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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과 약배달, 함께 방패 들던 의사는 없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24일 대의원총회를 기점으로 4대 악으로 규정했던 비대면진료 주도권 찾기에 나선 후 '대면 원칙'만큼은 한 노선을 타던 약사들이 고독한 싸움을 하게 됐다.

의협은 대의원총회를 통해 △일차의료기관 중심 △대한의사협회를 주체로 추진 △대면진료 대비 1.5배 수가지급 등을 조건으로 비대면진료 수용입장을 밝혔다.

2020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시작된 비대면진료가 엔데믹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소통TF의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방문과 제도개선 약속으로 현실이 돼가고 있으며, 2년 이상 이어진 비대면진료를 별 탈 없이 이어온 의사 측에서도 무조건 반대할 명분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 의견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고형우 과장은 출입기자 간담을 통해 일차 의료기관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언급했고, 실제로 이달 중 개최 예정인 보건의료발전협의체(이하 보발협)에서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협의체 구성이 결정될 것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대면 원칙에서는 함께였잖아..."

의약분업 시행 20년이 지난 지금 의료계와 약계는 처방전을 중심으로 처방권과 조제권을 나눠 갖은 채 공생하고 있다. 처방 약제를 통한 갑·을관계, 성분명 처방 등 부침은 여전하지만 의·약계는 '대면 원칙'에서 만큼은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공통된 대면 원칙에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은 단연 코로나19로, 2020년 1월 우리나라에 감염자를 확인한 이후 정부는 개인간 접촉을 최소화 하기 위해 만성질환 등 주기적인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한 환자들을 비대면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처음 시작된 비대면진료는 같은해 12월, 보건복지부 공고 제2020-899호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방안'이 국무회의를 통해 제도화 됐다. 대상, 방법 등 보다 중요한 사항은 여기에 수가 모델이 제시됐다는 것이다. 상급 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전문병원에는 의료 질 평가 지원금이 별도 산정 가능해졌고,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전화 상담 관리료(당시, 진찰료의 30%)가 별도 산정됐다.

그러나 당시에도 대면원칙은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의약계 철칙이었다. 의사협회는 2020년 7월부터 △첩약 급여화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등을 '의료 4대 악'으로 규정하며 이를 백지화 하기 위해 총파업 등 단체행동을 예고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후 9월, 정부와 의료계는 '의정협의체' 구성을 통한 의료계 제도 논의를 약속하고 의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평온했다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의료진들의 피로는 누적됐다).

2020년, 전국 2만8000여명 의사(의협 추산)들이 거리로 나와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에 대한 철회를 촉구했다.
2020년, 전국 2만8000여명 의사(의협 추산)들이 거리로 나와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에 대한 철회를 촉구했다.

그 후 만성질환자를 위한 비대면진료는 오미크론 변이 등 코로나19 확진자 대폭 증가와 병상 부족,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로 새 국면을 맞는다. 비대면 진료를 통한 약처방, 원격 상담, 전원 시스템 등이 마련되면서 약 배송 방법에 대한 고민은 시작됐다.

2020년 8월 약사들의 고발로 저지됐던 의약품 배송 앱은 2020년 10월,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배송을 포함한 플랫폼으로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된 계기다.

 

보건의료 위기였던 닥터나우, 산업에선 기회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서비스 앱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는 2021년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당시 복지위원들과 참고인들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우려와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언급했으나 의사 출신 장지호 대표는 반론을 세우기보다는 공감하며 "정부 제도마련 및 가이드라인이 구축되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려가 많았던 비대면진료에 기대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는 선거전부터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공약으로 삼으며 원격의료 본격화를 예고했고, 코로나19로 탄력을 받았던 비대면 진료는 우려보다는 새로운 산업이 됐고, 기존 대면의료라는 틀은 개선해야 할 구법이 됐다.

 

비대면진료 관점 전환 속 약사들 "우리는 놀았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작한 공적 마스크 구매 안내 포스터
공적 마스크 구매 안내 포스터

2020년 2월 비대면진료 시작부터 2021년, 2022년 비대면진료 제도화 움직임이 있기까지 약사들은 어떤 일들을 해 왔을까.

약사사회에는 쉽지 않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공적 마스크'공급처로써 생년월일에 따른 마스크 5부제를 운영했고, 자가검사키트 출시 이후에는 편의점과 함께 자가검사 키트 공급을 담당했다. 

또한 배달앱 대응은 물론이고 약사 면허범위에 따른 일반의약품 판매를 두고 한약사와 대척점에 있었으며, 대체조제 활성화 성분명 처방이라는 약사 숙원사업을 이어가야 했으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2012년 이후 규제 샌드박스 사업으로 급부상한 화상투약기를 저지해야 했다.

쓰리알코리아의 화상투약기
쓰리알코리아의 화상투약기

특히 배달앱은 의약품과 사용자 개인정보에 대한 안전성,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보건의료의 가치, 약사법 훼손을 우려로 반대의견을 내세웠으며, 이를 철저히 막아줄 이를 새로운 약사사회 수장으로 선출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비대면 진료 앱 스타트업을 방문한 인수위 사무실 앞에 집회를 벌이며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중단과 보건의료체계 정상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약사들이 비대면 진료에 찬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협이 단행한 '전향적 합의'가 약사들에게는 무언가를 빼앗아 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향에 '전' 자라도 꺼냈다간...

2012년 약국에서만 판매하던 의약품 중 일부(일반의약품)이 전향적 협의라는 이름으로 편의점으로 빠져 나가며 전향적 합의에 나섰던 이들은 아직도 매약노라 불리며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업계 전반적인 의견을 들어보면 이달 중 보발협에서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협의체가 꾸려지며, 화상투약기는 규제샌드박스 진입을 위한 규제특례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될 것이 확실시되고있다.

약사법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는 제도 개선으로 근간이 바뀔 기점에 있고, 의약품 안전성과 환자 안전은 2년 넘게 진행한 비대면 진료 관련 데이터들로 입증되고 있어 의사단체 역시 주도권을 찾기 위한 방향전환에 나섰다.

굳건한 대면원칙을 새로 정립하기 위해 의사가 떠난 울타리 안에서 약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약사회가 '뭐든 막는다'라는 스탠스를 벗어나 전향적으로 무엇을 하기엔 약사사회는 경직돼 있다.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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