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해소할 '협상 시스템' 만들자

조선혜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 김정주 한국바이오제약협회 부이사장 등의 4월30일 간담. 조 회장이 제약바이오협회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조선혜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 김영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이사장 등의 4월27일 간담. 조 회장이 제약바이오협회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4월 초순 촉발된 유통과 제약의 카드결제 갈등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 협회 수장과 일부 집행부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협력하기로 다짐했다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걸까? 유통업계의 지속적인 작용은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일으키면서 제약업계의 거센 물밑 반발을 부르고 있다. 거래처변경, 재계약 여부 점검, 수금할인 정책의 전면 재검토, 모든 거래처와 계약내용 재검토 등과 같은 구체적인 대응책까지 모색되고 있다. 전면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또한 그 갈등의 불길은 이미 지지난주 유통협회와 약사회 간의 제1차 '업무협의체' 회의가 개시되면서 골칫덩어리인 반품문제로 옮겨 붙었다. 문제의 긴요함으로 봐, 곧 유통마진율로까지 비화되지 않겠는가. 갈수록 태산이다.

지금까지 발생된 유통과 제약 간 갈등 싸움을 보면, 대개 그 때마다 제약이 한 발짝 양보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문제가 크게 번지지 않고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양상은 사뭇 다르다. 제약업계는 전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영업이익률이 9.7% 밖에 되지 않는데 카드수수료를 2.5%나 추가 부담하면, 경영상태가 한계상태인 임계점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유통업계의 협조요청을 들어 줄 수 없다는 얘기다.

유통업계는, 힘든 우리도 카드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래도 제약은 우리보다 형편이 낫지 않느냐, 직거래하는 약국에는 카드결제를 받으면서 우리는 왜 안 되느냐, 법에도 나와 있지 않느냐, 유통사 개개의 낮은 시장 영향력으로 인해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회원사를 대신해 협회가 나서는 것은 불가피한 일 아니냐면서 카드결제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두 업계가 이런 급박한 상황으로까지 내 몰리게 된 근본적 원인이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 업계가 자초한 일이지만, 실거래가상환제도와 의약분업 시행 이후 의약업계에 불법리베이트가 만연되자 보건복지 당국이 쌍벌제와 함께 그 리베이트의 원천인 수익의 목을 조르기 위해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시장형실거래가제)와 약가일괄인하제도 등과 같은 지속적인 가격인하제도를 강력하게 실시해 온 것이 그것이다.

'쌀독에서 인심난다' 했는데, 이제 현 보험약가제도 하에서 쌀독이 넘치는 수익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인심나기도 힘들게 됐다. 자기 먹고 살기 급급한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종전과 다른 오늘의 카드결제 문제의 꼬여진 상황이 이를 극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유통과 제약의 현 갈등이 양자가 함께 다 죽는 '치킨 게임'으로까지 발전돼서는 안 된다.

제약업계는 지금 2.5%의 카드수수료를 아끼려다 최악의 상태에서 직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직거래 비용으로 경험상 최소 10% 정도를 더 지출해야 하는 소탐대실의 결과가 발생되면서 경영에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고, 유통업계는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제약업계가 최후의 유통경로로 요양기관 직거래를 선택할 경우 생명을 잃게 되는 상상할 수 없는 위기의 사태가 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통과 제약은 의약품 가격환경이 아주 각박하게 바뀌면서 숙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은 오로지 협상뿐이다. 마주 앉아 속 털어놓고 끝장 토론을 벌이면서 한 발짝씩 물러나 윈윈(Win-win)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다.

갈등 해법에도 마케팅적 논리가 적용된다. 역지사지의 마음가짐과 상호공동이익 추구가 중심점이 돼야 한다. 갈등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라는 인식도 중요하다. 상대방을 적절히 자극하여 혁신을 유발함으로써 발전의 계기를 만드는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다른 업종끼리), 수평적(동업종끼리)인 갈등의 원인과 그 유형 그리고 거래조건과 가격유지 등과 같은 갈등 대상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갈등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어 해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갈등관리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것이 없다.

갈등관리자의 자격요건으로는 (1)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를 이끌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 (2) 유통과 제약 시장의 지배력 크기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 (3) 오랫동안 제약 또는 유통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온, 경험과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업계에서 명성을 얻은 인물 (4) 의약품의 처방력과 지명도 및 유통경로 상에서 제품 통제력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 (5) 규모(매출 또는 자산 등)에 따라 그 규모의 업체들을 대표하여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는 인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로 구성된 조직을 통해 유통업계와 제약업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수직적·수평적인 갈등을 조정하고, 이 갈등을 긍정적 순기능적으로 전환시켜 의약품 유통경로의 성과와 효율성 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양 업계가 공동으로 '갈등해소 협상 조직체'를 창설·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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