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돌 히트가 만난 '상상력 부스터' ③ 삼화당피앤티 이경수 대표

인쇄업체가 기술개발? ISO9001, 자동조색장비(MIXCO) 등 차별화
국내공장 두던 글로벌제약 포장재 도맡아, 국내외 40여개사 거래

삼화당피앤티 이경수 대표. 그림(사진)들로 인테리어를 한 남양주 본사는 일반적인 인쇄업체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린다.
삼화당피앤티 이경수 대표. 그림(사진)들로 인테리어를 한 남양주 본사는 일반적인 인쇄업체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린다.

"고려청자를 지금은 왜 못 만들 것 같아요?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사람들' 때문이에요. 다 가르쳐줘도 10% 핵심기술은 절대 비밀로 하거든요. '사람들'의 그런 속성 때문에 기술이 제대로 이어질 수가 없었던 거에요."

타이레놀, 비아그라, 노바스크... 제약바이오와 연관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의약품의 포장재를 생산하는 삼화당피앤티 이경수 대표. 2019년 신축한 남양주 본사에서 마주앉은 그는 불쑥 고려청자 이야기부터 꺼냈다. 인쇄업과 고려청자라. 2009년 삼화당정판에서 정판을 떼고 피앤티(Printing&Technology)를 넣어 회사 이름을 바꾼 이유가 짐작이 갔다. 전통 인쇄업의 한계를 넘어설 정답들을 이 대표는 기술력에서 찾아왔던 셈이다.

삼화당피앤티 남양주 본사 전경.
삼화당피앤티 남양주 본사 전경.

타이레놀 같이 이름만 대면 알법한 의약품들의 겉포장은 삼화당이 대부분 맡아서 했어요. 이런 성과 역시 기술력 때문이겠지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제약회사들과 거의 대부분 거래처 등록을 했을 정도로 유명 제품들을 많이 했지요. 그걸 딱 잘라 기술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인쇄업체들과 차별화됐던 건 사실이에요. 그 결정적 요인을 꼽으라면 2000년에 획득한 ISO9001(국제품질경영시스템)이었어요."

 

인쇄업과 ISO인증, 확 다가오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인쇄업에서는 우리가 처음이었으니까요. ISO 인증을 너무 힘들게 받느라 자축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그 때 초청했던 제약계 CEO 한 분이 '삼화당이 왜?'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ISO 덕분인지, 삼화당 인쇄 품질이 일정하게 잘 나온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앉아서 영업을 한 거지요. 글로벌 회사들에게 내밀 ISO라는 국제 자격증까지 갖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플러스가 되긴 많이 됐어요."

 

스스로도 생소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인쇄에 ISO를 묶을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기업들 정도만 ISO에 관심을 둘 때였어요. 돌아가신 아버님(창업주 故 이석남 회장)을 설득해서 그 당시 5000만원 넘게 컨설팅에 썼어요. 인쇄는 선례가 없으니 참고할 매뉴얼도 없었어요. 품질과 원가, 이 두 가지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시스템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아버지께 이거 하면 품질 좋아지고 불량률 줄어든다고 몇 차례 말씀드린 끝에 겨우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지요."

 

생각대로 정말 불량률이 낮아지던가요?

"말도 마세요. ISO를 실제 적용했더니 해 마다 불량률이 늘어나는 거에요. 그게 한 5년을 그랬으니까, 아버지 눈치 엄청 봤지요. 그런데 5년 딱 지나니까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겁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동안 감춰져 있었던 불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거에요. 인쇄 단위로는 '연'이라고 하는데, 한 연에 불량이 나면 한 연을 또 잘라 달라고 해서 몰래 작업을 해 놓았던 거에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는데 이게 다 나왔던 거지요. 문제 삼지 않을테니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자고 직원들을 설득했어요. 그렇게 5년을 하고 났더니 품질이 확 좋아지는 겁니다. 이러면서 입소문이 난 거지요. 우리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영업부가 없어요. 기술력이 영업력이라고 생각해요."

 

글로벌 회사들이 그렇게 찾아왔군요.

"맞아요. 2000년 초부터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한국에 막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ISO 인증서를 딱 보여줬어요. 다른 회사들하고 완전히 달랐죠. 글로벌 회사들은 오디트(audit)를 나와도 물어보는게 달라요. 국내 회사들은 장비가 어디거냐, 신형이냐 이런거 보는데 글로벌 회사들은 장비를 안봐요. 소프트웨어, 운영 시스템을 보더라고요. 그러니까 ISO가 통한거지요. 얀센, 화이자, MSD... 거의 대부분 글로벌 회사들과 거래를 했어요. 화이자 노바스크가 출시됐을 때는 월 40만, 50만 장까지 물량이 나온 적도 있었으니까요."

삼화당피앤티가 공급하는 타이레놀, 램시마, 팔팔 등 유명 의약품 포장재들.
삼화당피앤티가 공급하는 타이레놀, 램시마, 팔팔 등 유명 의약품 포장재들.

지금은 어떤가요?

"글로벌 회사들이 국내 공장을 다 철수하고 수입으로 바꾸면서 국내업체에 포장재 주문을 하는 일은 많이 줄어 들었지요.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삼화당정판 설립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한미약품을 비롯해 삼성바이오로직스, JW중외제약, 한독, 한국화이자제약, 셀트리온 등 40여개 국내외 제약회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 수주를 이야기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 생산하는 모더나 백신 포장재를 우리가 공급해요."

 

색상을 자동으로 맞춰주는 기계장비를 개발했던데, 인쇄업체의 외도라고 봐도 될까요?

"외도는 아니에요. 인쇄에 기술을 더 하는 일이니까요. 2008년에 기술연구소를 만들어서 5년 연구 끝에 자동조색장비인 MIXCO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어요. 그 전에는 사람(조색사)이 하던 일이었거든요. 지금도 상당수 업체들은 조색사들이 색깔을 맞춰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오늘 만든 빨강색이, 내일이나 모레 만들 빨강색과 완전히 똑같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기계 개발을 생각했어요. 색깔 자판기라고 할까요? 언제, 어떤 조건에서도 동일한 색깔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고민의 결과물이에요. MIXCO는요."

일명 '색깔 자판기'라고 불리는 믹스코. 삼화당피앤티는 조색 관련 인쇄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믹스코를 직접 개발했다.
일명 '색깔 자판기'라고 불리는 믹스코. 삼화당피앤티는 조색 관련 인쇄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믹스코를 직접 개발했다.

일반인 눈으로는 구별이 어렵지만, 같은 빨강색도 조색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빨강색이 나올 수 있다는 거군요.

"4원색 아시죠? 이 4가지 색깔을 기본으로 여러 색들을 만들어 내요. A회사가 쓰는 고유의 빨강색과 B회사가 쓰는 빨강색이 조금씩 달라요. 조색사들이 이 차이를 구분해서 만들어내 줘야 A회사의 빨강색, B회사의 빨강색의 특색이 유지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조색 능력이 인쇄 품질을 좌우해요. 이걸 사람이 하니까. 어려움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개발한 MIXCO는 각 회사가 주문하는 색깔의 고유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마다 불러와서 자동 배합하기 때문에 그 색깔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고 그게 곧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어요. MIXCO에는 우리와 거래하는 모든 업체들의 별색 데이터들이 다 들어 있어요. 쉽게 말해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그 업체에 맞는 색깔이 배합되어서 나와요."

 

RFID는 또 뭘까요? 의약품 포장재에 RFID 태그를 부착하는 기술도 가장 먼저 개발하셨던데, 이것도 본업인가요?

"당연히 본업이지요. 해운회사들이 콘테이너 마다 RFID 태그를 적용해서 GPS로 자기들 콘테이너 위치를 다 추적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무릎을 쳤어요. 콘테이너는 해운회사가 실어나르는 제품을 담는 포장재라고 볼 수 있잖아요. 일반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RFID가 활성화되면 어디에 붙일거냐. 결국 포장재에 RFID를 부착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구원들과 그때부터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연구 초창기에 정부기관 및 학계와 네임택에 RFID를 부착하고 컨퍼런스 참석자 동선을 출입문 리더기로 체크해서 당일 시연하는 협업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RFID 고속부착 및 인코딩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360도 회전하면서 포장재 위치 어디에나 RFID 태그를 부착하고 검수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당시 제약회사에 들어가서 RFID 이야기를 하면, ‘삼화당이 왜?’라는 반응이 나왔어요. ISO 때와 마찬가지죠? RFID가 의약품 분야에서는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한게 아쉽긴 해요."

의약품 겉포장 어느 곳이나 자동 부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삼화당피앤티의 RFID 부착 시스템.
의약품 겉포장 어느 곳이나 자동 부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삼화당피앤티의 RFID 부착 시스템.

인쇄업이라고 하면 통상 영세하고 낙후된 이미지잖아요. 대표님은 그런 고정관념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ISO, MIXCO, RFID 같은 키워드들을 통해서요.

"너무 거창한거 같긴 하지만 좀 정리해본다면 저는 인쇄업도 매뉴얼화돼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가지고 모든 일을 진행했어요. 인쇄업 하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느낌이 강하잖아요. ISO를 도입한 것도, MIXCO나 RFID에 도전한 것도 모두 우리 회사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과정이 매뉴얼화돼서 누가 오더라도 동일한 품질, 동일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인쇄에 기술을 더하는 작업,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에 앞으로도 매진할 생각입니다. 삼화당피앤티가 만들어 공급하는 의약품 포장재를 환자들이 제일 먼저 접한다는 자부심으로, 기술에 상상을 더하는 일들을 계속해 나갈게요."

삼화당피앤티가 걸어온 길

1985년 삼화당정판사 설립, 2000년 ISO9001(국제품질인증)/IQ-NET(국제품질보증), 2008년 기업부설연구소 인가, INNO-BIZ9(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선정, MIXCO(자동조색장비) 특허 등록, 2009년 삼화당피앤티로 사명 변경, 2014년 전자태그(RFID) 부착장치 특허등록, 2019년 경기도 남양주시 신사옥/공장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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