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조인수 사노피 특수질환 메디컬 리드(이사)·신경과학 박사

최근 한 신약개발사가 또다시 FDA 허가가 좌초되었습니다. FDA 신약승인의 원칙을 잘 알고 있는 많은 전문가 집단에서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습니다. 최근 몇 년만 반추해보면,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 기시감이 듭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제약바이오 신약개발의 실패의 경험은 새로운 배움이 되어야 하는데, 왜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전문가가 아니면 미리 그러한 징조를 알 수 없는 것일까요? 

많은 바이오 투자 입문서들이 나와있고, 친절히 파이프라인을 설명해주는 블로그, 유튜브들이 많습니다. 정보의 불균형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한다고 해도, 개발과정의 신약들과 각각의 Science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으며, 이들을 모두 분석해서 공부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전문가도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실제 미충족 의료수요가 있는 임상환경은 많은 일반인/비전문가들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파이프라인들 마다 친절하게 설명된 질환특성부터 치료제의 기전과 임상상황까지의 기술적인 내용들은 공부할 의지마저 꺾어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리해보았습니다. 굳이 복잡한 질환의 병태생리와 치료제의 기전, 임상시험 디자인을 논하지 않고도 기사나 보도자료에 올라오는 자주 반복되던 몇 가지 표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절대적인 학습의 시간이 필요한 일에 족집게 과외처럼 "이것만 알면 된다" 식의 지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체를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전문가들의 눈높이에서, 기사나 보도자료만 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옥석을 선별해내기 위한 1차 예선전 성격의 기본적인 체크리스트라고 보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1. "임상시험에 돌입, 임상시험 수행 승인, IND제출 등"

임상시험에 진입했다는 것은 물론 박수 칠 일입니다. 다만, 임상시험 수행자체가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는 것이 신약의 질적인 가치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찰(Insight)도 주지 못합니다. 정보(Information)의 전달일 뿐. 많은 기사들이 임상시험에 착수했다는 소식만으로 마치 그 약에 대단한 유효성이라도 있는듯, 대서특필하고, 이것이 반복된다면, 이는 회사가 Science 보다는 언론플레이로 가치를 올리려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임상시험 돌입 기사로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올리고 싶다면, 임상시험의 구체적인 디자인 (환자군 선정기준, 대상질환, 기전을 고려한 적절한 방식여부 등)을 함께 공개하고, 왜 그렇게 했으며, 그것이 왜 기대감을 높이고,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지, 그리고 그 내용은 다양한 임상시험 등록사이트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업데이트하거나, 관련된 경험을 잘 설명하면 됩니다. 

 

2. "1차 평가지표, 주평가변수, Primary endpoint 성공여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지는 대원칙입니다. 사실, 이것만 확인해도, FDA승인을 받을지 못 받을지 알 수 있습니다. 축구로 치면, 골득점 차이입니다. 따라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통계적 유의성이 없었다) 일단, 결론은 임상실패입니다. (최근 최초의 치매치료제로 타이틀을 올린 아주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1차 평가지표에 실패하였지만, 대리지표들과 사후분석 결과를 통해 FDA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습니다. 시장 출시 후, 그 결과는 안타깝습니다. FDA자문단 일부가 자진사퇴를 하였고, 관련인원들이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신약의 급여조건은 갈수록 축소되어, 조건부 임상참여자들에게만 급여화되는, 사실상의 3상 확증 임상연구를 다시 수행하는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미리 뽑은 전세계 직원들은 1년도 안 되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3. (1차평가지표는 실패했지만) "사후분석결과가, 대리지표들 결과가, 사후분석해보니, post-hoc 결과에서는"

그냥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다시 축구로 예를 들면, 스코어로 지고 나서, 우리가 볼 점유율도 높았고, 코너킥도 많이 했고, 유효슈팅도 더 많았다 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승부는 점수 (1차 평가 지표) 로 갈리는 상황과 같습니다. 물론, 대리지표들로 승인을 받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 2차평가지표로 거론되는 대리지표들로 승부를 주장하려면, 이는 경기시작 전, 사전에 FDA와 합의하여, 이를 임상시험계획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이를 임상에서는 Pre-specify라고 표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훌륭한 대리지표, 2차평가지표 혹은 추가분석 data가 있다고해도 (아무리 경기에 잘 싸웠어도), 실패한 임상은 (패배한 경기를) 구제될 수 없습니다. 

 

4. "사실상 단일 파이프라인, 다른 병용요법, 용량변경 결과에서는 긍정적인 결과, 다른 적응증 임상은 순항"

완전히 백지상태부터는 아니겠지만, 일단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임상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보고에 따르면 (2011년~2022년 기준) 최초 임상 1상 진입이후, FDA 허가를 취득해 시장에 출시될 확률이 7.9%이며, 그 기간은 10년에서 15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신약개발은 10개의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다면, 그중 1개도 채 성공하지 못하는 무모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만약, 묻지마 투자를 하고 있다면, 신약개발이라는 10%이하의 확률게임에 그저 주사위를 던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0년에 걸쳐서 (롤로코스터를 타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다국적 외국 제약사들과 논의중, 많은 관심, 빅파마들과 미팅"

사실 이렇게 오픈 가능한 수준의 협업 이야기라면, 오픈 이노베이션 행사에서 캐쥬얼한 미팅이나, 피칭기회 혹은 메일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 정도일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다국적 빅파마들과 구체적인 딜 메이킹이나 협업안이 오가고 있다면, DD (Due diligence)와 그에 수반하는 Confidentiality agreement 부터 맺어져 있을 것이고, 보도와 동시에 빅파마들이 함께 파이프라인 도입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빅파마의 뚜렷한 동향없이 그저 회사의 보도기사로 협업 중이라는 소식을 먼저 접하면, 그저 너무 앞서 나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6. "FDA의 긍정적 반응, 호의적인 메시지,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

팩트(FACT)만 얘기하면 됩니다. FDA와 미팅이 잡히는 것을 호의라고 착각해서도 안되겠습니다. FDA의 긍정적인 이야기는 일단 1차 평가지표가 성공했을 때를 전제로 합니다. 사실 규제기관의 긍정적 반응이란 것이 회사의 보도자료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신뢰하기도 어렵습니다. 규제기관은 최대한 sponsor 회사 (신약개발사)의 요청에 회신을 해야할 절차가 있으며, 진행되는 임상에 대해서 수시로 논의할 수 있는 창구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이 때의 논의는 임상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건설적인 피드백을 줄 뿐이지, 그것이 승인여부를 담은 시그날은 아닙니다. 

 

7. 현존하는 다른 약제/경쟁사 약제 보다 더 좋은 효과, 안전성

임상시험은 전향적인 연구를 통해 기존 치료제들과 직접적으로 (Head to Head), 무작위 (Randomization) 비교 (Controlled) 한 연구가 아니라면, 단순히 수치를 비교하여 우리가 더 좋다 안전하다를 과학적으로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제품의 차별점과 시장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해 거론되는 이러한 접근은 궁금하기도하고 참고는 할 수 있지만, Head to Head 가 아니라면,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8. FDA에서 ~~으로 지정하였다. 

FDA에서는 약물을 가능한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크게 ①패스트트랙 (Fast Track) ②혁신신약(Breakthrough Therapy)지정 ③우선심사(Priority Review) 그리고 ④가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 제도를 운영합니다. (여기서는 그 차이를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FDA에서 ~~지정", "~~ 제도에 지정" 된다는 것이 그 신약의 우수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질환분야의 의학적 미충족이 높은 분야로써, 시급성이 인정되니, 먼저 검토해주겠다는 것이지, 질적인 진보성을 인정했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10년은 걸린다는 약물 개발 기간이 이러한 제도를 통해 단축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의 개발 승인 단계가 이 경우라 볼 수 있겠지요. 단, 이는 승인여부가 임박했다거나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임상3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FDA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본질은 임상3상을 잘 수행하고, 1차평가 지표라는 절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함에는 변함없습니다. 

 

9. "약 효능 자체는 문제가 없다. 임상진행 중에, 환자군이, CRO에서..."

역시 자주 보았던 표현입니다. 약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정말 비과학적인 표현입니다. 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임상을 수행한 것이고, 그 결과를 확인한 것이니까요. 물론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는 다양한 이슈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FDA에서는 모든 의약품/의료기기의 품질관리애 대한 CAPA (Corrective and Preventive Action) 제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행되는 임상시험 중에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과 조치 계획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지요. CRO에 의뢰하였다고 해서, CRO를 탓해서도 안 됩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Sponsor (의뢰자/개발사)에게 있습니다. 

또한, 신약개발 과정은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쳐 개발되며, 그 사이 표준치료의 변화, 경쟁환경의 변화, 진료 가이드라인의 변화 등 많은 변수들이 변화하고 있는 무빙타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정해진 임상시험계획이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회사의 임상개발 방향이나 디자인을 수시로 수정할 수 있는 protocol amendment의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FDA에서 요구했던 많은 사항들을 미쳐 반영하지 못했다면, 언제든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계획을 변경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물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도 성공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꿈을 먹고 사는 바이오 주식이라 해도 Science와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문가들도 내가 틀렸나?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에 열거한 표현들로부터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열거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해서 이런 회사들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차피 신약개발의 생리가 원래 실패를 "아주 많이" 전제하고 있고, 약물 재창출 (Drug-repositioning), 혹은 다른 병용 임상등의 방식을 통해, 끝내 시판허가를 다루는 회사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런 회사를 알 수 (최대한 예측이라도) 있을까요? 

 

10.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소통방식이 투명하고, 객관적(Fact만 다루며)이며, 시기적절한가?

긴 시간 동안 신약파이프라인은 방대한 데이터를 쌓아가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도 떨어트리기도 할 것입니다. 다양한 이슈와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제품의 가치가 오르고 내리는 동안, 그 모든 과정이 과학적이고 투명하게 그리고 접근성있게 운영유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잘 작동하는 회사라고 해서, 그것이 신약의 Science가 우월하거나, 본질적인 가치가 높다거나, 개발 성공가능성을 높여준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이러한 회사들은 언제든 Risk를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숨기지 않고) 제공해주고, 회사의 성공에 나의 역할(투자?)을 함께 이어가도 된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에 (Evidence-based investment) 우리가 도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의 Science를 다루는 분야에서 Science 이상의 중요한 역량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FDA승인을 목표로 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배운 보도자료 속의 숨겨진 의미를 비전문가의 언어로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FDA승인자체가 신약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회사의 성장을 위한 상업적성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승인이후에 오히려 자발적으로 시판 철회하는 사례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의학적 미충족 수요에 대한 이해도 부족, 상업화 역량의 부족, 지속적인 근거창출 의지의 부재, 경쟁환경의 변화, 약가/급여정책 실패, 비용경제성 문제 등, 회사의 성장에 있어서 FDA승인은 그저 최소요건 일 뿐 입니다.

저는 글로벌 빅파마의 메디컬팀에 근무해오며, 다양한 임상시험들이 진행되는 과정부터, 시판이 되는 과정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들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빅파마에서는 수시로 각 나라별 임상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규제기관과 다양한 연구자,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한 또 다른 전문가그룹인 Medical 팀을 운영합니다. Medical Science Liaison (의학과학 연결자) 들은 그 이름처럼 의과학으로 회사와 병원, 회사와 규제기관을 연결하며, Fair-balance 한 데이터 해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지속적인 근거창출을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팀을 벤처나 스타트업에서 운영하기가 힘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정리해본 이 10가지 소통방식은 제가 Medial 팀에서 경험해 왔던 communication의 원칙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꿈을 먹고 사는 제약 바이오가 아닌, Science와 communication을 먹고 사는 제약 바이오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인수 사노피 특수질환 메디컬 리드(이사)ㆍ신경과학 박사 

사노피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이끌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사아 국가의 혁신 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 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P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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