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토와 비판은 했지만 그래도 현 제도 고쳐 쓰자? 
일본과 대만 등이 시행하는 'R-zone'에 관심 집중  
'델파이 기법'에 한계성이 있다는 점, 꼭 유념해야 

 

 새 과제 남긴 '합리적 약가제도 모색 9.30 세미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이 주최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및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가 공동 주관한 '합리적인 약가제도 모색을 위한 정책 세미나'가 지난달 30일 열렸다.

세미나 안내장에 예고된 것처럼,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에 대한 문제점의 성토장이었다. 당국자를 제외하고 발제자를 비롯한 패널 모두가 그랬다.

발제를 맡은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이재현 교수는 "요양기관에게 장려금을 주면서까지 의약품의 저가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결국 공급자에게 저가 공급을 강요하는 것인데, 이러한 처방ㆍ조제 약품비절감 장려금제도 하에서 형성된 낮은 약가를 근거로 또다시 거듭(2중으로) 약가를 인하시키는 것이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의 실체"라며 이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

HK이노엔 이병태 팀장은 "3번의 실거래가 약가인하 결과 2020년에 인하된 품목의 21%가 2018년에도 인하됐고, 2020년에 인하된 품목의 44%가 2018년, 2016년에도 인하됐다. 절반 가까운 수치가 주사제로 나타났는데 원내처방 비중이 높은 주사제에 집중됐다"고 하소연했다.

이 팀장은 "약가인하는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지를 감소시킨다. 투자 의지가 꺾이기 때문에 정부의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목표도 속도가 지연될 수 있다. R&D 투자를 통한 이익을 다시 투자하는 기업에는 약가 보상이 확실해야 한다"고 제약업계를 대변했다.

의약품유통협회 김덕중 부회장은 "국공립병원을 사후약가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는 1원 낙찰 등 부조리한 저가 입찰이 반복되는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올해도 일산병원 입찰에서 1개 그룹에서 60개 도매업체가 1원으로 투찰해 1원에 낙찰을 받았다."고 유통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국공립병원에 대해 사후관리를 제외한 규정은 무리한 저가구매를 막는 장치까지 해제한 것으로 이는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을뿐더러 무조건 약가만 낮추면 된다는 과욕이 빚은 제도"라고 비판ㆍ항변했다.

대한약사회 오인석 보험이사는 "현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는 약국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로, 약가인하 시마다 약가차액 손실보상 문제를 공급업체와 정산하도록 (당국이 약국에) 떠넘기는,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다. 약가인하로 약국 손실을 줄이기 위해 실물 반품이 이뤄지는 것이 대다수인데 반품 후 약가 인하된 약을 구입할 때까지 (불가피한) 그 시간 차이에 조제되는 약이 없어 환자는 약국을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고 현장의 심각한 문제를 토로했다. 

오 이사는 "약가인하가 이루어질 때마다 그 시행일에 임박해 이루어지는 고시 개정으로 인해 약국 일선은 행정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심각한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제ㆍ투약 업무에 장애가 초래될 뿐만 아니라 정확한 약제비 산정도 어렵게 되고 있다. 약가인하 시 예측이 가능하고 대비가 가능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제점이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문제점이 제기된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가 왜 도입되었는지 그 요인과 배경 등이 된 역사적인 유통질서 문란 행위에 대한 분석과 반성은, 이번 세미나에서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기가 찬 1원짜리 낙찰 원인이 어디 제도 탓으로만 돌릴 일인가? 1원짜리 낙찰 등 저가낙찰 책임이 어디 도매유통업체에게만 100% 돌릴 일인가. 

이번 세미나에서 어떤 인사는 "약사법상 도매상이 실제 구입한 가격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도매상의 의약품 판매 내역은 영업비밀 보호라는 이유로 정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제약사가 감수하고 약사법을 위반한 도매상은 처벌받지 않아 시장질서가 왜곡되고 있다"고 꼬집으며 단정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단정지어 분석할 수 있었던 데는, 정황 판단이 아닌 구입가 미만으로 판매행위를 한 도매상이 정부의 영업비밀 보호 조치로 처벌을 받지 않은 구체적인 정보 근거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니 그럴까. 증거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저렇게 정부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분석을 내놓을 수는 도저히 없을 텐데 말이다.      

만약 그가 그러한 증거를 가지고도 공개하거나 고발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면, 그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영업비밀 보호를 하는 정부와 그도 다를 바 없이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할 테고, 그러한 증거 사례를 갖고 있지 않거나 떠도는 소문만으로 도매상과 당국을 그렇게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하면서 확신에 찬 견해를 개진하는 것은, 증거 부재와 과장으로 인해 신뢰 받을 수 없는 공허한 분석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번 세미나에서 총아는 단연 'R-zone(Reasonable zone, 적정한 조정범위)'이었다. 이 범위 내에서는 약가를 인하하지 않는다. 일본은 5%, 대만은 6%(제네릭), 호주는 10%의 R-zone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세미나 발제자인 이재현 교수는 지난 세 번에 걸친 실거래가 약가인하 결과에 3개국 중 가장 낮은 일본의 R-zone 5%만 적용해도, 그 동안 인하됐던 품목의 80.5~89.3%가 약가인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만약 현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에 R-zone만 가미돼도 개국가는 물론 도매유통업계와 제약업계의 고민(반품 및 일감 급팽창 등) 중 상당한 정도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미나의 특색은 '델파이 기법(Delphi technique)'이 적용된 의사결정 분석 내용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델파이 기법은 아직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일정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내용 등에 대해 다수 전문가의 의견을 자기 기입 형태의 설문조사방법이나 우편조사방법으로 수회에 걸쳐 피드백을 시켜가며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된 내용을 얻는, 소위 전문가 집단적 사고를 통한 정책분석 방법을 말한다.

즉,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토론을 거쳐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대면으로 진행자의 설문에 전문가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이를 진행자가 다른 전문가들에게 보내고 그 의견을 보고나서 전문가들은 다시 수정 의견을 진행자에게 제시하는 일련의 절차를 수회 반복적으로 행하면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이다. 

이 의사결정 방법은, 소수의 직관적 판단보다 전문가들의 집단적ㆍ직관적 판단이 더 낫다는 전제하에 개발됐다.  

1950년에서 1963년경까지 미군에서 처음 활용되었고 1965년쯤부터 산업계의 기술 발전을 예측하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미래예측 뿐만 아니라 조직의 목표설정 및 정책수립에 이르기까지 적용 영역이 확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비계획적 예측 방법으로 정부나 기업 및 학술 연구 등에서 오랫동안 널리 활용되고 있다.

 델파이 기법의 결정적 한계성 

첫째, 실거래가인하 제도처럼 이해관계가 상반(업계와 정부당국)되는 과제에 있어, 연구 진행자(예컨대, 성대 이재현 교수)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즉 구성원 수 비중 여하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둘째, 설문서 내용에 연구 진행자의 의도가 깔려 있으면 그 의도대로 결과가 유도될 수 있다는 점.

셋째, 문제에 대한 견해와 처리 결과를 전문가들끼리 직접 주고받을 수 없고 진행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야 하므로, 진행자의 의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전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걸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의견을 수정 개진해야 한다는 점.

넷째, 진행자가 아무런 불순한 의도를 갖지 않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전문가를 선정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접수된 견해를 변질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통계 분석해 전문가들에게 전해 준다 해도, 통계적 처리 결과에 의해 전문가들도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따라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다섯째, 조작 가능성이 항상 내포돼 있으며,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태생적인 약점이 있다는 점.

델파이 기법의 한계를 보건복지부 당국자나 심평원 연구자들이 빤히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델파이 방법에 의한 결과물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까.

양윤석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이번 세미나에서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를 하지 말자 또는 하자로 접근해도 되는지,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찾아내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니 고민을 해 보겠다"며 원론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양 과장은 "약가인하로 인해 업계가 심히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당연히 환영할 리 없다. 당국은 보험재정관리 측면에서 사후관리 제도를 불가피하게 운영하고 있다. 행정비용과 품목 간 불균형 등을 개선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다. 처방ㆍ조제 절감 장려금 등을 포함해서 연구를 진행해 업계와 소통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협회 의견을 위시해 더 나은 제도로, 국민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약품비용을 지출할 수 있고 업계에서도 수용 가능성에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업계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언급을 했다.   

김애련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심평원 중심으로 합리적인 제도개선 연구를 꼼꼼하게 진행하겠다"며, 연구 외주를 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 실장은 또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던 업계에서는 아쉬움이 크겠지만.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행 실거래가 조사방식을 한 번은 더 반영해야 하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칼자루는 항상 보건복지 당국과 심평원 등이 잡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떠한 결정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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