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 관련 가이드라인 없어 활용 불가능한 상황

 기획  빅데이터-AI, 신약 임상개발 좁은문 연다 

항암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암환자에게 기존 치료제를 복용해야 하는 대조군 참여를 강제할 수 있을까? 환자 수가 적어 임상시험 조차 어려운 희귀질환의 대조군 선정은 또 어떻게 할까? 신약 임상개발의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떠오르고 있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빅데이터와 AI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한 항암제 임상을 인정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이러한 글로벌 동향을 예의주시 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상황은 아니다. 빅데이터와 AI가 임상개발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짚어 본다.

1. 신약개발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필요성
2. FDA가 신약개발 임상서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관점
3. 연구자가 말하는 빅데이터와 AI
4. 빅데이터-AI 가이던스를 위한 식약처의 움직임
5. 임상시험에 실질적으로 활용되는 AI와 빅데이터

전 산업군에서 빅데이터와 AI가 빠르게 접목되면서, 헬스케어 영역에서도 이들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당장이라도 신약개발 시간을 줄여줄 것처럼 과장된 목소리가 가라앉은 지금, 국내외 기업들은 물질발굴(discovery) 단계에서 의약화학자(medi-chemistry)에 유용한 도구(tool)로써 인공지능을 제시한다. 실제로 다양한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리얼월드데이터(RWD)는 개발자들과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연구자들의 분석 과정을 거쳐 신약개발 임상부터 시판후조사(PMS)까지 활용되고 있다. 빅데이터와 AI는 '임상시험'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항암신약 3상 임상에서 드러난 빅데이터 활용의 필요성

"타그리소(오시머티닙)는 이미 2차 치료제로 해당 적응증에 보험급여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당 환자를 대상으로 항암 치료군을 대조군으로 설정해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렉라자(레이저티닙) 조건부 허가에 대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에는 이같은 지적이 담겨 있다. 유한양행과 제노스코가 공동개발해 얀센에 기술수출 한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T790M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는 지난 1월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2차 치료제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렉라자가 정식으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확증 임상시험(3상)을 통해 최종 생존율 개선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동일한 적응증으로 먼저 출시된 3세대 폐암 치료제로 타그리소가 있는데, 이 치료제는 허가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2차 치료제로 급여권에 진입해 있다.

때문에 렉라자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임상 3상을 진행하려면, 대조군 설정에 어려움이 있다. 통상적인 항암제 임상 설계 방식에 따르면, 렉라자의 임상 3상(confirmative trial)을 진행하기 위해 렉라자 투여군을 실험군으로 잡고, '백금 기반 화학요법'을 대조군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이미 백금 기반 화학요법보다 훨씬 더 개선된 치료제(타그리소 등)가 허가 뿐만 아니라 급여까지 받은 상황에서 대조군에 포함되길 원하는 임상 참여자(암 환자)는 없을 것이다. 이는 앞서 중앙약심에서 언급된 대로 윤리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현재 유한양행 측은 정식 승인 3상 임상 설계를 위해 식약처와 함께 3상 임상 설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약처 입장에서도 렉라자 3상 설계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가이드라인에 나온 개념인 '외부 대조군(external control group)'을 활용하면 되지만, 식약처 쪽에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인 만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재로선 이 방식을 활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FDA는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신약개발을 위한 대조군 모집이 어려운 경우 데이터를 활용한 대조군 설정을 전향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FDA와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대조군 설정이 어려울 경우 externally controlled 혹은 externally matched의 방식으로 대조군을 설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과거 육종(sarcoma) 치료제를 개발할 당시 환자 수가 매우 적고, 질환 예후가 매우 다양했기 때문에 대조군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런 이유로 육종 치료제 개발을 위한 대조군 역시 임상 등록 데이터(resistry data)를 활용해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많이 진행했다. 

 

잘 정제된 빅데이터 토대로 SCA 만든 메디데이터

메디데이터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합성대조군(SCA)을 만든다. SCA는 과거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환자들의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생성한 가상의 대조군이다. 최근 SCA를 활용해 많은 환자 수가 필요한 확증 임상시험에서 위약 사용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암, 희귀질환 및 소아임상시험 비무작위 시험을 거치는 초기 임상에서 위약 또는 기존 치료약물을 투여받은 대조군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SCA는 단순 후향적비교(histroy comparison) 개념과 다르다. History comparison은 조건(나이, 성별 등)의 매치가 아니라, unmatched 혹은 무작위로 이뤄진 정보다. 반면 SCA는 시험물질을 비교, 평가하는 잣대를 최적화해 임상시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개념이다. 실제로 메디데이터가 수행한 연구결과는 렉라자 적응증과 유사한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SCA를 형성해 대조군 참여 환자 수를 줄인 실례도 있다.

메디데이터는 미국 비영리 암 연구단체인 'Friends of Cancer Research'와 파트너십을 맺고 2019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총회에 수차례 참여해 합성대조군에 관한 기반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FDA와 상위 글로벌 제약사도 같이 참여했다.

연구에 따르면, 메디데이터 에이콘 AI의 인티그레이티드 에비던스를 활용한 비소세포 폐암(non-small cell lung cancer) 치료제의 단일군 임상시험은 동일 주제로 이루어진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과 동일한 결론이 도출됐다. 이는 합성대조군을 활용해 기존 무작위대조군에 필요한 환자 수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이유로 이같은 도구를 활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데이터레지스트리 구축과 식약처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이처럼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서 빅데이터와 AI 활용은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질환, 환자, 보험 데이터 등을 취합한 리얼월드데이터를 축적한 각종 데이터 축적을 보다 체계적인 플랫폼 아래서 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러한 질환별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데이터센터를 세워, 임상연구가 국제 및 국내 규정에 따라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연구 전반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 의뢰자와 계약에 따라 다양한 임상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유방암학회 역시 국내에서 유방암 관련 데이터 축적이 잘 된 학회로 꼽힌다.

이 같은 데이터의 활용 폭이 더 넓어지기 위해서 모두 쓸 수 있는 퍼블릭 데이터를 넘어 제약회사들이 해당 데이터를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회와 회사(제약회사, 데이터 회사 등) 간 유기적 연계가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항암요법연구회 등 연구기관이 퍼블릭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제약회사들도 해당 데이터를 임상시험에 활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하면, 항암요법연구회 같은 연구기관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선순환 수익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못지 않게 식약처도 외부대조군과 SCA를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렉라자를 비롯한 국내 신약개발 임상시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신약개발을 위해 미국에서는 어떻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국내 상황과 식약처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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