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조인수 사노피 특수질환 메디컬 리드(이사)·신경과학 박사

히트뉴스의 Editor’s Pick에 올라온 기사(신나는 연구와 토론, 차세대 면역항암제)을 보면서, 저의 오래된 일화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 인터뷰 사례를 보아주세요.

항암제로 유명한 회사 임상의학부팀에 합류하기 위해 Medical Director 분과 최종 인터뷰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왜 Oncology (종양학) 팀에서 근무하시려하나요?" 

저는 나름 깔끔한 답변을 하였고, 각각에 대해 내가 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실제 연구했던 분야들을 근거로 답변을 하다가, 기초연구의 열정이 남아있던 마음에 답변 중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 Oncology 분야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Science 와 기전들이 Outcome을 중심으로 연구되는 임상연구의 결과들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상의들이 궁금해하는 Insight들을 나눌 수 있는 세밀한 Science들이 많은 분야라는 점에서 즐거움과 흥미를 느낍니다."

그 다음 돌아온 Medical Director 분의 반응.

".. 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위중한 환자들을 다루는 분야인데, 즐겁다, 재미있다.. 라는 표현은 하면 안되는 거예요... ㅎㅎ"

히트뉴스가 다룬 실제 기사의 연구원분들이 이렇게 표현했다면, 그리고, 또 실제로도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한 좋은 일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학위과정과 포스트닥 (Post-Doc) 시절, 파이펫을 잡고, 실험하고, 토의하던 경험들이 즐겁고, 흥분되고, 신나지 않았다면, 절대 10년의 긴 시간을 좁은 클린벤치룸에서 하루를 지새우거나, 주말과 연휴를 마다하고, 시간단위로 여러 실험을 수행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약바이오, 이 업계의 "일의 의미"

이 넓은 헬스케어 생태계에서 누군가는 정말 즐거워서, 누군가는 사명감을 느끼며, 누군가는 학술적 관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거나, 투자를 진행하거나, 어떤 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주식으로 참여하는 등,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신나고, 즐겁고, 흥분되는 토의나 토론은 물론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신약연구와 신약이 처방되는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비장해야만 할 필요는 없겠지요. 대중 모두가 요즘 제약, 바이오업계 최고 슬로건인 "환자중심주의 (Patient centricity)"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약개발의 과정을 종종 "신난다, 놀이터, 재미있다"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많은 기사들을 보고 나면, 그때의 인터뷰가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궁극적인 헬스케어 산업의 존재이유가 결국 환자와 질병들에 있는 만큼, 그 자랑스럽고, 전문적인 역할을 하시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 (전문기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의 삶과 도전들이 자칫, 새로운 치료제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의 희망을 가볍게 다루진 말아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병' 때문에 지금도 고통받는 환자가 있다는 걸 항상 상기하며 표현되어야 하고, 말해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누군가는 가족과 지인들을 잃었습니다.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해서 그 과정을 어찌 "신났다", "즐거웠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임상시험과 임상실험

코로나 (COVID19)로 인해, 제약, 바이오 산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도 커졌고, 실험 연구원들이나 의료현장에서만 언급되던 PCR기술은 적어도 그 단어만큼은 이제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동향을 보다 보면, 프로 불편러인 제가 느끼는 또 다른 아쉬운 표현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분들이 지적한 바 있는, 하지만 아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임상시험"의 오기인 "임상실험"입니다.

종종 언론에 임상시험과 임상실험이 혼용되지만, 임상실험은 잘못된 용어 선정이다.
종종 언론에 임상시험과 임상실험이 혼용되지만, 임상실험은 잘못된 용어 선정이다.

학위과정 중 그렇게 수많은 "실험"을 해왔지만, 현재 업무하는 메디컬팀 혹은 임상팀에서는 실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임상시험"을 위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의약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인간 대상 연구는, 세포나 동물연구에서 말하는 충분히 통제된 방식의 "실험"과 달리, 실제 환자의 권익이 우선시되면서, 새로운 치료에 잠재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적으로 완벽히 통제하기 어려운 실제 진료 환경하에서 수행되는 연구이기에, 절대로 "실험(Experiment)"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임상실험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시도 (Trial)" 해본다는 의미에서 임상시험 (Clinical Trial) 이라고 표현합니다.
 
종종 산업의 관심이 회사의 성장과 투자의 관점에만 다루어지는 많은 논의들을 보다보면, 대중들이 이해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과 연구개발의 과정이란 것이 임상"실험"의 오기가 보여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아쉬움도 느낍니다. 물론, 투자의 관점에서 "임상시험"을 바라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투자 생태계 역시 산업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도 한번 즘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삶을 위한 연구들이, 그저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 (동물실험의 윤리도 중요합니다)을 바라보듯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약바이오의 슬로건 "환자 중심주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약(신약 포함)에 대한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 금지) 과학자들의 신약개발과정은 비가시적인 기전들과 개발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환자는 물론 일반 대중들이 배제되기 쉬운,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기는 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몇 년간 "환자 중심"이라는 슬로건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약품청(EMA)은 임상시험에 대한 환자 및 대중의 이해와 개발과정의 관심 및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올해부터, 모든 제약사들의 임상시험 정보 공개 항목에 비전문가/환자들을 위한 "일반적인 언어 요약(PLS, plain language summary)" 본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올해 초 제약바이오 기업이 준수해야할 공시 지침들을 전면 개정하여, 보다 정확한 정보들이 균형있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결국 환자 혹은 일반 대중들에게 정보의 투명성, 접근성, 그리고 가시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약사들이 전개하는 환자중심 활동은 이보다 더욱 다양하며, 제가 근무하는 메디컬팀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중심주의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신약개발사나 거대 제약사처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회사나 조직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환자중심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작은 단어하나, 표현하나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신약개발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결국 환자들입니다. 환자는 결코 시장이나, 산업을 표현하는 숫자가 될 수는 없으며, 즐거움의 대상, 혹은 실험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즐거운 항암제 연구, 임상시험과 임상실험. 너무 이렇게 따지고 들면, 일상생활 가능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위를 할 때만 해도 겨우 임상시험에 진입하던 유전자 편집, 세포 치료제들이 이제 임상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치료 모달리티(modality)들이 하루가 다르게 근거를 쌓아가는 것을 보면, 비록 지금 저는 실험실 기초 연구원의 자리를 떠나 있지만, 여전히 흥분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데이터들을 깊이 분석하곤 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제약회사, 벤처, 병원, 의료진, 투자생태계, 전문보도매체, 비전문가/개인투자자들 모두) 한 번쯤은 고개를 들고 종착지를 바라보며,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환자중심, Patient focus, Patient-centricity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들리는 오늘 날의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에서, 나는 정말 환자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내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 생태계안에서 치열하게 연구를 기획, 수행하고, 환자 삶의 질과 권리, 안전을 고려한 윤리적인 임상시험 디자인을 구성하며, 연구자들과 논의하고, 모니터링하며, 결과를 해석하고, 이를 보도하는 업계 구성원의 헌신과 고민들이, 그 일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담아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도전하시고 계실 전문가분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생태계, 그리고 많은 대중들의 관심속에서 저 역시, 저의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조인수 사노피 특수질환 메디컬 리드(이사)ㆍ신경과학 박사 

사노피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이끌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사아 국가의 혁신 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 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P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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