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약사회와 약사들은 갈라파고스 생태계를 원하나

오늘날도 약사들은 의약품에 관한한 소비자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대칭적 파워'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숙취로 인한 두통을 가라 앉히기 위해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를 복용하면 간 장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상식화된 사실을 자신들만의 배타적 지식으로 인식하는 약사들도 있을 것이다. '의약품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진 약사들에게 미안하지만, 스마트 폰을 손에 쥔 대다수 소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약사회 기관지인 약사공론에서 기자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관찰한 약국과 약사는 늘 몇 걸음 뒤에서 세상의 흐름을 유유자적 따라갔지 흐름과 같이 가거나 앞서려 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에서 POS를 쓰지 않고 아날로그 감성이 뭍어나는 곳은 약국(쓰는 곳도 있긴하다)이 거의 유일하다. 실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던 개별약국들이 초조하거나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웬만한 것들은 사회적 파워가 막강했던 대한약사회가 바람막이 노릇을 했다. 젊은 지도부가 이끌던 약사회 회원 규모 4분의 1의 한의사들에게 무참히 밟히긴 전까지 약사회는 영향력 높은 이익집단이었다. 패인은 민심을 읽지 못한데 있었다. 현대식 약국 한약장 설치문제로 야기된 한약파동에서 시민들의 정서적 지지를 얻은 한의사들은 물리적 힘과 약사법 중심으로 싸운 약사회를 무력화시켰다. '양약(洋藥)은 약사(藥師)에게, 한약(韓藥)은 한의사(韓醫師)에게'라는 한의사들의 구호는 마법의 명령어, 치트키였다. 한약사도 이 과정에서 태어났다.

"한의대 교수 자원을 양성한 것도, 한약을 과학화 한것도 약사"라는 주장은 서초동 약사회관 주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집회를 통한 세 과시조차 먹히지 않자 강성으로 돌아선 약사들은 '전국 약국 휴업'이라는 강수를 대한민국 사회에 던졌다. 비극적 결말이었다.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등장한 까닭에 사회적 정당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문민정부의 김영삼 대통령은 "이익단체의 집단이기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그의 부인 손명순 여사도 약사였지만 공인인 대통령은 냉혹했다. 1993년 9월22일 밤 전국 약국휴업을 의결하고 이튿날 강행한 김희중 대한약사회장 직무대행은 26일 구속 수감됐다. 일사천리였다. '한약조제권은 약사의 권리로 빼앗길 수 없다'며 집행부를 압박했던 젊은 약사들은 정작 공권력이 휘날리자 풀잎처럼 누웠다. 휴업은 하루를 견디지 못했고, 이후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

한약파동은 약사들에게 각성제가 됐다. 덩치 큰 집단이라도 사회를 향해 주먹질을 하면 그 이상 돌려받게 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지지가 없는 가운데서 외치는 주장은 '집단이기주의'로 몰릴 뿐이라는 교훈을 안겨줬다. 이 교훈은  의사와 약사간 치열하게 맞붙은 1990년대 후반 의약분업 협상 과정에서 요긴하게 작용했다. 처방과 조제의 분리, 과도한 할증과 할인 등 전문의약품을 둘러싼 투명성 확보가 시대적 아젠다 임을 간파한 약사들은 시민단체들과 연대하고, '자료와 통계 싸움'을 하며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했던 의사들을 침묵시키는데 성공했다.  

의약분업에 대한 평가 지점에 따라 다양한 이견이 있지만, 약국 관점으로만 보면 의약분업은 약사와 약국의 미래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2000년 8월 의약분업 전면시행 이전 '의사처방이 없는 가운데 의사처럼 진단하며 전문의약품을 직접 조제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약사들도 종종 있지만, 만약 당시 약사회와 약사들이 '주도적으로 의약분업을 다루지 않았'다면, 의사들 영향력에 눌린 끝에 오늘과 전혀 다른 모습의 의약분업 아래서 그들은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병의원들이 내부에 약사를 두고 직접 조제하는 '직능분업'이 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뜻으로, 병의원 종사 약사 아니면 '약도 조제하거나 판매하는 잡화점 같은 일본약국'이 됐을지 모른다. 의약분업을 안했어야 한다는 말들도 여전히 회자되지만, 과연 의약분업은 약사들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의약분업은 의도하지 않게 '24시간 편의점 상비의약품 판매'를 불러왔다. 명절과 휴일 등에 약국이 문을 열지 않아 소비자들이 감기약이나 소화제 등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는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던 기간,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의원따라 일찍 문을 닫는 약국들이 늘어나자 논란은 더 확대됐다. 약사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의약품 안전'을 앞 세웠다. 약사법에 규정돼 있는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약국 외 장소에서는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논리를 굳건히 펼쳤다. 약사회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물론 국회 보건복지위원들도 이같은 약사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 편의점 상비약 판매 제도는 일단락되는가 싶었을 즈음 돌발 변수가 생겼다.

서울시약사회도 상주해 있는 대한약사회 건물에는 문제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펼침막이 내려 걸린다.
서울시약사회도 상주해 있는 대한약사회 건물에는 문제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펼침막이 내려 걸린다.

돌발변수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친 약사 성향을 보여 약사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감기약 소화제 슈퍼판매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유보한데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2011년 6월 8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필요한 제도가 왜 유보됐는지" 짚으며 "사무관처럼 일을 하느냐"고 진수희 장관에게 화를 냈다. 진 장관은 지역구인 서울 성동구 약사들에게 일반약 슈퍼판매는 없다고 안심시켰을만큼 의약품 안전성을 이해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약사회가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조직적 로비를 했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슈퍼판매 불가를 옹호하던 의원들이 이 문제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졸지에 고립무원이 된 약사회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문제 협상에 나서거나 아니면 한약파동 때처럼 끝까지 저항하거나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약사들은 정서적으로 흥분해 있었다. 약사를, 약국을 그만두는 한이있어도 의약품 슈퍼판매는 안된다는 분노는 한약파동 당시처럼 드 높았다. 이 때 쓰라린 한약파동의 교훈과 달콤했던 의약분업의 교훈은 약사회 집행부가 저항하는 대신 협상에 나서는 모습으로 화가날대로 나 있는 정부를 달래 슈퍼판매 품목을 최소화도록 이끌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향적 협의'라는 것이고, 협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매약노(賣藥奴)'라는 주홍글자가 따라 붙었다. 이 프레임은 직선제 선거에 그대로 반영돼 협상에 나섰던 사람들에게 패배를 안겼다. 

오늘날 약사회 리더들은 너나없이 '매약노(賣藥奴) 프레임'에 갇혔다. 약사들의 의중과 다른 의사결정과 선택을 하게되는 리더들은 그것이 약사의 미래를 위해 유일한 선택이든 아니든 매약노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이는 최소한 약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약사 정치계에서 사실상 사망선고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보니 약사회 앞에 당면해 있는 거의 모든 문제적 사안들의 답은 정해져 있다. 약사들에게만 권리가 있는 일반약 화상판매기 시범사업은 '안된다', 비대면 진료에 따른 비대면 투약(약배달) '안된다', 이와 관련해 논의할 협의체 참여 '안된다' 등등 모두 아니된다 뿐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해 보이지만, 자칫 사고와 선택의 경직성을 불러 고립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약파동이나 의약분업이나 상비약 편의점 판매가 약사들의 눈에는 돌발 사안처럼 보이겠지만, 제3자의 눈에는 제 때에 맞춰 나온 문제들로 보인다. 과거지사 어쨌든 정부가 면허를 부여하고 이 사회가 인정하는 한의사가 5000명이 넘었는데 약사가 한약조제권을 갖는 문제는 조정이 필요한 사안 아니었나. 의사 없던 시절 용인했던 약사들의 의사 역할도 의사 숫자가 늘었으니 멈춰야했고, 의약품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약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처방도 견제가 필요했다. 의약의 명확한 역할 조정이다. 의약품 안전성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라지만, 약국 독점으로 풀리지 않는 소비자 의약품 접근성과 편의성을 보강하려면 약국과 소비자간 최대공약수가 필요했다.

'안된다'는 선언이 전략이라면 모를까, 복잡한 문제로부터 담을 쌓겠다는 것이라면 약사들의 미래는 걱정된다. 비대면 진료문제는 약사회와 약사들 앞에 놓인 제일 중요한 시험문제다. 바늘과 실처럼, 비대면 진료와 비대면 투약(비대면 배달)도 한짝이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 의료계는 이미 주도권을 쥐었다. 약사들이 플랫폼기업에 놀랐다지만, 최근 의료계 중심으로 논의되는 디지털 플랫폼을 마냥 배척해서는 안된다. 플랫폼 사 기업에 의사와 약사가 종속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의사와 약사, 병의원과 약국에 맟춤한 디지털 플랫폼 논의로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이다. 

약사공론과 데일리팜에서 일하며 의약품 안전성, 달리말해 안전한 의약품 사용의 가치를 옹호하는 글을 적잖게 작성했던 기자지만, 요즘에는 주말이든 휴일이든 약국문을 닫았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편의점에 웬만한 것은 있고 솔직히 편하다. 될 수 있으면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했었지만, 코로나19 기간에 학습한 비대면 주문에 익숙해져 이젠 당근마켓에 뭣좀 내다 팔것이 없는지 살필 지경이 됐다. 온라인 몰에서 의약품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약사들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대면을 즐기고 익숙하다면 의약품 소비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약사의 미래를 위한 리더들이 시대흐름에 맞춰 최선의 선택을 지향하되 차선을,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단언컨대, 과거에도 미래에도 매약노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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