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글로벌 블록버스터는 언제쯤? 문제는 자본 
산업 재생법으로 M&A 성공한 일 벤치마킹을  
정부, 의지갖고 M&A 장애물 앞장서 제거해야

글 :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사회·경제적으로 제약바이오산업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제고, 여기에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국가의 보건안보와 직결되는 사회안전망이라는 인식이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이오를 미래주력산업으로 규정, 산업육성을 천명했고,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을 신약 개발, 의약품 수출, 신약기술 이전 등 구체적 성과로 입증했다. 의약품 수출은 2020년 사상 최초로 흑자전환했고, 기술수출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서며 최대실적을 경신했다. 

'블록버스터'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29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체들이 연구개발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은 1477에 달했다. 후보물질부터 임상 3상에 이르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3년 전보다 157.8% 늘어난 것이다.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노바백스 등 세계적으로 승인받은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백신 허브로서 면모를 각인시키며 K-바이오의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24조원에 불과한 내수 시장 규모와 제네릭 위주 생산구조, 글로벌 블록버스터와 글로벌 빅파마의 부재는 한국제약바이오산업의 또 다른 단면이다. 

산업계는 글로벌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산업 도약의 견인차'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신약을 출시하기 위해선 기술력, 인력, 생태계, 정부 지원 등 민관 차원의 모든 역량이 결합돼야 한다. 문제는 자본이다. 글로벌 신약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기나긴 시간과 평균 1~2조원의 막대한 개발 비용이 소요되는데, 규모가 영세한 국내 기업들로선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다. 

실제, 국내 10대 제약기업의 매출액은 평균 1.1조원으로 글로벌 10대 기업의 2%에 불과하다. 상장 제약기업의 경우 매출의 10.7% 가량을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다지만 글로벌 빅파마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연구개발비 측면에서 명백한 열세에 놓여있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 매출 1위 제약기업 스위스 로슈의 2019년 연간 연구개발비는 12조원을 넘는다. 반면 국내 매출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의 연구개발비는 약 3000억원으로, 로슈 대비 2.8%에 불과하다. 

연구자금이 뒷받침돼도 장애물은 또 있다. 신약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시장에 출시하기까지의 확률은 0.01%에 불과하다. 미국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개발 단계별 성공률(2018년 기준)은 임상 1상 9.6%, 2상 15.2%, 3상 49.6% 로 나타났다. 어렵사리 3상에 진입한다 해도 절반만 빛을 보는 셈이다.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 여기에 낮은 성공확률까지,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걸림돌들이다. 국내 기업들이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에 기술수출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임상 3상까지 완주해 글로벌 시장에 의약품을 출시하는 경험치가 축적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재정적 한계로 인해 블록버스터 창출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역으로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력 확보가 '블록버스터 신약'이라는 과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블록버스터 신약창출 역량을 갖춘 글로벌 빅파마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략적 인수합병이 꼽힌다. 인수합병을 통해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확보 ▲기술혁신 ▲규모의 경제 실현 ▲포트폴리오 재편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선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9년까지 최근 10년간 제약바이오 분야의 주요 인수합병은 총 596건, 1조 60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미국의 화이자와 길리어드, 영국의 GSK, 이스라엘의 테바, 일본의 다케다 등 세계적 빅파마들은 지속적이고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상위 10대 제약사 가운데 7개사가 지난 20여년간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사업다각화, 파이프라인 확대 등 새로운 성장모델 확보를 목적으로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14년 근화제약과 드림파마가 합병해 ‘알보젠코리아’로 재탄생했고, 2015년 대웅제약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했다. 2016년 유한양행은 미국의 항체신약 개발 전문 회사인 소렌토와 항체의약품 개발 위한 합작투자회사 '이뮨온시아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2018년 한국콜마는 재무구조와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CJ헬스케어를 인수했고, 셀트리온은 일본 다케다 아시아·태평양 사업권을 인수했다. GC녹십자헬스케어는 전자의무기록(EMR) 전문기업 유비케어를 인수, 데이터 기반의 건강관리 서비스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성사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 대부분 국내기업 간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과 대비된다. 실제 국가간 인수합병 거래 건수를 보면 일본 39%, 인도 29%, 중국 13%에 달하지만 한국은 7% 수준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에서 인수합병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인수합병에 따른 시너지 부족 ▲오너 경영 및 인수합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불충분한 자본력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인수합병과 사업재편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2016년 기업이 인수합병 등으로 사업을 재편하려 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기 위해 제정된 '기업활력법' 개정을 추진하고, 정책금융기관과 인수금융(인수자 또는 인수자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 일부를 차입하고, 그 외에도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주식형 자금을 조달받는 것) 등을 활용한 인수합병 자금 조달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해당 법안 적용 대상을 현행 과잉공급업종, 신산업 진출 기업에서 산업위기지역 기업까지 범위를 대폭 넓혀야 한다. 세제 및 금융지원 방안으로는 ▲연구개발 우선지원 ▲장기저리 대규모 융자 ▲중소기업차입금 지급보증 ▲기술가치금액의 50% 이상을 세액공제 ▲국내·외 스타트업 인수합병시 투자상생촉진세 비과세 도입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후반 기업활력법과 유사한 '산업재생법'을 도입,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며 제약사들의 규모가 급격하게 성장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해외 M&A를 통해 다이이찌산쿄, 아스텔라스제약 등 대형 기업이 탄생했고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3위의 제약강국으로 거듭났다.

아울러, 현행 '의약품의 품목허가 신고심사규정'에 따르면 기업 인수합병으로 인해 둘 이상의 의약품 제조업자가 하나의 제조업자가 된 경우 동일한 의약품을 1개사 1품목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두 개 이상의 품목들을 모두 유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도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동기가 될 것이다.

파이프라인과 기술 가치평가, 실사 지원 및 모니터링, 법률 자문, 거래와 관련한 인허가를 지원하는 '인수합병 전문중개회사' 설립도 고려해 볼만하다. 특히, 인수합병에 대한 산업계 차원의 인식개선이 매우 중요하다. 종전의 내수 중심의 경영에서 탈피해 산업의 미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 기업인수 합병에 따른 다양한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예컨대, 합병된 기업들을 별도 사업부로 인정하는 연합모델을 발굴하거나 각 기업들간 필요한 사업 내지 사업부만 인수합병하는 방안, 동일 사업목표를 위해 각 기업들이 목적 사업부를 독립시켜 합병하는 방식 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은 파이프라인 확보, 치료제 및 지역 확장에 대한 수요 충족을 위해 인수합병이 가장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모든 제약바이오기업에게 인수합병은 사업 확장과 기업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없다.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도전과 시도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체들은 인수합병의 필요성을 인식,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정부는 인수합병이 활성화되도록 세제·금융 지원 등 법적·재정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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