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국기업 간 협상문화 부재 원인은 '감정'

대웅제약은 지난달 29일 세칭 '보툴리눔 톡신 전쟁'과 관련해 메디톡스를 향해 잠시 닫았던 포문을 다시 열었다. 미국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피니시블로(finish blow)'로 보인다. 

'美 ITC 최종결정 무효화…오류로 가득했던 명백한 오판 결국 백지화' 제목의 다음과 같은 보도 자료를 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가 주보(나보타의 미국 수출명)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을 포함한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무효화(vatatur) 시켰다. ITC는 28일(미국 시간) 메디톡스와 애브비가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상대로 제기한 보툴리눔 톡신 소송에 대해 미국 연방항소순회법원(CAFC)의 기각 결정에 따라 최종 결정을 원천 무효화 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17일 ITC가 항소는 무의미(moot)하다며 기각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지 약 5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소송 당사자들은 법적으로 결정 내용을 미국 내 다른 재판에 이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소송에서도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근거가 매우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기속력(확정 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에 대한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미국에서 추가로 제기한 소송 2건 역시 버지니아 동부지방법원에서 기각 신청이 인용되어 종료되었고, 캘리포니아 중부지방법원에서도 지난 8월4일자로 기각 신청이 제출되어 인용만 남은 상태다. 이제 ITC 최종 결정 역시 완전히 무효화됨에 따라 남아 있는 국내의 민·형사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웅제약은 ITC의 최종 결정에 불복해, (올) 2월17일 CAFC(연방항소순회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비록 늦었지만 ITC가 오류로 가득했던 스스로의 결정을 최종 무효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에 뒤질세라, 메디톡스도 같은 날(10월29일) 위와 같은 대웅제약의 보도 자료를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메디톡스의 ITC 승소로 대웅의 범죄 행위는 이미 입증…ITC의 판결무효화 결정은 2건의 합의 체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며 오판에 따른 결과라는 대웅의 주장은 대응할 가치 없어'라는 긴 제목으로 반론을 폈다.

△"지난 28일(미국시간) ITC가 메디톡스와 앨러간이 대웅과 에볼루스를 상대로 진행한 영업비밀 소송에 대한 판결을 무효화(Vacatur)했다고 밝혔는데, 이번 결정은 메디톡스가 ITC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대웅 제품 파트너사들과 체결한 2건의 합의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다."

△"ITC는 지난해 12월 대웅이 메디톡스의 영업 비밀을 도용해 나보타(미국명 주보)를 개발했다고 판결하고, 21개월간 해당 제품의 미국 내 수입 및 판매 금지를 결정한 바 있다. 이후 메디톡스는 해당 판결을 토대로 대웅의 미국 제품 수입사 에볼루스, 이온바이오파마로부터 합의금과 로열티 등을 받고,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합의를 각각 체결하며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메디톡스는 2건의 합의로 미국 소송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지난 6월 미국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 철회를 요청했으며, 이후 CAFC는 합의로 항소의 실익이 없어졌다며 항소기각(MOOT)을 결정한 바 있다. 이번 ITC의 무효화 결정은 절차적 순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양사는 아직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가 정반대되는 의도적인 해석을 내놓고 언론과 여론 등이 자기편에 서주기를 기대하며 격정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명백한 사실은 '보툴리눔 톡스 출처'와 관련된 미국에서의 소송전(訴訟戰)은 이제 완전히 종결됐다는 점이다.     

대웅제약 (왼쪽) 사옥과 메디톡스 사옥
대웅제약 (왼쪽) 사옥과 메디톡스 사옥

그렇다면 미국 내에서 벌어진, 미국 업체 3곳과 국내 업체 2곳의 이해관계가 뒤엉킨 세기의 보톡스 전쟁에서, 국내 당사자인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중 승자는 누구며 패자는 과연 누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패자는 없고 '공동 승자'로 판단된다. 미국 쪽 관련 제약사들인 '엘러간'과 '에볼루스' 그리고 '이온바이오파마' 등이 한국의 메디톡스와 함께 서로 윈윈(wín-wín)하는 조건으로 '협상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은 그동안 미국에서 발생됐던 과다한 소송비용과 기업역량의 허비에서 벗어나, 나보타(미국명 주보) 패밀리의 글로벌 사업에 더욱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대웅제약은 미국 시장에서 주보(나보타)에 대한 법적 리스크(소송)가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주름개선의 미용 시장에서는 에볼루스와 함께, 편두통 및 근육경직 등의 의료시장에서는 이온바이오파마를 통해, 마음 놓고 역량껏 나보타의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여세를 몰아 EU와 중국 등에서 나보타의 출시에 보다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메디톡스도 보톡스 세계시장에서 여러 가지 권리를 챙겼다. 미국 파트너인 엘러간과 함께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인 에볼루스로부터 향후 2년간 3500만 달러(약 380억 원)의 합의금과 주보(나보타)의 미국 판매액에 대한 일정률의 로열티(royalty)를 받게 됐다.

메디톡스는 단독으로, 에볼루스의 보통주(신주) 676만2652주를 단돈 67.62달러(약 7만5000원)에 인수할 수 있게 됐고, 이 주식은 에볼루스 발행 주식의 16.7%가 됨으로써 에볼루스의 2대 주주가 된다.

메디톡스는 그 외에도 대웅제약의 또 다른 미국 파트너인 '이온바이오파마'로부터도 치료용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순매출액에 대한 로열티를 15년간 받기로 하였으며 이온바이오파마가 기존에 발행한 총 주식 중 20%에 해당하는 보통주 2668만511주를 액면가로 발행받기로 합의 받았다. 이로 인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이온바이오파마의 2대 주주~3대 주주로 동거하는 사이가 됐다.

이렇게 된 데는, '팩트(fact)'와 '협상'이라는 두 키워드(key word)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팩트는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주보(나보타)를 관세법을 위반한 상품이라고 판단해 21개월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 팩트를 중심으로 이러한 추리가 가능하다. 에볼루스와 이온바이오파마(두 회사 모두 '알페온'사의 子회사임)는 21개월 수입 금지를 당하는 '손해'와, 경쟁자인 엘러간과 메디톡스와 '협상'하여 수입 금지를 푸는 '이득'을 고민했을 것이다. 

두 회사는 일단 협상하는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테고, 협상 조건을 마련한 다음 엘러간과 메디톡스를 물밑에서 어떻게든 협상테이블에 앉게 했을 것이다. 물론 협상조건을 놓고 티격태격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겠지만 결국 서로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 앞에서 언급한 조건의 협상합의를 도출해 냈을 것이다. 

미국은 이것이 항상 가능한 나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한국은 이것이 여간해서 잘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된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의 보톡스 전쟁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그 이유는, 기업문화와 그 문화를 열어가는 방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기업체를 기업의 본질(이윤추구 수단)에 따라 사회적인 개체로 객관적으로 봐 협상이 손 쉽지만, 우리 한국은 지배주주가 기업체를 내 것, 내 소유로 보고 내 기업체가 공격을 받으면 곧 자기 자신이 공격 받는 것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상대방에 대해 악감정부터 갖기 때문에 협상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지루한 국내 법정 공방과 여론전을 미국에서처럼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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