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필요한 시기
약과 배달,
그리고 당연함에 대해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의사의 진단·처방과 약사의 조제·복약지도, 개인 의료이용(외래) 형태는 정형화됐고 20년이 지난 지금 당연한 모습이 됐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2년이었다. 이른 바 ‘편의점 상비약’이라고 불린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일반의약품 중 일부가 24시간 접근이 가능한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여가 흐른 지금, 이 당연함은 또한번 도전을 받고 있다. 시발점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감염병의 등장이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감염병이 발병했고, 접촉을 최소화 하는 것 말고 별달리 방법이 없었다.

면역력이 약한 만성질환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감염병 위기단계가 ‘심각’일 것 ▷재진 환자일 것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일 것을 조건부로 하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 시행을 결정했다. 진단과 처방은 의사, 조제와 복약지도는 약사라는 전제는 같지만 공간의 제약이 일부 해소됐다.

처음 비대면 진료에서 처방 과정을 살펴 보면 ▷만성질환자(재진)가 평소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던 의료기관에 비대면 진료를 요청한다. ▷담당 의사는 전화통화로 환자의 질환 관리상황을 확인한 후 약을 처방한다. ▷환자는 인근 약국을 찾아 의료기관에 처방전 팩스 전송을 요청한다. ▷의료기관은 해당 약국에 처방전을 팩스로 전송하고 조제가 완료되면 환자가 약국에 방문해 약을 수령하는 방식이었다.

의약품 배송의 필요성은 이 때 제기됐다. 사실 당연한 의문이었고,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문진, 청진, 촉진, 시진 등 대면진료가 원칙인 의료행위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만큼 의약품 수령 역시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의사 출신의 젊은 사업가는 여기서 사업 가능성을 엿봤다. 2020년 8월, 현재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종합 플랫폼을 리드하고 있는 ‘닥터나우’의 전신인 ‘배달약국’의 시작이었다. 순탄치 않았다. 보건의료산업이 규제산업인 만큼 한시적 비대면 진료에 대한 유권해석이 배달약국의 무릎을 꿇리기도, 펴게도 했다.

닥터나우는 배달약국 서비스 운영에 대해 복지부에게서 ‘코로나19 비대면진료 한시적 허용방안’에 근거해 위법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아 사업에 불법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대한약사회 등 관련 전문가 단체의 거센 항의가 있었고 복지부는 의약품 배송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의약품 접근성 확보가 제도 취지로, 수익사업은 해당사항이 아니라며 발을 뺐고, 2020년 9월 닥터나우는 배달약국 앱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사업이 다시 시작된 것은 같은 해 11월이었다. 복지부가 사안을 재검토 한 후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다. 배달약국은 비대면 진료 기능을 추가한 ‘닥터나우’로 재탄생하면서 본격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

닥터나우의 현재 서비스 제공 형태는 다음과 같다. ▷앱으로 진료예약 ▷전화 등 비대면 진료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앱으로 처방전 발송 ▷환자가 약국에게 앱으로 처방전 전송 및 의약품 수령 방식 선택 ▷환자 선택에 따라 직접 수령 및 배송이 이뤄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부분은 해당 서비스에서는 약 배송을 외래진료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과 수령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처럼 한정적인 서비스 영역에도 닥터나우는 10월 기준 앱 다운로드 건수 27만 건, 월 이용자 수(MAU)가 10만명에 이르는 등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닥터나우의 배달약국 서비스는 대한약사회 등 반대에 부딪혔다.
닥터나우의 배달약국 서비스는 대한약사회 등 반대에 부딪혔다.

 

약사회 등의 문제제기로 보건복지부의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533품목 및 오남용이 우려되는 의약품 277개 품목(23개 성분)에 대한 비대면 처방 제한 공고에도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나서기도 했다.

여전히 안전성은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배송의 주요 우려사항이다. 보건의료의 안전성은 계측되고 정형화된 수치보다 전문가의 연구와 경험, 즉 누적된 노하우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헌이나 도표를 찾지 않아도 우리나라 배송 시스템은 우수하다. 로켓처럼 빠른 배송이나 저녁에 주문한 신선식품을 다음날 새벽에 받아 볼 수 있다. 의약품에 비할 정
도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배송되는 상품들은 소비자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 관리 하에 생산·유통되는 식품이다.

사실 의약품 안전 배송을 식품의 그것과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헬스케어가 아닌다른 산업군의 시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IT산업을 이을 먹거리로 바이오가 떠오르면서 IT의 자본들은 그간 보건의료산업이 갖지 못했던 효율화, 디지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닥터나우는 의약품 배송 때 대체조제에 동의한다는 필수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닥터나우는 의약품 배송 때 대체조제에 동의한다는 필수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그 중 닥터나우가 제공하는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배송은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대표적인 변화다. VC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원격 의약품 조제 플랫폼 사업에 모이고 있는 투자자금은 제약·바이오 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IT 등 타 산업 심사역에게 의약품 배송은 쿠x, x마켓과 같이 편의성과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닥터나우 사례 이후 약 배달과 비대면 진료 사업 플레이어 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투자금 역시 모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닥터나우가 발표한 1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 VC에는 소프트뱅크 벤처스, 세한창업투자, 해시드 등이 포함돼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의료 산업 변화에 대한 시대적 흐름과 필요성을 판단하고 최근 헬스케어사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의료 인공지능 스타트업 루닛, 실버테크 스타트업인 한국시니어연구소 등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비대면 진료 규제 속에서도 닥터나우에 투자하며 관련 사업 성공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

이 같은 낙관론에는 정부가 산업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달 국무조정실은 ‘규제챌린지’를 통해 건의된 15개과제 중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원격조제 과제에 대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원칙적으로 불가하나 감염병 ‘심각’ 단계라는 한시적인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배송은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규제챌린지는 해외보다 과도한 국내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로 △신기술 의료기기에 대한 품목허가·신의료기술평가 동시심사 △인간대상·인체유래물 연구 대리인 서면동의 면제 등 국내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게임 셧다운제도 폐지했다).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입장에도 관련 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약 배달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의견 지속 청취를 통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며 비대면 진료는 의정협의체·보건의료발전협의체를 통해 지속 논의에 나서겠다는 검토의견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약 배달 서비스 업체 15개 이상이 참여하고있는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출발선이 될 것’이라는 환영 입장을 밝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권덕철 장관은 비대면 진료를 비롯한 조제방식 다양화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의사, 약사에게
대면 진료·처방·조제가 당연하듯
헬스케어 영역 밖에서는 비대면이 
당연해지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에 
자본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노동이나 노력을 기술이나 플랫폼이 대체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술 발전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영역이 사람 생명과 직결된 헬스케어라는 점은 중요하다.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한들 목숨에 비길 수 있겠나.

그렇지만 해외 사례에 비추어 보면 의약품 배송은 그에 상응하는 관리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업 영역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꼽히는 아마존(amazon)은 2018년 처방약을 우편으로 가정에 배달하는 온라인 약국 기업 필팩(Pill Pack)을 7억5300만 달러에 인수한 뒤 2019년 브랜드명을 ‘필팩 바이 아마존 파머시’로 명명해 온라인 약국 서비스를 본격 시행했다.

필팩 바이 아마존 파머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의약품을 배송한다는 개념을 넘어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약국이기도 하다. 현행법 등 제반 환경에는 차이가 있지만 안전성이라는 제약을 충분히 극복했음을 시사한다. 

의사, 약사에게 대면 진료·처방·조제가 당연하듯 헬스케어 영역 밖에서는 비대면이 당연해지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에 자본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줌(Zoom)은 회의, 세미나에서 계약까지 일상업무 대부분을 디지털세계로 옮겨 놓았다. 카카오택시는 길거리에서 나의 택시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약 배달, 의약품 배송은 디지털과 IT기술, 자본, 제도 등 산업의 보편적인 영역에서 감염병 등 예상치 못할 상황과 정형화 된 의료 시스템, 생명이라는 특수한 영역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만큼 근시일에 결정될 문제는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약사들이 약을 조제한 후 약을 환자에게 직접 전달하고, 환자가 이를 집까지 운반하는 과정과 배송업자들이 운반하는 과정 간 차이점은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이 먹을 식품을 택배로 배송받는 것과 의약품을 배송받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향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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