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장 수용성 낮은 정책은 모면책일 뿐이다

아이러니다. 2018년 여름, 발사르탄 사태가 터졌을 때 누구나 예상한 후속 정책은 원료의약품 등에 관한 품질관리 강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예상은 빗나갔다. 정부는 성난 여론의 푸념을 받들어 제네릭 난립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참으로 엉뚱한 진단이다. 오진의 가능성을 감히 99.9%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진단에 맞춰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처방은 벌써부터 제약산업 미래를 벼랑으로 내몰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제네릭 숫자가 많아 문제의약품 파악과 회수 등 이른바 관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맞지만, 발사르탄 사태의 원인은 아니다. 이를 정부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 

복지부와 식약처가 일명 '제네릭 의약품 관리제도 개선 정책'을 마련중인데, 제네릭 난립 방지책으로 허가와 약가를 함께 건드리고 있다. 허가를 통해 시장에 들어가는 제네릭의 입구를 좁히고, 약가를 통해 시장에서 제네릭을 몰아내는 출구를 넓힌다는 개념이다. 허가 영역에서 위탁 및 공동생동은 제한하거나 폐지하고, 제네릭 약가까지 인하하는 것을 검토하는 낌새가 관측된다. 정책 관계자들은 진실로, 제네릭 숫자가 많아서 발사르탄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발사르탄 문제로 여론이 들끓자 안보이던 제네릭 숫자가 갑자기 눈에 띈 것일까.

'제네릭이 많아 보인다'는 정부의 시각을 무작정 부정하기는 어렵다.  세계적 혁신신약 개발을 주도하는 스위스 같은 나라를 잣대로 들이대면 국내 제약산업은 '제네릭 왕국'처럼 형편없이 보일 것이다. 반면 제네릭 산업조차 갖추지 못해 고가의 다국적사 의약품을 자국민들에게 먹이는 지구상 대다수 국가들에 견줘보면 경쟁력있는 게 대한민국 제약산업이다. 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네릭 숫자가 많다는 게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체 정책이란 게 뭔가. 현실의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부정적 현상이 돌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더 나가 미래의 바람직한 길을 유인하는 것 아닌가. 인과관계는 물론 상관관계에 대한 다면적 연구 끝에 제시되어야 하는 게 정책이다. 정부의 발사르탄 대책이 모면책이 아니라 소비자 안전과 산업 발전 등을 균형있게 조정하는 종합적인 정책이 되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버릴 것은 정밀하게 버려야 한다. 만약 정책 관계자 머릿 속에 스위스를 그려놓고,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정책을 설계하면 산업의 앞날이 막막해 질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들의 과거는 질병 예방과 치료에 기여하며, 고용 창출의 근간인 제네릭을 부끄러워하며 마음대로 재단한 시간들이었다. 단적인 예로 2012년 일괄약가 인하가 만들어 낸 현상들을 돌아보자. 기업들은 잃어버린 매출을 되찾기위해 의약품 치료군을 넓히는 바람에 품목수가 크게 늘었다. 그런가하면 오리지널 의약품 코프로모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원료를 직접 생산하던 제약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제조를 포기하고 수입으로 해결하고 있다. CSO 현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약가 인하가 가져올 건보재정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제약산업 미래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이 비우호적인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 볼만한 혁신 신약의 싹들이 오로지 씨앗의 힘으로만 돋아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소극적인 정책도 문제지만, 광범위 항생제같은 과잉정책도 문제다. 광범위 항생제란 적응증이 항생제 오남용을 불렀듯이 과잉정책 역시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 발사르탄 대책을 내세워 약가를 다시 잔디깎듯하면 그 부작용들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시장은 생물이니 생존 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100원짜리 약가를 80원, 60원, 40원으로 낮춘들 제네릭 숫자가 줄어들까? 아니다. 국내 제약사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제네릭 밖에 없는 탓이다. 더 역설적 현상은 태풍이 불면, 큰 나무가 쓰러진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R&D 투자를 많이하는 회사들이 먼저 휘청거리게 된다. 대한민국 제약산업에 대한 정부의 비전이 '소나무 분재'가 아니라면 도돌이 표 정책은 숙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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