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볼모 인질극 비난"...신약 '코리아 패싱' 우려도

국회 종합감사 아비 벤쇼산 증인심문 

아비 벤쇼산 한국글로벌의약사업협회(KRPIA) 회장의 증인심문은 우리사회가 다국적제약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차가운, 그러면서도 이중적인 시선'이었다. 특히 리피오돌 사태와 약값논란이 부정적인 인식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약의 '코리아 패싱'을 우려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벤쇼산 회장을 29일 종합국정감사 증인심문대에 올린 장본인이다. 최 의원의 보도자료에는 "이윤만 추구(하는) 다국적제약사, 환자를 볼모로 한 인질극...정부는 가만히 놔둘 것인가?'라는 다소 섬뜩한 헤드라인이 붙어있었다.

"이윤보다 환자"...제약기업에 대한 기대

최 의원은 이날 "의약품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한 연설에서 강조한 MSD 본사 창업주 조지 W. 머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질의를 시작했다.

이어 "제약사로서 가장 큰 사회 공헌은 좋은 의약품을 개발하고 공급해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윤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자는 창업주의 정신을 잊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값논란. 세금포탈 의혹, 신약 '코리아패싱' 우려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불신의 목소리...국내 신약 가격이 싼 가요?

최 의원은 "희귀의약품 318품목 중 유통되지 않은 의약품은 76품목(23.9%), 국내 미허가 의약품은 14품목(4.3%)이다. 희귀의약품 10개 중 3개는 국내 환자들이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서도 건강보험에 등재하지 않은 항암제 리스트"라며, 2007년 10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허가돼 아직 등재되지 않은 19개 품목을 지목했다.

이중에는 다발골수종치료제 다잘렉스주, 흑색종치료제 여보이 등 급여등재 논란을 한 차례 이상 겪었던 신약들이 포함돼 있었다.

최 의원은 "건강보험에 등재를 하면 약값을 맘대로 못받으니까, 약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급여로 팔고 있는 약들이다. 환자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하는 약품목록"이라고 했다. 등재를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는 다국적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아픈 구석'이다.

최 의원은 "글로벌의약협회는 우리나라 약값이 OECD평균 약값에 비해 4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값을 제대로 주지 않으니 건강보험에 등재하지 못하겠다는 건데, 우리나라 약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실제로 낮다고 생각하느냐"고 벤쇼산 회장에게 물었다. 이날 첫번째 질문이었다.

벤쇼산 회장은 "우리는 의원께서 지적한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환자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에 충분히 빠르게, 완전히 접근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 협회의 의무이자 사명은 R&D의 최상의 결과가 환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즉답 대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반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정공법으로 나갔다. 박 장관은 "(신약가격은) 논란이 많다. 외국의 약가는 이중가격이 많다. 반면 우리는 단일가격이다.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보면 우리나라가 낮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이어 한국소비자연맹이 외국과 한국의 일반의약품 판매가격을 비교해 발표한 기사를 인용해 "일반의약품의 70%가 외국보다 우리가 비싸다고 한다. 다국적사는 한국약값이 너무 싸서 판매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국내 학자들까지 대동해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는데 정부가 이런 뉴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밝혀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약값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중장기적이고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충분한 연구를 계획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 장관은 "준비하고 있다"고 짧게 말했다.

"이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있다"

최 의원은 다국적제약사의 세금포탈 의혹을 제기한 언론보도 내용을 인용해 "우리나라에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지사들은 본사보다 이익률이 무척 낮다. 한국지사의 매출이나 영업능력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데, 일부러 본사에서 사오는 약값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해 본사의 이익을 높여주고, 리베이트 등으로 영업비용을 많이 써서 한국지사의 이익을 낮추는 건 아닌지 많은 언론이 궁금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에서 세금을 적게 내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벤쇼산 회장은 "(그런 기사는) 보지 못했다. 우리 협회 회원사는 엄격하게 한국 규제와 법을 준수하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기사를 보고 추가적인 내용은 (나중에) 보고드리겠다"고 했다. 최 의원은 "그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며,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 다음 리피오돌 이슈로 넘어갔다.

최 의원은 "리피오돌 사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덜 내려고 본사에 이익을 몰아주진 않는지 의심이 든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법을 잘 지키며 영업하고 있는지, 세금탈루 여부는 없는지, 국세청, 심평원 등 관계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탈법적, 비윤리적 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달라"고 했다.

박 장관은 "잘 알겠다"고 역시 짧게 답했다.

한국약가 참조하는 중국, '코리아 패싱' 경계

최 의원은  최근 중국에서 우리나라 보험약가를 참조하겠다고 밝혔는데, 중국에서 높은 가격을 받으려고 한국에서 신약을 출시하지 않거나 늦게 출시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면서 중국이라는 큰 시장 때문에 '신약 코리아 패싱'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많은 약들이 보험등재가 안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약값을 높게 받기 위해 한국에 신약을 늦게 도입하지 않도록, 또 한국에 신약을 우선 도입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노력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벤쇼산 회장은 "정부 중국가 제시하는 여러 약가정책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하는 점은 이해해 달라. 하지만 KRPIA 회장으로서 우선 생각하는 건 한국 환자들이 가장 빠르고 완전하게 신약에 접근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최 의원은 "약값을 높게 받기 위해 우리나라를 패싱하는 사례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모니터링 해 주고, 신약 '코리아패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박 장관에게 주문했다. 박 장관은 "노력하겠다"고 했다.

경고 메시지...리피오돌 사태로 시각 바뀌었다

최 의원은 당부와 경고의 말도 덧붙였다. 먼저 "약은 아픈사람들을 위해 개발되고, 아픈 사람들에게 공급돼야 한다. 제약사가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이윤은 보장해 줘야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인질극을 벌이도록 좌시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이어 "이번 리피오돌 사태로 다국적 제약사에 대해 국민들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 어떤 것도 생명에 우선돼서는 안된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윤만을 추구하고, 법과 윤리를 저버린다면 국회와 정부,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허무맹랑한 주장?

최 의원에 이어 증인심문 바통을 이어간 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었다. 기 의원은 이날 증인심문 직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화일명을 '다국적제약사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붙였다.

기 의원은 "KRPIA 2017년도 연례보고서를 보니까 국내 신약가격은 OECD 45% 수준이고, 전체 등재 신약의 73%가 OECD 중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고 돼 있다. 싼 가격에 국민 생명을 책임져 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질의를 시작했다.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게 아니라 반어법이었다. 그러면서 "진짜 싼 가격에 주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벤쇼산 회장은 "인용한 보고서는 2014년 발간 보고서다. 이의경 성대약대 교수가 진행한 연구다. 2014년 보고서 수치는 한국 시장에서 팔리는 의약품 가격이 OECD의 45% 수준이고, 등재된 신약의 73%가 OECD 최저가 수준으로 분석됐다. 현재 이의경 교수가 2018년 기준으로 다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복지부와 건보공단에 리서치 방법 등을 자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연구결과는 다음달 중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 의원은 "연구보고서를 인용도 없이 연례보고서에 이렇게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4년 복지부 국감에서 약가 논란이 있었다. 당시 이상석 KRPIA 부회장에게 우리나라 제네릭 약가가 높은 수준이냐고 물었는데, '각 나라 약가는 (직접) 비교하기에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각 나라 사회보험 제도와 약가제도가 차이가 있다'고 답했었다"며, 최상은 고대약대 교수의 연구결과를 언급했다.

"한 가지 연구를 보편적 지표로 활용 말라"

기 의원은 "최상은 교수도 재외국가의 약가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는데, 항암제 등의 실제 약가는 파악이 불가하다고 결론지었다. 해외는 비밀계약, 이중계약을 일반적으로 해서 일단 파악하기가 불가하다고 했다. 또 파악 가능한 외국 약가비교를 통해 우리나라 약가가 해외 선진국에 비해 전혀 낮지 않고 사용량이 많은 약제를 보면 오히려 높다고 했다"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건) 하나의 연구가 보편적 지표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라고 했다.

벤쇼산 회장은 "동의한다. 약가를 비교할 때는 비슷한 국가끼리 하는게 맞다. 인구수나 1인당 GDP 등도 고려돼야 한다. 그래서 연구 조사할 때 비슷한 수준의, 같은 레벨 국가간 비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점이 의원께서 말한 것과 같다"고 했다.

기 의원은 "이렇게 합리적인 말을 하면서 정작 신약을 45% 수준에서 공급한다고 말하는 건 (우리)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벤쇼산 회장은 "현재 연구 진행 중인 데이터에는 그런 내용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약제별 실제 약가-경평결과 공개할 수 있나"

기 의원은 "정말 정확히 하기위해 각 제약사별 실제 약가, 경제성 평가 결과 등을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벤쇼산 회장은 "KRPIA 회장 (이 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개별 회원사가 동의하는지는 (제가) 대표로 말할 권리는 없다"고 한걸음 발을 뺐다.

기 의원은 "최도자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다국적사를 이중의 눈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걸 채워주는 게 하나고, 다른 하나는 여러 문제를 핑계삼아 오히려 우리 시장에서 폭리 취하는 게 아니냐 시선이 그것이다. 한국 기업이 하는 것처럼 바로미터를 가지고 약가를 공개하고 한국 소비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벤쇼산 회장은 "반복적인 말이지만 KRPIA의 가장 우선적인 업무이자 사명은 한국환자에게 혁신적 신약을 가장 빠르게, 전적으로 접근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와 각 기관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박 장관이 반론을 제기했다. 박 장관은 "(다국적사가 말하는) 협력에는 이중성이 있다. 신약을 빠르게 접근하도록 하는 건 가격이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적절한 가격과 접근성을 놓고 나름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기 의원은 "우리 시장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우리 약가가 글로벌 약가에 영향을 미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다국적사는 약가협상에서 최고점을 찍어야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가 논리를 잘 개발해서 협상을 통해 국민에게 좀 더 나은(적정한) 가격으로 신약이 공급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다국적사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다. (때문에 약가협상에서) 불리한 약은 (국내에서) 빼려고 한다. 이런 걸 규제하기 위해 제가 WHO총회에서 공식 의제화하자고 제안했고, 현재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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