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약화시킨 '士農工商', 아직도 무의식 중 건재
'영맨' 얕잡는 풍토, 약업계 발전 한계로 작용할 것

최근 '반백년 영업외길 이런 일들이…'라는 신간이 나왔다. 일동제약 정연진 고문이 펴냈다.

그는 50년 가까이 '일동'에서만 영업으로 한 우물을 파, 이 방면에서 업계의 전설이 됐다. 영업직에 지금 근무하고 있거나 앞으로 그것을 물려받을 수많은 인재들에게 결코 주눅 들지 말고 자긍심을 갖도록 당부하기 위해 저술을 했다고 한다.

46년 전, 대학 지도교수의 "앞으로는 영업이 기업의 꽃이야. 자네는 영업직을 선택하면 성공할 거야"라는 한마디에 그의 진로는 그렇게 결정됐다.

지도 교수가 '기업의 꽃은 영업'이라 했음에도, 정 고문은 지난해 일동제약 부회장직을 그만두며, 초년병 첫 직무 수행 당시 "영업직원에 대한 냉랭한 사회 분위기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이메일 퇴임 인사를 통해 술회한 바 있다. 그 당시 밖에 나가 업무를 수행하는 영업직이 사회로부터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오랜 세월 아직도 잊지 못할까. 

그런데 요즘도 영업직에 대한 사회 보편적인 인식이 5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정 고문이 같은 분야의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관리 현장을 떠나면서 애써 책을 낸 게 아니겠는가. 

누구나 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도, 21세기가 5분의 1일나 지난 이 시점에 "나, '영업 사원'이야, '판촉 사원'이야"라며 명함을 떳떳이 내밀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보건ㆍ의료ㆍ의약 전문언론계에서 부지불식간 '세일즈맨과 영맨(營man, 영업맨)'이라는 단어가 비속어로 오해될까봐 기사 중 금기어(禁忌語)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 명칭은 '하는 일'은 같지만 근무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근사하게 바뀐 것 같다. 의약품 판촉직원을 뜻하는 'MR'(Medical Representative)과 영업직원을 뜻하는 'MS'(Marketing Specialist)라는 낱말을 외국에서 수입ㆍ차용해 쓰고 있다. 이게 어디 이름만 바꾼다고 될 일인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우리 한국의 외근 영업직 경시 풍조의 낡은 사회 관습적 뿌리는, 대체 무엇이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것이 문제의 원인일 텐데 말이다. 이는 정 고문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경험한 기자의 50년 이상 된, 풀어야 할 화두(話頭)이기도 하다.

111년 전 멸망된 우리 '조선'에는 망국적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상과 계급이 엄존해 있었다.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일삼는 '선비'가 지배권을 가진 일등 백성이었고, 가장 밑바닥의 백성은 장사치 또는 장사꾼 등으로 비하된 '상인(商人)'이었다. 그 '사농공상'이란 봉건사회의 틀에 굳게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조선이 일본에 지배까지 당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그러한 잘못된 관습의 잔재가 아니고는, 오늘날 의약업계의 외근 영업직이 사회에서 낮잡아 보일 특별한 까닭이 없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장사를 탁월하게 잘하는 민족으로 중국인과 유대인 및 네덜란드인이 꼽힌다. 그들 나라는 장사를 북돋았다.

중국인은 세계인의 입을 노리며 먹거리(음식) 장사 및 상술 등으로 수많은 화교권 국가들의 경제권을 장악했고, 이스라엘인은 여인을 노리는 다이아몬드 등 보석 장사와 금융(돈) 장사 등으로 몇 안 되는 인구로 세계의 경제권을 지배해 오고 있다. 네덜란드는 정치ㆍ국방ㆍ외교보다 경제활동에서 자율성이 더 크게 보장된, 국토는 작지만 무역은 거대한 상인이 판치는 나라다. 유럽 등 세계 각지를 대상으로 한, 중개무역을 통해 커다란 이익을 거두고 있다. 그 경제활동의 자율성 때문에 최근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에 자리 잡고 있던 회사들 중 상당수가 네덜란드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영국이 한때 세상을 지배할 때, '보험 세일즈 맨'은 영국의 누구에게서나 선망 받는 최고의 직장인이었다. 

일본은 장사를 천직으로 대우해 줬기 때문에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때 세계를 호령하며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을 지배했으며, 오늘도 2~3백년이 넘는 대를 이은 전문적 상ㆍ공인(商ㆍ工人)들이 수두룩하고 이들이 일본의 경제대국 지위를 받쳐주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

저들과는 달리 우리 조선은 장사하는 사람인 상인을 최하위 등급으로 전락시켜 말할 수 없이 천대했다. 지금 민주사회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멸망한지 100년도 훨씬 넘는 조선 시대의 그 못된 '사농공상' 사상의 찌꺼기가 왜 특히 의약업계 영업(Marketing) 분야서 암암리에 활개를 칠까.

신약을 개발해도 장사의 현대적 용어인 Marketing이 잘 못되면, 그것을 내다 파는 일을 직접 수행하는 영업부 인재를 소홀히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의약품 세일즈 맨(외판원)이 왜 어째서 기피 받아야 할 사회가 지속되고 있나? 사회 및 기업 내부의 개혁은 이 무의식 상태의 뿌리부터 혁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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