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 벗어나는 '실질적인' 업체 잡을 방법 있나

도매유통업계에 병원직영도매 불씨가 또 되살아났다. 지난 1일, 유통협회가 시도회장을 포함하는 확대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조만간 '병원직영도매대책 TF팀'을 다시 꾸리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E의료원과 S약품의 합작 직영도매유통사 개설 추진이 불쏘시개가 됐다.

도매유통업계의 '병원직영도매'에 대한 투쟁의 역사는 자그마치 30년 가까이나 된다.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1991년 1월11일, 당시 모 의료원의 직영도매상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B1'도매유통사가 모든 제약사들과 일부 병원 납품 도매유통사들에게 의약품 구입형태 변경 통보 공문을 보내고 그 의료원 산하 8개 병원들에 대한 모든 납품을 자사를 통해 해 주도록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병원직영도매 문제가 도매유통업계에서 맨 처음 들불처럼 번졌다.(유통협회 '도협50년사' 351쪽 참조)

이 사건 이후 정부 당국과 국회(이하 '당국 등')가 도매유통업계의 이유 있는 반발을 받아들여 결국 1991년12월31일 약사법(당시) 제37조제4항 제5호로 '의료기관의 개설자'에게는 의약품도매상을 허가하지 않는 규정을 신설했다. 기존 의료기관 개설자의 도매상은 경과규정으로 1992년7월1일부터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입법 취지는, 의약품 수요자라는 우월적 입장의 의료기관이 공급까지 병행하면 의약품 유통질서가 파괴되고 납품과정에서 불공정거래 등의 부당행위가 발생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목적이었다.

이 신설 조항으로, 당시 병원직영도매상으로 간주되던 10여개 도매상중 K의료원의 K재단과 S병원의 D산업 등이 의약품도매상을 폐업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병원직영도매 문제가 사그라지지 않자 당국 등은 이에 대한 규제 강화를 거듭해 왔다.

2001년8월14일 개정약사법(제37조제4항 제5호)에서는 의료기관 개설자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의 임?직원에 대해서도 의약품도매상의 허가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제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2011년6월7일에는, 개정약사법(제46조제3호)을 통해 기존의 의료기관 개설자와 그 임?직원은 물론 약국개설자에게까지 의약품도매상 허가를 받지 못하도록 강화시켰다. 약국 직영도매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동법 제47조제4항을 신설해 의약품도매상이 특수한 관계(출자 지분 50%초과 및 2촌 이내의 친족 등)에 있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직접 또는 다른 도매상을 통해서도 의약품(한약제외)을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2017년에는, 요양기관(의료기관과 약국)이 도매유통사의 출자지분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하는 강화된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처럼 이러저러한 규제확대 조치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존재하던 병원직영도매상(실질적인)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그때그때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직영도매 문제의 첫 촉발 원인 제공자인 'B1'사는 2010년경 의약품도매업을 폐지하면서 상호를 변경했고, 그 뒤를 새로운 'B2'사가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신생 B2사는 2010년7월 초순에 설립됐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해 6개월 만에 1098억 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고 창업 다음해인 2011년에는 단숨에 3332억 원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2017년의 매출액은 5176억 원이나 된다. 만약 B2사가 B1사의 바통을 이어 받지 않았다면, 아무리 출중한 영업의 귀재라 해도 어떻게 B2사가 이런 실적이 가능했겠는가. 도매유통업계의 매출액 순위 5위에 해당한다. 모범적으로 경영해 온 30~40년 된 도매유통사들보다 훨씬 우위에 서는 실적 아닌가.  

또한 B1사는 의약품도매업을 폐업하기까지 매년 거액의 기부금을 납부해 왔다. 2010년 68억 원, 2009년 91억 원, 2008년 130억 원, 2007년 55억 원 등이다. B2사는 출자 자본금이 5억2천만 원에 불과한데도, 2010년 개업 첫해 사업개시 6개월도 채 안 돼 자본금의 2배인 10억 원을 기부했고 다음해 2011년에는 무려 265억 원이나 기부에 쏟았다. 2012년에는 물경 320억 원, 2016년 306억 원, 2017년 233억 원 등, 창업 이래 8년 동안 총 1371억 원의 거금을 기부금으로 희사했다. 이익을 먹고사는 기업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도 이윤이 박하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서.(이상 금감원 전자공시자료 참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B2사에 대해서만은 도매유통업계가 직영도매에 대해 아주 민감하면서도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별다른 공식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혹시 무엇에 압도당해서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형식적?실질적 양면 모두 병원직영도매상이 정말 아니어서 그러는 걸까. B2사는 지금 유통협회의 당당한 회원이기도 하다.

새삼스럽지만 30년이나 해묵은 병원직영도매 문제를 반추해 정리해 보면, 법적 제도로 직영도매를 막는다는 것은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실질적인 병원직영도매상에 있다 하겠다.

지난해 직영도매 논란에 휩싸였던 K의료원 관련사 출자사인 P도매유통사 등에 대한 당국의 약사법제47조제4항 즉 '의약품도매상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직접 또는 다른 의약품 도매상을 통하여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위반 여부 조사에서, 뚜렷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당국이 이 건을 수사기관에 이관했다 하는데 그 결과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듯, 도매유통업계를 비롯한 보건복지 당국이 실질적인 병원직영도매상을 척결하는 방법과 관리수단 등을 찾지 못하거나,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 요양기관이 사업다각화 수단으로 의약품 도매유통업을 선택하는 한, 요양기관 직영도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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