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서의 계절 식약처 발간 '완제의약품 제조'를 권함

구체성없는 추상명사나 개념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말은 근사하고 매끄럽지만, 대개 허허롭다. 최근들어 제약회사 CEO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개념어 가운데 하나는 '품질경영'이다. 이는 올해 3월부터 꽤 여러 곳의 제약회사들이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사항대로 제조하지 않고 제멋대로 만들었다가 식약처 행정조사에 걸려들어 처분을 받은 현상들과 무관하지 않다. CEO들이 말하는 품질경영이라는 말이 준법에 대한 다짐인지,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고보려는 우산인지 종종 헷갈린다. '뱉은 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연구•개발보다 영업과 마케팅으로 성장해 온 100년 전통의 국내 제약회사들은 1977년 도입된 '의약품제조 및 관리(GMP)' 기준에 맞춰 투자를 이어온 결과 대량 생산시설은 갖췄지만,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까지 같이 발전시키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비싼 기계로 가득찬 생산시설이 좋은 약을 만든다는 막연한 믿음을 철썩같이 고수한 결과로 그들은 ➊ 첨가제를 변경허가 받지 않고 임의 사용 ➋ 제조기록서 거짓 이중 작성 ➌ 제조방법 미변경 ❹ 원료 사용량 임의 증감처럼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차가운 현실 앞에 서게 됐다. 무면허 운전자가 포르쉐를 운전해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같은 부조화를 겪고 있다.

규제 대상자가 기존 규정을 지키지 않을 때, 당국은 언제나 처분의 강도를 상향 조정하는 일관된 방식으로 정책 수용성을 높이려 애를 써 왔다. 규제만 강화하는데 대해 논란은 남아 있지만, 며칠 전에도 또하나의 강화된 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GMP 적격 여부와 적격 승인이후 관리를 관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약사법 시행령 제34조의3(위해 의약품 제조 등에 대한 과징금의 부과기준) 전문을 개정해 '위해 의약품 제조(수입)업자 과징금 부과기준을 판매액의 2배까지 상향'했다. 19일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이 규정은 2022년 1월21일 시행된다. 연간 매출 50억원 제품이 위해 제조로 드러나면, 제약사는 100억원의 과징금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판매금액의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이, 본사 정책에 따라 영업·마케팅에 필요한 약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만들어 내는 것을 공장의 미션으로 알고  최적화시켜 놓은 GMP 공장내 소프웨어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킬지 미지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제약회사 오너(솔직히 오너라는 명칭은 맞지 않지만, 대주주의 막후 영향력이 절대적인 제약산업 현실을 감안해 이번 만 쓰기로 하자)가 품질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기업철학을 내재화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한 것이 오늘 날 대한민국 전통제약산업이 처한 실상이기 때문이다. 품질과 관련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치는 세상 안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또하나의 별도 세상이 오너 중심의 세상이 아니던가.

친절하게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구체적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허망한 '품질경영'을 입에 달고 사는 제약회사를 위해 '품질경영 실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일부 개정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에 관한 규정'에 맞춰 A4 용지 50장 분량의 [별표 17]이 그 것이다. 10월29일부터 시행되는 이 가이드 라인은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의 규정 변경사항'을 담은 것으로 '국제 조화'가 목적으로, 대개는 생산시설 관계자들이 주로 애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품질경영에 관심이 있는 제약회사 경영진이라면 밑줄치며 교과서처럼 읽기를 권면한다. 한 회사가 '의약품품질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원칙으로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이런 것들이다.  ①제조업자는 의약품이 용도에 맞고 품목허가(신고) 사항에 부합하여 환자에게 안전성, 품질 또는 유효성으로 인한 위해가 없도록 제조됨을 보장하여야 한다. ②품질 목표 달성은 경영진의 책임이며 회사 내 관련 부서의 모든 임직원, 공급업체 및 판매업체의 참여와 기여를 필요로 한다."

'품질경영'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돼야 하는지 정교하게 수록한 이 가이드라인을 독서의 계절에 제약회사 CEO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CEO를 넘어 제약바이오 생태계 종사자 모두에게 '의약품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기술한 '완제의약품 제조(발간 식약처)'의 일독 이상을 권한다. 딱딱한 내용일 것이라는 예단은 금물이다. 정 붙여 읽으면 나름 재미도 있다. 단, 재미없어도 환불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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