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푸틱스 수석부사장

"두 정부, 진보-보수 진영 잇는 의미서 정은경은 특별한 인물"

배진건 우정바이오우신클 심의단장
배진건 우정바이오우신클 심의단장

코로나19와 전쟁 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미지가 있다. 미국의 '방역 사령탑'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보건원 산하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이 2020년 12월 24일 80세 팔순 생일을 맞은 것이다. 12월 23일에 베데스다 국립보건원 앞에서 늦게 퇴근하는 파우치 소장에게 깜짝 생일 축하 노래, 'Happy Birthday'를 불러준 것이다. 한 해를 그와 함께 사투를 벌였던 응급 의료요원들이 파우치 소장을 잠시나마 즐겁게 했다.
 
또 한 장면은 한국의 방역 사령탑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021년 10월 29일 '단계적 일상회복'의 최종 시행방안을 발표할 때 카메라에 포착된 정 청장의 '낡은 신발'이 화제였다. 사진을 보면 정은경의 구두는 밑창이 떨어져 벌어지고 구두 앞부분도 닳아 색깔이 변했다. '어느 공무원의 신발'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네티즌들은 "울컥하고 존경스럽다", "참으로 감사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정은경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본인의 역할을 수행했다. 질병관리청 인근 숙소에서 하루 평균 5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고, 14시간 이상 근무하는 강행군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전 검던 정은경의 머리카락 색깔도 하얗게 변했다.

파우치는 38년 전인 1984년 NIAID 소장으로 임명된 뒤 정권교체와 관련 없이 계속 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7명의 미국 대통령에게 감염병 관련 조언을 해온 파우치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기록인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백신을 초반에 맞았다. 그의 공로와 전문성을 높이 산 바이든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부터 차기 행정부에서 파우치 소장에게 계속 코로나19 대응을 맡기기로 했다. 파우치는 국민들의 신뢰감을 계속 얻고 있다. 

우리를 대표하는 코로나 전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우리를 대표하는 코로나 전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우리가 대한민국의 파우치로 만들어야 할 정은경은 누구인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학위, 보건학 석사학위,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5년 질병관리청의 전신인 국립보건원 연구관 특채로 공직에 들어섰다. 지난 2017년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질본 출범 이후 13년 만에 첫 여성 본부장이자 내부 승진을 통한 첫 수장이었다. 메르스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을 맡았고 방역 실패를 이유로 징계를 받았지만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 모습이 국민과 의료계의 신뢰를 키웠다.

해외에서도 그러한 정은경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호평했다. 스트리트저널(WSJ)은 정은경을 코로나19 사태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로 집중 소개했다. 그럼에도 정은경은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미담으로 포장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쇄도하는 외신들의 인터뷰 요청도 모두 고사했다. 와우! 전문성에 검소함, 신중함, 겸손함까지 갖춘 것이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보건의료 정책을 이끌 무성한 복지부 장관 하마평 가운데 필자는 정은경을 마음에 두었다. 필자는 정은경을 두번 만났다. 첫번째는 2011년 3월 29일 코리아나호텔에서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Korea Drug Development Fund, KDDF) 공청회 및 사업단장 공모 설명회'가 열렸던 날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 과장으로 근무하였을 당시에 KDDF가 정은경의 소속 업무였다. 두번째는 2013년 5월 14일 여의도 콘라드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AMCHAM 60주년 기념행사이다. 암참 환갑 행사를 끝마치고 나오면서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 것이 전부다.

그런 정은경을 필자는 새정부 내각 보건복지부 장관 가능성을 미리 점쳐 본 것이다. 왜냐하면 현 정부에서 질병관리 본부장과 청장으로 임명되었기에 두 정부와 진영을 잇는 의미에서 적절한 인물이라 판단하였다. 20년 넘게 공직생활을 이어온 ‘의사’ 출신 관료로 정치색이 없고 성별도 여자에다가 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성까지 갖춘 것도 강점으로 찍었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정은경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정은경과 K-방역은 어떤 관계일까? 정은경이 곧 K-방역일까? 당근 아니다. 그 관계성을 추론할 수 있는 논문이 존재한다. 그 논문은 2010년 11월 정은경이 한림대 의대 연구팀과 함께 낸  '학교 등교 재개 이후 코로나19 아동'(Children with COVID-19 after Reopening of Schools, South Korea) 논문이다. 

2020년 5월1일부터 7월12일까지 코로나19에 확진된 아동·청소년(3∼18살) 126명 가운데 학교를 통해 감염된 사례는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순차적 등교수업이 이뤄졌던 시기이지만, 학교 내전파 사례는 약 2%에 그친 것이다. 가장 많은 비중의 감염경로는 가족과 친척(59명)이었고, 입시학원·과외(18명), 노래방·피시방·교회 등 다중이용시설(8명)이 뒤를 이었다.
 

이 논문은 방역정책 결정구조 자체의 결함을 가지고 있기에 차원이 다른 심각성을 갖는다. 감염병 상황 아래서 아이들의 교육기회 보장이 어느 정도로 우선시돼야 하는지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방역결정사항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런 핵심 이슈를 대한민국 국민이 학술논문을 통해 방역책임자의 주장과 데이터 분석결과를 뒤늦게 접하는 것이다. 논문이 2020년 10월말에 접수됐다는 것은 그 이전에 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2020년 하반기에 마땅히 이러한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며 지혜를 널리 구하고, 등교수업을 확대할지, 안한다면 어떤 우려 때문인지 국민들에게 결정근거를 알리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Real World)은 그러지 못했다. 이런 의견이 정책 결정과정에서 무시됐고 왜 바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것은 방역당국 수장의 의견이 정책 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대통령과 방역당국의 수장인 총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믿고 학교의 문을 꽁꽁 닫았을까?
감염병 상황에서 황금연휴를 정부가 만드는 것도 좋은 예이다. 정은경이 황금연휴 지정하는 것에 찬성하였을까? 필자는 당근 아니다라고 믿는다. 2020년 5월 초 하루를 더보태 '황금연휴'를 만들 때도 정은경은 분명히 반대하였다. 코로나19 감염이 재확산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이태원 사태'를 통하여 새로운 코로나변형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가 2020년 8월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총리가 중수본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8월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내수를 진작하고 코로나19로 지친 국민과 의료진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을 먼저 피력하였다. 임시공휴일 방안을 관계부처에서 조속히 검토해달라고 하는 것은 지시인가 아니면 부탁인가?
 

2020년 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은경 질병관리청 장. 복지위원회는 코로나19 대처가 급하다며 정 청장을 곧장 업무에 복귀하도록 했다.
2020년 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은경 질병관리청 장. 복지위원회는 코로나19 대처가 급하다며 정 청장을 곧장 업무에 복귀하도록 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유행 때도 침체된 경기 회복 등을 이유로 8월14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기도 했다. 메르스는 파멸이었다. 정은경은 이 메르스 파멸의 9명의 책임자 중 하나가 되었다. 짤리지 않고 감봉만 된 것도 다행이었다.

오늘부터 윤석열 정부의 총리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시작된다. 공중 보건이나 감염병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복지부장관으로 지명하는 게 합리적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 대한민국은 파우치 박사가 존재하지 않는가? 필자의 답은 간단하다. 미국처럼 정은경도 대한민국의 파우치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인 말뿐인 'K-방역'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학방역'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기에 안철수의 인수위원회가 질병관리청장으로 새로운 인물로 임명하지 말라는 요구이다.
 
문재인-윤석열 두 정부, 진보-보수 진영을 잇는 의미에서 정은경은 특별한 인물이다. '의사' 출신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성으로 20년 넘게 공직생활을 이어온 관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엔데믹(Endemic)'뿐만 아니라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은 곧 이 땅에 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감염병 전문가인 정은경의 의견을 많이 듣고 그녀가 제시하는대로 따라가면 감염병을 이기는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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