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국내 개발 신약 약가 우대, 통상 속에 숨지 마라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신약개발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산신약 00호 라든지, 눈에 띄는 신약개발 관련 기술이전 등에 기대어 몇 년 뒤 글로벌 블록버스터 몇 개 창출, 글로벌 30대 기업에 기업 서너개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함성은 크다. 좋다. 목표 설정은 얼마든 웅장할 수 있겠으나, 착시는 경계를 해야 한다.

국내 의약품 시장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인 분위기는 마치 국내 제약회사들이 내놓은 제네릭의약품과 개량신약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나 허장성세일 따름이다. 이익과 의료현장에서 영향력 등 그 실질은 다국적제약회사들의 의약품이 채우고 있다. 다국적사 의약품 판매를 위해 노력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모습은 누가 주인공인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언제까지라도 국내 제약회사들은 이리 살아 괜찮은 것일까? 속절없는 것은,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모멘텀이 가시적으로 보이거나 당국의 확고한 정책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제약회사를 신약개발 R&D로 유인해 자극하는 강력한 수단은 약가 우대고, 2016년 7월7일 나온 소위 7.7 약가제도에 혁신형제약기업에게 이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국제통상질서를 내세운 공세에 작동 불능상태가 됐다. 사문화된 것이다.

국내개발 신약 가격 보정 정책(신약 적정가치 부여 정책)이 작동 불능되면서 제네릭의약품 가격보다 낮은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제약회사들에게 신약개발 하지 말고 제네릭의약품을 하라는 신호와 다르지 않다. 국내 제약회사들의 신약 R&D를 촉진시키기 위해 제약산업육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혁신형제약기업 제도를 운영해 온 당국조차 통상이슈라는 말 앞에서 지레 사시나무 떨듯하며 국내개발 신약에 대한 적정가치 부여를 의도적 무관심으로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제약산업계는 이같은 문제와 관련해 '7.7약가우대제도의 유지 작동'과 일부 개선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제도 개선에 관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①임상적 유용성 개선 신약 평가 기준을 만들어 경제성 평가 결과를 반영하고, 경평자료를 미 제출하는 경우 대체 약제 최고가의 10%를 가산해 달라는 것과 ②임상적 유용성 비열등 신약의 경우 평가기준을 마련해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1.87배 이내에서 약가를 결정해 달라는 요청이다. 

신약개발 R&D를 통해 글로벌로 건너가보려는 개울의 디딤돌 간격은 긴 다리를 가진 다국적제약회사들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닌 국내기업들에게는 간격을 좁혀줄 디딤돌 몇 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신약개발 R&D를 통해 글로벌로 건너가보려는 개울의 디딤돌 간격은 긴 다리를 가진 다국적제약회사들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닌 국내기업들에게는 간격을 좁혀줄 디딤돌 몇 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문화된 현행 약가우대제도는 기업조건과 품목조건을 다 만족시켜야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즉, WHO 추천 필수의약품이나 국가 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개발한 세계최초 허가신약(새로운 기전, 대체약제 부존재, 임상개선 입증, 미국의 신속심사 또는 유럽의 신속심사, 희귀의약품이나 항암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신약)이어야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세포치료제도 우대받을 수 있다. ①국내 전공정 생산 ②국내 허가임상 ③치료적 확증성 입증 ④혁신형제약기업 또는 이에 준하는 R&D기업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된다. 산업계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를 세포치료제에 국한하지 말고 신약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국제 통상질서에 편입된 우리나라의 경우 제약산업은 안방에서조차 정책적 뒷받침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책을 향한 발언권도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기업들보다 우렁차다. 신약개발 R&D를 통해 글로벌로 건너가 보려는 개울의 디딤돌 간격은 긴 다리를 가진 다국적제약회사들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닌 국내기업들에게는 간격을 좁혀줄 디딤돌 몇 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내개발 신약에 대한 적정가치 부여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계는 이 같은 현실에서 성균관대 박미혜 교수의 연구 결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보건복지부(보건산업진흥원) 발주로 박 교수가 작년 12월부터 '국제통상질서에 부합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 지원정책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금명간 연구보고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제약산업 육성지원 특별법 개정(’18.12.)으로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 적정가치 부여 근거 조항이 마련되었으나, 통상문제 등으로 하위법령이 부재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가 2021년 국정감사 서면질의에 대해 연구용역 추진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연구의 목표는 제약기업 혁신과 보험재정의 정합성을 갖춘 지원 방안 마련(약가지원, 사후관리 인센티브, R&D 투자규모 연계 등)이었다. 박 교수의 연구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제약산업 육성지원 특별법 제17조의2와 관련한 시행령 제정안 마련하고, 혁신형 제약기업 약가지원 정책방안에 대한 통상 이슈 해소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때문이다.

현 국내 제약시장(의약품시장)은 다국적제약사와 국내 제약회사들 간 경쟁과 협업(경협)으로 돌아가는 듯보이지만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의약품선진국 정부와 우리 정부간 치열한 두뇌 싸움이자 기 싸움이기도 하다. 의약품선진국 정부의 눈치를 보며 우리 당국이 스스로 실낱같은 정책의 가능성마저 찾으려 발버둥치지 않고 포기할 때 국내 제약산업은 의지할 곳도, 갈곳도 잃고 말 것이다. 박 교수의 치열한 연구의 결과는 그래서 국내제약산업의 명운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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