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자랑거리 아냐, 불가피하게 넘어야할 높은 산 
그린워싱 등 '기업 이미지 세탁'은 경계할 일
돈 버는 것은 기본, 반드시 그 바탕에 ESG 심어야 

제약사들의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이 불붙었다. 얼마 전까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타올랐는데 그 불길이 ESG로 옮겨 붙었다. 왜 그랬을까.

전문 언론 등을 통해 국내외 제약사들의 ESG 경영 관련 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왜 우리 제약업계는 A등급 이하만 있고 최고 수준급인 S, A등급은 안 나오는 거야?", "제약사들은 어서 빨리 ESG 경영에 동참해야 한다"는 등, 보다 수준 높은 ESG 경영시스템 도입과 실천을 다그치는 논조의 기사까지도 눈에 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 한미사이언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종근당, 셀트리온, 동아쏘시오그룹(동아제약, 동아에스티, 에스티팜), 일동제약, 대웅제약, 보령, 한독, JW중외제약, 동국제약, 휴온스,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 바이오니아 및 이오플로우 등을 비롯한 60여 곳의 제약사들이 이미 ESG 경영을 시작했거나 준비 과정을 마쳐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약업신문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협조를 받아 대표적인 73곳 제약바이오사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79.4%가 ESG 경영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기초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0.2%가 ESG경영을 △기업 이미지 향상 △기업 경영성과 도움 △윤리경영 실천 등의 이유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동안 ESG 경영에 대한 당해 기관 등이 행한 홍보 효과로 보인다.

이제 ESG 개념은 우리의 일상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이웃을 물질적ㆍ정신적으로 더 보듬으며 우리의 터전인 지구의 미래를 위해 일회용 용기를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착한 인식에서부터, 광풍이 불던 서울 아파트 분양에서 요즈음 잇따라 미분양 사태가 발생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좋다고 주택 공급가를 계속 높이는 것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며 "수요자의 지불능력 수준과 적정한 기업의 이윤 수준이 서로 만나는 점에 맞춰 공급하는 것이 'ESG 경영전략'에 부합할 수도 있다"는 부동산 전문가의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ESG는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 등의 두문자 복합어다. 종래의 주주 이익과 기업 이윤 창출에 초점을 둔 '주주중심 자본주의'에서, 비(非)재무적 요소들을 지칭ㆍ표방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새로운 '이해관계자중심 자본주의'로 발전하며 부각된 신개념이다.

ESG의 개념과 용어는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됐으나 유사한 움직임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가 인구, 환경, 자원, 식량 등을 문제로 삼은 것이 ESG의 태동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또한 경영학의 구루(Guru, 大家)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If you can not measure it, you can not manage it)'는 명언에서 ESG의 태동을 찾는 학자나 전문가들도 있다.

지금도 안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특히 과거, 세계 모든 국가의 기업체들은 이윤 추구에 혈안이 돼 있었다. 기업(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경제의 단위)의 속성에 충실했다. 돈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지구를 개발했고 근로자의 인권과 사회의 윤리ㆍ도덕 및 기업체의 이해관계자 그리고 때때로 국가 규범 등이 무시됐다.

알게 모르게 ▲대기 오염물질과 하드 에너지 및 물 등을 무한정ㆍ무분별하게 내 뿜고 사용하며 개발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오염ㆍ파괴해 심각한 기후 변화까지 몰고 왔고 ▲기업 존립의 바탕이 되는 사회를 외면하고 수익을 만들어주는 근로자들 위에 군림하며 불평등 근로계약 등을 자행해 왔으며 ▲뇌물성 불공정 판촉 수단을 활용하고 법률을 지키지 않는 등 국가 사회를 병들게 해 왔으므로,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UN ▷EU의회 ▷선진 각국 및 그 최고 대표자 그리고 투자자를 대표하는 ▷국내외 금융기관 등이 앞장서서 팔을 걷어 붙였다.

유엔(UN)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개념 논의가 대두됐고 ▷'새천년(21세기) 개발 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및 '지속가능 목표(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등에서 ESG가 중요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빠르게 지구촌 구석구석에 전파됐다.

▲환경(Environment) 과제는 구체적으로 ▷환경오염 방지 ▷기후변화 방지 및 탄소배출 점감 ▷자원 및 폐기물 관리 ▷녹색에너지 비중 증대 ▷생태계 보호 등에 관한 것이고, ▲사회적(Social) 과제에는 ▷인권과 성 평등 ▷산업안전 보건 ▷데이터 보안 및 고객만족 ▷지역사회 기여 ▷공급망 관리 등이 있으며, ▲지배구조(Governance) 과제는 ▷윤리경영ㆍ반부패 ▷법령 준수 ▷공정경쟁 ▷주주권익 보호 ▷이사회 및 감사의 준법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종전에 실시했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CSV(공유가치창출, Creating Shared Value) 및 오늘의 ESG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개념이 서로 엇비슷해 헷갈리는데 말이다.

과거 기업체들은 고용 창출과 이윤 극대화만 가지고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되면서 독점 횡포, 빈부 격차, 실업, 공황 등의 사회적 모순이 초래돼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했고 시장(市場)이 공급자 시장에서 소비자(수요자) 시장으로 바뀌면서, 기업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 초기에는 자선활동이나 기부 등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그에 부응했다.

그러나 윤리경영이나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 등에 대한 우려는 불식되지 못했다. 이해관계자들과 학자 및 전문가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규범과 윤리ㆍ도덕의 준수와 지역공동체 일원에 걸맞은 역할 수행 및 악화된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 언필칭 '착한(善한) 기업'이 될 것을 기업체에게 요구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CSR 개념이다.

정리해 보면 CSR은 기업체가 이해관계자 등의 요구를 고려해 취득한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책무가 있음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자선활동, 기부. 환경보호 등이 실천 수단으로 돼 있지만 어디까지나 수익 창출 이후의 도덕적ㆍ윤리적ㆍ자율적인 차원의 책임 의식이라 할 수 있다.

CSV(공유가치창출)는 경제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영업활동 (비즈니스)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해 '사회적 공헌'과 '이익 극대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행위다. CSR처럼 기업체가 수익을 창출한 이후에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CSR과 CSV는 유사하지만 가치 창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CSR은 이미 창출된 기업의 이윤을 착한 행위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므로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CSV는 기업체의 비즈니스 목표와 지역사회의 니즈(needs)가 만나는 곳에서 사업적 가치인 경제적ㆍ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창출함으로써 기업과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CSR과 CSV는 국가나 사회 및 어떠한 공적 조직으로부터도 규제 받지 않았고 기업체의 자발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한계가 노출됐다. 

이처럼 CSR과 CSV는 평가와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체들에게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데에 대해, ESG는 투자자 및 공적 기관(예, 금융위원회, 국민연금공단)들이 구체적인 평가 정보 공개와 투자 및 금융 불이익 등의 수단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이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이 '강제적'이라는 차이점이, 최근 상장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제약업계에 ESG 경영이 불붙도록 한 이유일 것이다. 

ESG 경영에서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ESG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전문 언론들로 강하게 권장하고 있지만, 공공기관과 이해관계자 및 소비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우려 사항이 있다.

ESG 유행에 편승한 '수박 겉핥기식 경영 전략'이 적지 않고 '착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ESG 청사진'이 기존의 CSR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도 홍보에만 여념이 없는 곳도 있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은 2021년5월 'ESG 투자 위험의 증가와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ESG 워싱(세탁)'에 대한 우려를 밝힌바 있다. 기업체가 표방하는 ESG 경영이 유의한 효과를 내도록 노력하기보다 명칭 부여와 홍보 및 마케팅 등에만 치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E)과 사회(G) 분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ESG 경영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G(지배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생략하는 기업이 많다. 이로 인해 목표 설정 이후 세부전략 수립과 실행까지 오너(owner)와 투자자 및 임직원 간 이견이 발생하기 쉽다. 예컨대, 플라스틱 배출을 줄이기 위해 컵이나 빨대 등을 친환경 소재로 바꾸면서도, 수익 창출을 위해 시즌마다 수십 개의 기존 방식의 플라스틱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ESG 경영이 과연 기대대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해 줄까? 이점도 우려되는 사항이다. 

ESG 경영을 하는 '착한 기업'이 이익을 더 많이 올리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기업체가 ESG를 도입하면 고객, 주주,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이는 고객 만족도 향상, 주가 상승 및 매출 증대로 이어지며, 임직원의 애사심을 고취시키게 된다. 고객이 선호하고 임직원이 자긍심을 갖는 기업체가 장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또한 기업체들은 끊임없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금융기관들이 돈을 빌려줄 때 ESG 지표까지 고려하므로 ESG 평가가 높아지면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MZ세대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체의 제품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외면하고 심지어 불매운동까지도 서슴없이 행하는 반면, 사회적으로 착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제품 생산과정에서 윤리적 방식을 택하는 기업체의 제품들을 선호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ESG 경영을 철저히 수행하면 MZ세대들의 충성 고객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돼 결국 돈을 잘 벌게 된다는 것이다.            

글쎄, 이 기대되는 시나리오(scenario)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피상적이 아닌) 이를 신뢰할 수 있도록 연구된 과학적인 통계 결과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철저히 증명돼야 할 연구 과제다.

이와 역설적인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프랑스 자존심 기업체인 다논(Danone, 요거트 및 에비앙 생수 등 제조업체)의 CEO, '엠마뉴엘 파버'가 2021년3월14일 퇴출됐다. 죄목은 'ESG를 신앙처럼 신봉하며 물불 안 가리고 실천했지만 결국 재무적 경영성과(매출 및 영업이익 등)가 부진해 주가가 떨어졌다는 점' 하나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야누스 무함마드(노벨평화상 수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와 합작 사회적 기업으로 식품사업을 했다 △프랑스 최초로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결성했다. △빈곤퇴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프랑스 정부와 함께 신흥국 개발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동물성 단백질의 대체재인 유기농식품 제조사 화이트웨이브를 인수했다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연대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UN 기후정상회의(UN Climate Action Summit)에서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글로벌 기업연대를 발족시켰다 △2020년 코로나19가 악화되자 자신의 급여 30%를 자진 삭감했다 △환경을 배려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정착시켰다 △EPS(주당 순이익)에 탄소배출량을 반영하는 회계기법도 개발했다.

'파버'의 퇴출에 서유럽의 언론들은 파버가 '지나치게 지속가능하려다가 축출되었다'고 보도했다. 아직 시장이 파버와 같은 경영자를 포용할 만큼 진보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왔다. 파버의 퇴출사건은 영리기업체에게 ESG는 필요조건은 되겠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시사점은 아닐까.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사부터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ESG 공시가 확대된다. 제약사들의 ESG 도입은 불가피하다. 다만, 다논 CEO의 퇴출사건은 곱씹어 볼 일로 보인다. 다논과 같은 사태가 발생되지 않도록 철저한 '목표이익 관리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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