 9월과 10월 전국 각지의 수많은 도매유통업체 임직원들이 모여 종합병원 직거래 금지 규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시위를 벌이며 삭발까지 했는데 말이다. 

1965년 이전, 도매를 통한 의약품 유통일원화 비중은 100%였다. 약국이나 병의원 등은 제약업체 또는 수입업체와 직거래를 일체 하지 않았다. 으레 도매유통업체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의약품 거래 관습은 1965년 DSC(DongA Sales Circle) 출현으로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당시 동아제약은 신제품 '박카스D'에 대해 은행 빚을 얻어 약 9개월 동안 광고를 퍼부었다. 그 빚으로 인해 동아제약은 부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몰렸다. 광고 효과가 끓어올라 약국에서 박카스D 주문이 쇄도했지만 그때 물류시스템이 열악했던 도매업계가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자(배송 지연) 동아제약은 대량생산(Mass Production)ㆍ대량판매(Mass Sales) 실현을 위해 'DSC'라는 직판조직을 만들어 약국과 활발하게 직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이 전략의 성공을 지켜 본 제약업체들이 너도나도 약국과 직거래에 나서면서 도매업계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1992년경 도매유통업계의 유통일원화 비중은 23% 안팎의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당시 의약품도매협회(현 유통협회)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정부당국의 의약품도매유통업 육성 의지가 맞닿아, 1994년7월 세상에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제약업체(수입업체 포함)의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직거래 금지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그 강제력에 의해 2000년까지 유통일원화 비중은 35% 내외까지 다시 반등했다.

35% 언저리에서 주춤했던 유통일원화 비중이 최근 91% 수준을 넘어선 것은 오로지 2000년8월부터 시행된 의약분업 덕택으로 분석된다. 

의약분업으로 외래 처방전 조제를 의료기관으로부터 넘겨받은 약국은 불가피하게 도매거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떤 환자가 외래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찾아와 조제를 해달라고 할지 모르는데 약국이 무턱대고 수많은 종류의 조제약 재고를 모두 비축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으며 약국 조제약의 물류 특성이 '다품목 소량 다빈도 배송'인데 제약사 직거래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965년 유통일원화 비중이 DSC에 의해 무너진 후 한때 23%선으로 바닥을 찍었지만 종합병원 직거래 금지와 의약분업 등 양대 제도의 도움을 받아 그 비중이 지난해 91.1%까지 회복되는데 장장 5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처럼 제약업체와 도매유통업체 그리고 요양기관(특히 약국)과의 거래 관계는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해 왔다. 따라서 지금의 유통일원화 비중 91.1%도 상황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금의 도매유통업계 상황은 2가지 측면에서 1965~1970년과 흡사하다.

첫째, 보관 및 운송 관련 물류시설과 운영 시스템 등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1965년에는 주문이 밀려드는 박카스D 물류를 제대로 감당할 능력이 부족해 유통일원화가 무너졌다. 당시는 후진적 물류 자체의 문제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선진적 물류 문제에 봉착해 있다. 현 물류의 품질은 1965~1970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상대적인 후진적 물류 과제가 그대로 남아있다. 

예컨대, GSP(우수의약품유통관리기준, Good supplying Practice)는 이제 기본적인 의약품도매상 허가조건이 됐지만, 선진국은 이미 한 단계 더 높아진 GDP(Good Distribution Practice, 의약품적정유통기준)로 업그레이드(upgrade)돼 또 쫓아가야 하는 후진적 입장이 됐다. 

구체적으로 오는 7월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일부 강화된 콜드체인 규정은 선진국에선 기본에 속한 것이지만, 우리 한국에선 이 문제의 세찬 불길이 3278곳 도매유통업계 전체와 3곳 제약업체 간의 유통마진율 다툼으로 번져 도매유통업계가 집단적으로 인슐린 제제 유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며, 당국은 도매유통업계의 어려운 물류 실상을 고려해 6개월간의 계도기간까지 부여한바 있다.

둘째, 도매유통업체가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1965년~1970년에는 제약업체와 약국 간의 직거래 성행으로 도매업체의 부도ㆍ폐업이 속출했는데, 업체가 폐업되면 그 임직원들에 의해 다수의 신규 도매상이 다시 탄생됐고 게다가 불법적인 의약품 브로커(broker)와 중간 도매상까지 만연되었으며 이들의 복잡한 경쟁 과열로 거래질서가 심히 문란했다. 이로 인해 계속 부도사태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됐다. 

오죽했으면 서울특별시가 1970년4월 5개 지역에 도매상 허가와 동일한 구(區) 내에서의 이전을 불허하기로 방침을 굳히면서 판매질서의 확립과 부실업체 정비 및 브로커 근절 등을 위해 지역별로 도매상 허가 억제가 불가피하다고 밝혔을까. 

오늘날은 도매유통업체들이 매년 평균 200곳 안팎으로 늘어나고 있다. 2021년 요양기관에 공급 실적이 있는 의약품도매상만도 3278곳이나 된다.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의약품 입찰시장에서 1원짜리에 버금가는 초저가 낙찰, 실현된 평균 유통마진율(매출액총이익률) 6%대 하락 등은 경쟁 과열의 표상이 되고 있다. 우리 한국보다 의약품 도매시장이 약 5배 이상 큰 일본의 경우 도매업체는 2019년 현재 고작 61곳뿐이었다. 

곧 닥칠 오는 17일, 4~5%(유통업계 주장)에 불과한 '유통마진율'을 올려 주지 않으면 '인슐린 제제' 배송 물류를 똘똘 뭉쳐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흘리고 있는 의약품 도매유통업계가 어떻게 움직일까? 엄포로 그칠까 행동으로 보여줄까 귀추가 주목된다.

1965년에는 박카스D 물류 능력에 약점을 보여 그 이전에 100%이었던 유통일원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의도된 인슐린 배송 물류 포기에 의해 제약업체의 약국 직거래가 촉발됨으로써 천신만고 끝에 회복된 91.1%의 유통일원화에 행여 또 무너지는 구멍이 생길까 조마조마하다.

도매유통업체 초과밀 상태는 마냥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 초과밀 사태는 창고 실면적 폐지 또는 완화를 요구한 도매유통업계의 자업자득의 결과이므로 누구를 탓할 일도 못된다. 

참고자료

도협30년사 및 도협50년사(한국의약품유통협회)
완제의약품 유통정보 통계집(건강보험심사평가원)
藥事ハンドブック 2021(じほ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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