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제약회사 임의제조, 근본 원인 찾기 외면 말자

요즘 전통 제약회사들이 제조소 내부 고발이라는 잠재적 위험을 껴안은 채 좌불안석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 고발 위험이 커진 직접적인 이유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3월25일 '바이넥스 및 비보존의 임의제조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위법 근절 대책으로 함께 내놓은 '의약품 제조·품질 불법행위 클린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제조소 근무자들을 향해 대놓고 '정의의 호루라기'를 불라고 부추기는 것인데, 불법 근절과 적폐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규제행정의 양념'으로 평가할만하다.

올해 4월부터 본격 가동되고 있는 신고센터에는 내부고발자로부터 이런 저런 불법행위에 관한 제보들이 쌓이고 있으며, 식약처는 기획점검단을 통해 불법의 진위를 가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성과도 냈다.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0월 국정감사에서 클린 신고센터 운영결과를 질의한데 대해 식약처는 "접수된 15건 중 12건(제약관련 9건)을 수사의뢰 혹은 행정처분 조치했다"고 보고했다. 제약회사 3건은 점검결과 위반사항이 없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시원부족, 상시운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의약품 허가권자이자 사후관리의 주체, GMP 적격승인권자이자 이의 사후관리 주체인 식약처가 내부 고발을 부추겨 '행정경찰 노릇'을 자임하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부 고발 위험에 직면한 제약회사들의 모습은 품질경영은 등한시 한 채 영업을 위해 회사의 모든 역량을 끌어다쓰며 성장한데 따른 필연적 업보인만큼 비판을 면할길은 없을 것이다. 특히 내부 고발내용 가운데 원료 분석, 공정 분석, 완제품 분석 등 품질(보증) 부서가 테스트를 마친 뒤 의약품을 출하하는 것이 약사법인데도, 버젓이 선 출하를 하는 행위는 '거짓은 안된다는 GMP 정신'을 정면으로 어긴 것으로 마땅히 처분 받아야 할 중대 위법이다.

식약처는 모르는체 외면하지만, 내부고발을 부추기는 것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임의제조'라는 타이틀 안에 갇힌 채 또다른 거짓을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규제·과학적 사안들이다. 식약처가 위반사항이라고 찾아낸 것들은 ➊첨가제를 변경허가 받지 않고 임의 사용 ➋제조기록서 거짓 이중 작성 ➌제조방법 미변경 ❹원료 사용량 임의 증감 등 4가지인데,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위반은 OX에 기반한 식약처 체크리스트로부터 실제 제조 과정에서 나타난 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덧칠된 구조적 문제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첨가제 변경허가를 받지 않았거나, 제조기록서를 거짓 이중작성 했다 등 4가지 위반사항을 압축하면 '허가대로 제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부고발 하기로 마음 먹으면, 이 지점은 그야말로 화수분이 될터인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식약처 고민의 강도는 낮은 듯 비쳐진다. 클린 신고센터 설치 때 제약회사와도 소통하겠다는 단골 레토릭은 내놓았지만 '식약처-제약회사(제조소)' 간 근본적인 원인 발굴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소통창구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임의제조 현상을 일으키는 모든 가능성을 찾아보기위한 방법론으로 '왜왜분석(know-why)' 분석이란 것이 있다. 현상을 일으키는 모든 요인들을 들춰내 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가는 분석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왜왜분석으로 따라가다 보면, OX 체크리스트로는 어쩔수 없는 모호한 지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 의약품 허가 내용은 CTD, 기술 이전, 3 로트(Lot) 공정 밸리데이션 등 여러 검증을 거쳐 결정되는데, 결코 완벽하지 않아 실제로 제조를 할 때 적지않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허가를 내주는 절차(문서 확인, 현장 감사 등)에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다.

그 증거는 최근 식약처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QbD(설계기반품질고도화)다. 이는 ICH(국제조화회의)가 Q8 규정을 통해 제안한 것으로 제조공정을 디자인해 다각적으로 연구한 다음 제조 방법을 결정하라는 주문이다. 허가대로 제조할 때조차 생겼던  문제들을 사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장치가 QbD인 것이다. QbD라는 미래 거울에 비춰볼 때 올해 핫이슈 임의제조는 완벽하지 않은 허가 내용을 변경하지 않은데 따른 결과물인데, 그러면 제조업체들은 왜 변경 절차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제약회사들을 칭찬할 수는 없지만 식약처는 이 지점을 제약산업계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OX 체크리스트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임의제조 문제니까 말이다.  

'변경 허가를 왜 안하고 임의제조를 하느냐'고 식약처가 묻는데 대해 제약업계는 몇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식약처도 오래전부터 들어 보았을테지만 크게 귀담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먼저 식약처 변경 절차가 모호하고 복잡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는 남보다 한발앞서 제품을 내야 하는 제약회사들이 변경허가를 외면하도록 하는데 한몫을 했다. 변경허가 절차가 모호하고 복잡한 것과 함께 변경의 수준(위험 영향도)을 정하기 위한 인프라 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변경수준을 정하려면 Quality Risk Management(품질위해관리) 기법을 활용해야 하는데 식약처도, 제약업체도 모두 이 기법에 대한 지식과 사람, 시간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식약처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로 꼽힌다. 제약회사가 허가변경을 시도하려 했지만, 식약처 실무자 선에서 오리지널 회사(허가를 잘못 받음)의 허가내용과 달라 허가변경을 신청할 수 없다는 답을 들은 적이 많다는 것이 제약업계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공무원의 고집이거나, 그들이 적합하다고 내준 허가내용에 대해 오류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지점이다. 의약품 품질확보를 위해 징벌적 과징금과 감시활동 강화도 필요하지만, 못지 않게 허가관리 당국과 산업계 간 과학적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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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경영 #Q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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