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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관계자들 "랭거 교수, 국내 창업 쉽지 않을 것"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재도전·재창업 분위기가 관건

교수 창업의 성공적인 롤모델로 꼽히는 로버트 랭거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석좌교수. 모더나(Moderna) 공동 창업자로 유명한 랭거 교수는 4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창업했으며,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로버트 랭거 교수. 사진=langerlab.mit.edu
로버트 랭거 교수. 사진=langerlab.mit.edu

만약 랭거 교수가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의 성공률이 98%에 이르는 한국에서 창업을 했다면,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었을까? 바이오 벤처 대표와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랭거 교수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국내에서 창업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것 같지만, 미국에서 경험하지 않아도 될 압력에 시달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랭거 교수가 국내에서 (벤처) CEO 역할을 맡는다면, 기업을 책임지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창업 활동이 힘들 수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바이오 벤처 관계자는 "(회사의) 지분 문제로 다퉜을 확률이 높다"며 "(랭거 교수가) 국내에서 CEO가 아닌 CSO(최고과학책임자)를 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벤처 관계자들은 교수 창업의 모범 사례로 언급되는 랭거 교수의 국내 창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교수 창업 활성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지난달 한국바이오협회 유튜브 채널 'Bio TV'에 출연한 랭거 교수와 이병건 박사의 대담에서 해결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랭거 교수는 "경영을 잘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 즉 훌륭한 CEO가 필요하다"며 "과학자, 연구원, 전문경영인, 투자자들 간의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창업자(교수) 주도 모델인 국내 교수 창업의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교수가 전문경영인과 공동 창업하는 방법은 교수 창업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현실적 대안이다. 이에 대해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대주주를 맡기고, 교수는 소수지분을 가지면서 자문역을 담당하는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가 전문경영인과 공동 창업해 긍정적인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창업자에게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즉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랭거 교수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문화가 큰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입시제도를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를 '한방으로 결판나는 사회(The one-shot society)'라고 지적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3~4년 전부터는 재도약 과제 같은 지원책이 생겼지만, 아직 초기 창업에 많은 지원사업이 집중되고 있다. 한 번 실패한 후 다음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 같다"며 "실패를 해본 창업자가 다시 창업한다면 실패 확률이 적을 것 같고,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형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오 벤처 업계는 성공 확률이 약 5000~1만분의 1인 신약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재도전을 하는 창업자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면 한국 창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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