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바이오 붐 기회 외면한 자업자득 결과
변화ㆍ혁신 따라잡지 못하면 뒤쳐질 수밖에
1위 삼바로 60조3천억, 2위 셀트리온 27조4천억
7위 유한 4조5천억, 10위 GC녹십자 2조6천억 

"암젠(AMGEN)'은 1980년 창업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두 가지 바이오 신약만으로 연간 매출액 36억 달러(약 4조3200억 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 한국에서도 '암젠'과 같은 성공 신화를 꿈꾸며 2년 전부터 300여 곳의 바이오 벤처가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싹튼 이 소중한 '새싹'들이 과연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이 내용은 오늘의 것이 아니다. 21년 전, 모 유력 일간지의 2001년3월13일자 기사 중 일부를 각색한 것이다. 핵심은 그때 벌써 '300여 곳의 바이오 벤처가 탄생됐다'는 점이다.

암젠(AMGEN)은 1980년4월 7명(벤처 과학자와 staff)에 의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 옥스에서 자본금 8만 달러(약 9600만원)로 세워져(AMGen, Applied Molecular Genetics Inc.), 2020년 매출액 254억2000만 달러(약29조271억 원, 1$=1141.90원)와 2만4300여 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하는 세계 최대의 생명공학 제약기업이 됐다(www.amgen.com ˃about).

바이오 벤처 중 가장 비중이 큰 곳은 바이오의약 분야다. 2004년 국내 생물산업 실태자료(당시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바이오협회)를 보면 바이오의약 관련 벤처 업체 수는 189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1월14일 LG경제연구원의 심상만 선임연구원은 '바이오 제약산업의 전망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존의 합성 의약품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난치병이 많아 앞으로 바이오 의약품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이 상품화된 뒤 유전자 조작과 세포융합, 세포배양 등 생물학적인 유전공학 기술에 의해 개발돼 각광받기 시작한 제약분야다. 심 연구원은 "연구 개발력이 취약한 국내 제약산업의 경우, 국내외 관련기업과의 인수합병이나 지분참여, 라이선스 계약, 공동연구는 물론 장기적으로 기초단계부터 세계적인 바이오 벤처기업과 전략적인 제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5년이 지난 오늘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0년7월6일 우리나라 최고의 바이오-메디컬 벤처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제1회 바이오-메드 2000 코리아(Bio-Med 2000 Korea)'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매경그룹과 생명공학연구소(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서울대 유전자이식연구소, 연세대 임상의약센터 및 경희대가 공동으로 주관해 '더 나은 삶을 위한 생명공학'을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탈 등 600여 명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서정욱)은 "우리나라는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는데 토양이 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선행돼 있어 훌륭한 기반을 갖고 있다"며 "늦긴 했지만 생명공학도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이오의약품의 주무부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때도 지금처럼 바이오 열풍이 세차게 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상반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당시 회장 이강추)이 회원사 50곳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기존의 전통적 제약기업들은 '화학적 합성을 통한 의약품 연구개발에 높은 관심을 보인 반면, 게놈(genome, 유전체) 연구 성과를 활용한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의 전통 제약사들은 왜 그런 판단했을까. 그들은 실제 얼마 전까지도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대해 소수의 몇몇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케미칼'에서 '바이오'로, 의약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케미칼만 가지고도 충분한데 왜 구태여 익숙지 않은 미지의 바이오에 투자하는 모험을 걸 필요가 있겠느냐고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시절 셀트리온은 이미 의약품 시장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하고 구슬땀 흘리며 맨손으로 바이오의 생땅을 일구고 있었다.

그러한 판단의 차이와 다름은, 제약사들의 '상품화된 기업가치(몸값)' 즉 시가총액(시총)을 오늘에 이르러 하늘과 땅 사이처럼 갈라놨다.

상장 제약사의 몸값(시총)은, 개별업체 자본금의 분자격인 주식(주권) 단위당 거래가격에 의해 매일 다르게 매겨진다. 높으면 높을수록 더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2005년1월3일의 시총 10대 제약사들과 오늘 2022년1월3일 시총 10대 제약사들의 면면을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다만, (구)동아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제일약품 및 일동제약 등 5곳의 2005년1월3일 시총은 분명 10대 메이커에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들 제약사의 경우 지배구조가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바뀌면서 2005년 주가 및 사업보고서 자료가 모두 삭제되어 시총 산출이 불가능해 제외했다.
 

위 [표]를 보면, 2005년 시총 10대 제약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익숙한 이름들뿐이다. 비록 이 명단에서는 빠져 있지만 앞서 언급한 동아제약, 종근당, 한미약품, 제일약품 및 일동제약 등도 틀림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한양행의 몸값인 시총은 6753억 원으로 독보적인 1위였다. GC녹십자는 2487억 원으로 2위, 3위는 2242억 원의 대웅제약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2022년, 제약사들 시총 판도는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됐다. 시총 10대 제약사 자리에 기존 전통적 제약사들의 몫은 유한양행, 한미약품 및 GC녹십자에 주어진 3자리에 불과했고 그것도 맨 뒷자리 3석뿐이었다.

시총 1위 자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로)가 차지했다. 자그마치 60조2763억 원으로 단연 저만치 앞에 우뚝 섰다. 혹자는 돈을 많이 들였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콜럼버스 달걀'로 '삼바로'를 변명해 주고 싶다. 또한 그에게 셀트리온 사례에 대해 묻고 싶다. 셀트리온은 빈손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무려 27조3800억 원의 시총을 경작해 냈는데, 그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냐고 말이다. 

2009년4월6일, 셀트리온이 사고를 쳤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시가총액 1위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쟁쟁한 기존 제약사들을 제치고 말이다. 

 

그 다음날 4월7일 대우증권의 권재현 애널리스트(analyst, 투자분석가)는 이날 보고서에서 "셀트리온이 집중하고 있는 CMO사업,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기존의 제약사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장"이다. "글로벌 제약 및 바이오기업들과 함께 경쟁하는 시장이라는 점은, 국내 시장에만 국한되고 있던 기존 제약사들에게 익숙한 투자자들의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분석ㆍ평가했다.

이어서 그는 "셀트리온의 제약바이오 업종 시총 1위 등극이 기존 제약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라며 "신약, 글로벌, 바이오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최근 제약시장의 움직임은 기존 제약업계에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뼈 있는 일침을 놨다.

그렇지만 기존의 전통적 제약사들의 눈엔 그것이 한낱 거품으로 보인 것은 아닐까. 그 후에도 별로 달라진 점 없이 2015년 한미약품이 기술수출로 8조원 가까운 대박을 터트릴 때까지 제네릭 개발과 외제 상품도입 등에만 여념이 없는 실상을 보여 왔으니 말이다. 

그간 제약업과 관련해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 왔던 삼성 그룹만이 그 현상(셀트리온 시총 1위 등극)이 지니는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 것 같다. 삼성 그룹은 미래의 먹거리 사업 중 하나로 2011년4월22일 오늘의 시총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탄생시켰다.

2022년 첫 증권시장 개장일에 마련된 시총 10대 제약사를 위한 좌석에 기존 전통적 제약사의 자리는 7위 유한양행과 8위 한미약품 및 10위의 GC녹십자 등 3석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7석 자리 중 6위의 셀트리온제약 1석을 제외한 1위 삼바로, 2위 셀트리온, 3위 SK바이오사이언스, 4위 셀트리온헬스케어, 5위 SK바이오팜 그리고 9위 알테오젠 등 6석 모두 바이오제약사의 몫이라는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과 교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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