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마케팅 퍼스트, 공장은 그저 제품 대주는 곳 인식
생산시설 이끌 고급 인재 충원•교육 등 투자는 등한시
cGMP급 공장 자랑말고, 준법기반 소프트웨어 내실을

기획 | 기본 외면하다 곪아터진 'K품질관리 시스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2021년 임의제조 파동은 '100년도 넘는다'는 제약산업계에 과연 기본은 지키고 있는 것이냐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히트뉴스가 구조적으로 굳어진 문제의 안팎을 들여다 보았다.

ⓛ 2021년 전통제약산업을 달군 임의제조 파동
② 제약회사 임의제조는 왜, 만성적 구조적인가
③ 행정경찰 역할로는 신업리드 못한다 
④ 모범사례| 창업주부터 이어진 기업문화 확보

국내 제약산업은 냉정하게 평가해 기형 성장을 했다. 국내 제약산업을 인수분해하면 ①연구 ②개발 ③생산 ④영업 등 복합 역할로 구분되는데, 네가지 역할과 기능 가운데 유독 영업이 웃자란 형태다. 혁신 신약 연구개발이 고도화한 다국적 제약회사, 생산만 주력하는 CMO(계약에 의한 수탁제약회사), 제네릭을 주요 수익 모델로 삼는 제약회사 등 외국 제약회사들이 각자 전문화되며 다양하게 성장한 것과 달리 국내 제약회사들은 획일적 모습으로 성장했다. 

매출 규모 1위 제약회사나, 매출 규모 300위 제약회사는 다같이 자기 생산공장을 두고 같은 계열, 같은 성분의 의약품을 생산해 치열하게 영업하고 있다. 이들 국내 제약회사는 영업을 위해 나머지 부문의 총 역량이 조달되는 구조다. 연구와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따져보면 얼마되지 않는다. 

국내 제약산업이 영업에 몰두했다지만, 의•약사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마케팅과 디테일을 해 자사 의약품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쓰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아니다. 의약분업 특수를 맞아 전통제약회사들이 매출면에서 비약적으로 성장 했지만, 이들은 다함께 '20년 불법 리베이트 암흑기의 주연과 조연들'이다. 물론 이는 메인 스트림에 대한 설명일 뿐, 회사별로 혁신신약과 개량신약 연구개발에 매진해 성과를 나타낸 기업들도 있다. 

국내 제약산업의 성장사 관점에서 '2020년 제약회사 임의제조 파동'은 사필귀정의 한 과정일지 모른다. 매출 규모가 꽤 되는 제약회사에서 오랫동안 공장업무를 경험하고 지금도 현업에 있는 A씨는 "제약회사별로 영업과 마케팅에 자금과 열정을 쏟아 부은 세월이 오래됐고, 단언컨대 이런 방식을 고수해 망한 제약회사는 없다. 배부르고 등 따수니 의약품 품질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경영진들은 달리 신경쓰지 않아도 공장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사 공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본사 지시대로 묵묵히 약을 만들어 댔으니 말이다. 제약회사 숫자만큼 많은 공장은 지난 세월 이렇게 돌아갔다."고 임의제조의 근본 원인을 짚었다.

환경에 익숙해져버린데다 본사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장도 '이의 있습니다'라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A씨는 "공장에 근무하는 전문가들도 반성을 해야 한다. 분명히 품질 향상에 애쓴 전문가들도 있었겠지만, 공장쪽도 더나은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인재를 충원하고, 필요한 교육 등을 하는데 등한시했고, 돈들어가는 문제 등 본사 경영진이 좋아하지 않을 사안은 지레 짐작해  강력히 설득하지 않았다. 경영진과 공장 모두 무사안일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제약회사 경영진은 품질경영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신규 공장을 지을 때면 '미국의 의약품 품질 및 관리기준인 cGMP급'이라고 자랑하지만, 이렇게 지은 생산시설을 어떻게 효능감 높게 운용할지 소프트웨어적 측면은 등한시 했다. 'cGMP급'이라는 용어에 담긴 속뜻은 공장의 규모나 그 안에 설치된 고급 장비가 아니라 '국민에게 안전하고 효과높은 의약품을 재현 가능한 과학적 절차로 제조하는 시스템 그 자체'인데 그들은 명시적인 공장만 대견해 했다. 미국 GMP 앞에 붙는 c(current)는 GMP는 고정 불변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게 적용되며 스스로 진화해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중소제약회사 고위 임원 B씨는 "제약회사 경영진은 생산 한계치에 직면한 상황에서 공장 신설 등 하드웨어 측면의 투자는 선뜻 감행하지만, 생산시설(공장)을 원활하게 작동시켜 좋은 품질의 의약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투자, 이른바 보이지 않는 투자에는 매우 인색하다"고 했다.

단적인 예로, 해당 공장에서 생산하는 품목의 숫자와 생산량이 얼마인지를 계산해 이를 감당할 제조관리자(제조부서 책임자, 품질(보증)부서책임자)를 산출하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약사법이 요구하는 제조관리자 2명이상이라는 최소 요건을 채우는데 급급했지, 품질확보에 필요한 숫자를 고려해 3명, 4명을 둘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예 그들의 머릿 속에 없는 상황이다. cGMP급 공장지어 줬으면 공장은 공장장 책임아래 저절로 돌아 갈것이라는 믿음이 더 충만한 상태다.

 

대부분 수도권 외곽 공장… 만성화된 인력난 

대부분 제약회사 공장은 수도권 바깥에 있고, 본사 경영진의 공장에 대한 이해와 관심마저 낮은 탓에 공장의 인력은 늘 빠듯하게 운용된다. 약사법이 규정한 제조부서 책임자나 품질(보증) 책임자는 물론이고, 난이도가 있는 업무를 맡아줄 10~20% 엘리트 인력을 채용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미혼인 직원들은 결혼을 이유로 떠나고, 아이들이 있는 기혼 직원들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떠난다. 교육과 문화와 관련한 부대시설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다, 급여 수준도 높은 것은 아니라서 떠나는 직원을 붙잡을 수 없다고 중소제약사 공장장 C씨는 말한다. 생산 공장의 인력 안정은 서울에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 불안한 상황이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안정된 품질확보를 위해 공장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제조부서와 품질(보증)부서'에 전문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약사를 책임자로 두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공장근무자들은 "신입 약사 아니면, 공장 직무와 무관하게 커리어를 쌓은 약사들이 부서 책임자 자리에 앉아 약사법 요건만 충족시키는 형편이다. 이들은 의약품제조(품질보증)관리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탓에 노련한 생산라인 근무자들이 하자는대로 따르고, 뭐가 뭔지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저런 서류에 서명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인력난이 빚은 비정상적 현상들이다. 제조관리업무에 능통한 약사들조차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회사가 약사법 규정에 맞춰 최소 인원만 두는 까닭에 품질(보증) 책임자는 휴가조차 마음 편히 못가고, 외부 업무 출장마저 쉽지 않다. 제품출하승인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공장 경력을 갖고 있는 D씨는 "식약처에서 감시를 나오면 제품출하대장과 제조 및 품질관리 책임자 휴가•외근일지를 대조해 적법과 불법을 따져대는 통에 휴가 한번 제때가기 어렵다. 제조관리자는 사람이 아니냐"며 식약처의 경직성을 비판했다.

제약회사들은 '약사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만 강조하며 '제조 및 품질(보증) 책임자에 비약사도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규제 과잉이라는 논리다. 약사 직능 축소를 우려한 대한약사회가 강력히 반대하는 것과 다른 측면에서 약사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D씨는 "제조 프로세스와 품질관리 방법을 기능적으로 안다고 해서 의약품 제조와 품질 관리를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며 "약사법규는 물론 의약품 주성분 및 첨가제의 특성, 인체 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약사 전문가가 생산시설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는 "비록 약사가 아니라도 제조 및 품질(보증)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제조 및 품질 부서의 책임자가 될 수 있어야 그들에게도 비전이 생기고, 약사 인력난으로 야기되는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며 제조관리자에 비약사 인력 허용을 주장했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내재한 상시적 위험 

통상 1개 품목의 연간 매출이 100억원을 넘으면 블록버스터라는 칭호를 얻는 국내 제약업계에서, 웬만한 제약회사는 죄다 100개 품목 넘게 보유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연간 매출 100억원이 넘는 품목을 보유한 제약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연간 매출 20억원에도 이르지 못하는 품목들이 즐비한 상황으로, 기업들은 티끌모아 태산식 경영을 하는 셈이라서 성장하려면 기회 닿을 때마다 품목수를 늘려나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시장 규모 200억~300억 규모의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 허가를 받는데 온 힘을 쏟게 된다. '동일성분 내 건강보험 등재 품목수' 현황을 보여주는 위의 표는 이를 잘 설명해 주는데, 2020년 1월1일 기준 61개 품목이상이 경쟁하는 성분은 모두 81개 성분에 달한다. 성분별로 포진한 품목수를 다 합치면 7598개 품목에 이른다. 국내 전통제약회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 이처럼 엄혹하다.
 
관점을 달리해 생산공장 입장에서 보면, 제약회사 공장 한곳에서 연간 100개 이상 품목을 생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효율이라는 면에서도 그 자체로 위험을 내포한 상황이다. 연 매출 500억원 이상 품목을 생산할 때와 연간 매출 20억원 이하 품목을 생산할 때 제약회사의 정성과 노력, 준법의지는 천양지차일 수 밖에 없다. 예를들어 연 매출 500억원 품목이 임의제조로 적발돼 '3개월 품목제조 및 판매관리 중지'라는 행정처분을 받고, 보험당국으로부터 급여제한을 당한다면 제약회사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한해 한번 생산할까 말까하는 품목이라면 어떨까. 연 매출 500억원 품목처럼 제조과정 중 준법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다. 제약회사에 따라서는 10억 미만 품목도 적지 않은데, 이들 품목이 제조과정에서 허가사항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 변경허가를 내고, 다시 스케일 업을 반복하는 과정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어려운 실정이다.

허가용 배치(통상 3배치 30만정)마저 알뜰하게 판매하고 싶어하는 제약회사들에게 준법은 멀고, 편법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위수탁사들의 품질경영이라는 것도 결국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수탁사는 위탁사들에게 제때 제품을 납품해야 돈이 되니 무조건 약속을 지켜야하고, 위탁사들도 연 매출이 크지 않다보니 수탁사를 철저히 관리감독하는데 소홀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올드 드럭(Old drug)에 내재된 허술함 

올해 상반기 임의제조 문제가 불거졌을 때 A씨는 여러 가지 원인을 짚으며 지나치는 말로 "약전(KP)에 적힌대로 따라도 만들 수 없는 약이 있고, 허가사항대로 진행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약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기는 하는데, 변경허가를 받기도 어렵다. (이미 제조한) 과거 제조행위도 변경허가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인가.

약이 없으면 의약분업을 정상 작동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한창이던 시절, 정부는 약값을 더 쳐주겠다면서 생물학적 동등성을 권하던 때가 있었다. 생동 권고의 직접적 부작용은 '생동시험조작 파동'으로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고, 생동시험과 관련한 규정 강화 등 다양한 후속 대책을 불러왔지만, 여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늘 날 제약회사 임의제조 현상을 불러온 나쁜 토양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2001년 7월1일부터 합리적이고 비용효과적 의약품 사용관행을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 생물학적동등성이 확보된 품목 중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약사가 저가의약품으로 대체조제를 한 경우 약가 차액의 30%를 지급하는 '저가약 대체조제 인센티브제'를 시행했는데, 올해 10월 기준 대체조제 장려금 지급대상 의약품은 1만2834품목에 이른다.

모든 의약품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A씨의 말은 이들 품목 가운데는 허가사항(주성분과 첨가제량 등 규정)대로 제조할 때 소기의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약효 동등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이나 약물동등성시험을 하고, 3배치 실제 생산까지 마친 제약사가 식약처에 제출해 검토받고 확정한 허가사항인데도 막상 스케일 업을 해 생산하게 되면 활택제량이 부족해 타정이 되지 않는 등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임의제조 현상의 한 원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처럼 가변적인 상황을 감안해 약사법에 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와 변경허가 없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상세히 정해 놓고, 허가사항과 실제 제조가 일치하지 않아 조건을 달리하는 경우 변경허가 이후 다시 제조하라고 하고 있다. 어떤 경우 생물학적동등성시험부터 다시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변경허가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는 중소제약회사 고위 임원 E씨는 "제네릭 비즈니스를 수익모델로 삼는 제약회사들이 변경허가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면 기회를 잃게 되는데, 변경허가 절차는 필요이상 복잡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식약처와 업계 간 과학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품질경영의 원점은 견제와 균형인데...
미국 품질관리책임자, 이사회에 보고

국내 기업대부분, CEO까지 위계 유지

국내 제약회사 제조소(생산공장)가 '제조 및 품질관리에 관한 기준(GMP)'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의 구성은 약사법 제36조, 37조와 '의약품 안전에 관한 규칙'이 규정하고 있다. 인체에 직접 적용되는 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의약품제조관리자(제조부서 책임자와 품질(보증)부서 책임자)를 2인이상 약사나 한약사로 근무시켜야 한다.

모든 제약회사 제조소는 약사법 요건에 맞춰 제조부서 책임자와 품질(보증)부서 책임자를 따로 두고 있다. 약사법이 두 부서 책임자를 약사나 한약사로 명확하게 규정해 따로두도록 한 취지는 해당 업무의 전문가로서 본사 경영진이나 공장장 등 누구의 압력으로부터도 영향받지 않고 규정을 준수해 완성도 높은 의약품을 제조 생산하도록 관리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적으로 독립적 지위와 견제 기능을 갖고 있다.

법으로 규정한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현실은 규정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법 외 또다른 권력과 힘의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제조소 역시 약사법에 의지해 형태를 갖췄지만, 제조부서와 품질(보증)부서 역시 조직의 일원이어서 독립적으로 견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조직의 철학과 분위기가 이들의 역할과 지위를 분명하게 인정해야 하지만, 현실은 '불의에 저항하겠다'는 개인의 신념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왕따와 같은 외로움'을 견딜 각오가 없다면, 조직과 타협 밖에 생존의 길은 없다.

품질(보증)부서가 견제 역할을 하는데 있어 제일먼저 만나는 장애물은 약사 면허가 있는 공장장이 의약품제조관리 책임자를 겸임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공장장은 약사가 아니어도 가능하지만, 숙련된 약사가 공장장을 겸임하는 사례도 꽤 있다. 

역할과 기능상 제조부서 약사와 품질(보증)부서 약사는 견제를 전제로한 협력의 관계지만, 제조부서 책임자가 약사 공장장이라면 애당초 견제 메카니즘은 작동되기 힘들다. 공장장은 직급도 직급이지만, 연배도 높은 편이라서 품질(보증) 책임자(QC)가 원자재 시험, 공정관리 시험, 완제품 시험에서 문제를 발견해 이견을 제시하며 의약품출하 프로세스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출하 중단을 지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제조사 공장장을 역임한 E씨는 "결품나게 생겼다며 본사가 매일 압박을 하는환경에서 특히 근무경력이 길지 않은 품질(보증)부서 책임자(QA)가 '균시험 결과가 아직 안나왔습니다. 결과를 보고 출하를 판정하겠습니다'고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균시험 결과전에 출하해도) 여태까지 불합격난적 없으니 출하하라'고 찍어 누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허수아비가 된 QA는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다.

견제와 균형의 나라 미국도 이같은 문제에 직면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품질(보증)책임자를 아예 공장장 영향력 바깥에 두고 있다. QA의 보고라인에 공장장을 배제하고 최고경영자(CEO)에게 직보하도록 했다. 제약회사 별로 차이는 있는데, 어떤 곳은 CEO와 함께 이사회에 동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적정 기일내 안전하고 안정한 의약품을 제조할 책임을 부여받은 공장장의 업무 특성을 감안해 품질 이슈를 CEO와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E씨는 "QA가 내 소관인데 출하를 못하겠고 사장한테 보고하면 CEO는 QA의견을 더 존중하지 공장장 의견은 따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도 의약품 출하판정부서(QA)를 사장 직속 보고라인으로 빼 놓은 곳이 있다. 이러한 보고라인 설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품질경영은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그 이상(이른바 오너라 불리는 사람들)의 품질경영에 대한 확고한 철학으로 수렴된다.

예를 들어보자. QC 부서가 원자재, 공정 관리, 완제품을 테스트한 결과와 제조기록서, 시험지시 및 기록서 등 해당 제품의 로트에 관해 최종적으로 남는 서류를 QA가 리뷰하고 출하판정을 할 때 만약 출하불가 판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QA가 "출하불가하다"고 CEO에게 보고했다고 치자. CEO가 따져보니 제조과정의 직접 손실과 결품에 따른 시장 손실금이 50억원이 넘을 때 그는 어떤 판단을 하게될 것인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상 창업자나 대주주가 직접 관장하는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인 CEO가 "QA에게 오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또한 대주주에게 이를 보고해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신대로 일한 QA는 불화 유발자, 중뿔 난놈으로 찍히기 십상인게 국내 제약산업계의 오늘날 문화 아닌가.

사정이 이런데도 임의제조와 같은 위법이 발생했을 때 QA QC 등에 대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데 따라 약사 면허정지 등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원칙론도 적지 않다. E씨와 또다른 현직 공장장 F씨는 "대개 이런 사건에 연루되면, 담당자는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떠나게 되고, 주홍글씨가 새겨져 취업하기 어렵게 된다"면서 "(본사 경영진 등) 출하 압력의 원천은 아무렇지 않은 현실이 공평하냐"고 반문했다. 이들의 말은 같이 책임져야 한다데 방점을 둔 것이 아니라 QA QC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난뒤에 책임을 묻는 토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럽 제약회사들의 고민은 QP(Qualified Person)를 탄생시켰다. 외부에서 제품 출하판정 전문가를 영입해 근무시키는 것으로, 이 사람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출하판정한 의약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책임도 본인이 지게된다. 공장 일각에서는 이런 제도를 도입 검토해 볼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본사나 공장과 무관하게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만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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