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할인·위탁매매인 해석에 위상 달라져

제약업계가 또 시끄럽다. 해묵은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애꿎은 '매출할인'과 '위탁매매인'이 본의 아니게 말썽의 중심이 됐다.

지난 18일 제약바이오협회가 주최한 '2018년 하반기 제약산업 윤리경영 워크숍'이 인천 네스트호텔에서 열렸다.

박성민 변호사는, 뒤에 언급한 사건에 대한 1~2심 법원 판결을 두고 "의약품 도매상을 제약사의 '위탁매매인'으로 보고, 매출할인을 통한 도매상의 리베이트가 제약사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 판단이 대법에서 확정될 경우 현재까지 정립된 의약품 유통 구조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변호사는 "소유권유보 조항이나 선관의무 조항은 거의 모든 제약사-도매상의 계약서에 들어 있고 약가 인하 시 제약사가 인하된 약가의 차액 전부 또는 일부를 도매상에게 보전하거나 반품 처리하는 것과 금융할인비용 지급 역시 거의 모든 거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런 사정을 위탁매매로 인정하면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와 도매상의 거래를 위탁매매로 봐야 하는데,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이상 히트뉴스 2018.10.20. 기사 일부)

이 사건은, 2010년 12월경부터 2016년 6월경까지 A제약사의 임직원들이 결탁된 다수의 도매유통사들을 통해 다수의 의료기관 의료인들 등에게 매출할인 등 방법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에 대한 쟁송 사건이다. 2018년 1월23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이 1심 판결을 했고, 2018년 5월 24일 부산고등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지금 대법원에 상고돼 있다.

법원이 A제약사와 쟁송 관련 도매유통사들 사이의 거래를 위탁매매로 본 주된 이유는 거래계약 내용에 위탁매매의 필수 요건인 '소유권유보 조항'과 '선관의무 조항'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약사들은 왜 굳이 도매유통사들과의 '거래약정서'에 '소유권유보 조항'과 '선관의무 조항' 등을 넣었을까?

대법원 전경(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 전경(대법원 홈페이지)

1960~1970년대에는 시쳇말로 '요이(준비) 땅!(ようい,どん!)'이 유행했었다. 그 당시 약업계에서 이 말의 뜻은, 도매유통사가 부도가 나면 거래 제약사들이 외상대금 손해를 적게 보기 위해 당해 도매의 허락 없이 잠긴 창고의 문을 억지로 따고 들어가 일시에 경쟁적으로 약품재고를 들고 나오는 행위를 의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이 '절도범'이 되어 구속되자, 제약사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너도나도 거래약정서에 공급 제품에 대한 '소유권 유보 조항'을 넣기 시작했다.

'선관의무 조항'은 거의 모든 제약사들이 가격유지, 외상대금의 제날짜 결제, 제품 및 거래 정보 수집, 재고관리를 통한 반품 축소 그리고 거래 담보 등을 위해 주로 1980~2000년대 초까지 거래약정서 조항에 포함시켰다. 필자도 그 시절을 거치면서 그러한 거래약정서를 만들어 실행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필요성에 의해 법률행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목적으로 거래약정서에 사적 강제규정인 '소유권유보 조항'과 '선관의무 조항' 등을 넣었다.

그런데 이들 조항이 바로 위탁매매의 요건이며 이로 인해 A제약사와 당해 임직원들은 2018년 1월과 5월에 비록 1,2심이지만 불법 리베이트 제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판결을 받았다. 자업자득일까?

1,2심 법원 판결에서 A제약사와 당해 의약품도매상들과의 관계를 위탁매매인 또는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A사와 도매상 사이에 작성된 '거래약정서'에는 도매상이 공급받은 의약품에 대한 소유권 유보 조항과 함께, 공급받은 의약품의 관리·보관·판매·유통에 있어 도매상의 선관의무 조항이 기재되어 있다.

(2) 도매상은 판매처나 판매조건에 대한 결정 권한이 없고, 특정 조건으로 공급받은 의약품을 다른 병원이나 도매상에 처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3) 약가 인하가 발생되면 A사는 인하된 약가의 차액 상당을 도매상에 보전해 주고 반품 처리했다. 이는 약가의 인하에 대한 위험을 A사가 부담하므로 타인의 계산에 의하여 자기의 명의로 매매하는 위탁매매의 구조에 부합한다.

(4) 금융할인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도매상의 A사에 대한 대금결제 구조는 병원으로부터 수금을 전제로 그 이후에 A사에 의약품대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5) 매출할인금 중 리베이트로 제공된 부분은 실질적으로 도매상에게 이익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리베이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매출할인이 된 금액은 여전히 A사의 지배하에 있어 A사의 요구에 따라 병원에 전달하는 것이고 도매상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는 앞서 언급한 워크숍에서 있었던, 다음과 같은 박변호사의 문제점 지적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상고심에서는 보다 정확하고 면밀한 판단이 나오길 바라는 분위기다. ▲ 현재까지 정립된 의약품 유통 구조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다. ▲ 제약사는 도매상의 판매처나 판매조건을 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도매상은 여전히 독립적인 중간 상인이다. ▲ 위탁매매란 위탁매매인이 물건 등을 자기 명의로 매매하고 거래의 경제적 효과는 위탁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영업인데, 의약품 도매상과 제약사는 그런 관계가 아니므로 법리적으로 위탁매매인으로 보기 어렵다. ▲ 매출할인의 일부가 리베이트 자금으로 사용되면 도매상이 위탁매매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탁매매인이 아니라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이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인단 역시 다음과 같은 이유로 A제약사와 당해 의약품도매상들과의 관계를 '위탁매매인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변론하고 있다. 

(1) 도매상은 의료기관에서 받은 돈으로 약품 판매대금을 결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자기자금으로 거래한다.

(2) 도매상은 약품 판매대금을 A제약사에 선지급한다. 도매상의 약품 판매대금 지급으로 약품에 관한 권리의무는 전부 도매상에게 확정적으로 이전된다.

(3) 소유권유보 조항은 담보목적으로 기재된 것일 뿐, 실제로 의약품 소유권 내지 그 판매대금이 A제약사에 있지 않다. 도매상의 선관의무 조항은 위탁매매와 상관없이 기재된 것이다. 도매상에게 판매처, 판매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것은 도매상 간의 경쟁을 회피해 주기 위한 것이다.

(4) 도매상들은 A제약사와 사후정산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도매상들은 자기계산으로 거래하는 전형적 중간상인이다.

(5) 도매상들이나 A제약사의 직원들은 사후할인 받은 매출할인금 중 도매상의 마진과 리베이트 액수를 구별하지 못한다. A제약사가 리베이트로 제공된 자금의 규모를 파악하지도 못하는 이상 이를 지배한다거나 그 처분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6) 도매상들은 계약가격(이른바 매출할인이 이루어진 금액)으로 의약품을 구입하고 지정된 병원과 자유롭게 협의하여 도매가격을 결정한다. A제약사는 도매상과의 계약가격에 따라 실제 대금을 지급받았을 뿐이다.

이처럼 이 사건의 쟁점은 A제약사와 당해 도매유통사들 간의 '위탁매매' 여부로 좁혀져 있다. 만약 상고심에서 불행하게도 위탁매매로 본다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도매'라는 일반적 허가 상의 업종과는 괴리가 큰, '거래약정서'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위탁매매인'이라는 정체성 전환의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대법원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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