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편집인의 랜선(LAN線) 인터뷰

<릴레이 기획>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21> 서광순 디아그노신(DiagnoCine) 대표 (미국 뉴저지)

 

서광순 디아그노신 대표.
서광순 디아그노신 대표.

 

제약바이오 시약 전문기업 디아그노신(DiagnoCine)을 아내와 함께 창업한 서광순 대표는 10대 초반 미국 이민대열에 합류한 한인 1.5세대다. 40년 넘게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서 대표의 한국어 발음은 정확했다. 재미 한인과학자 단체인 한인제약인협회(KASBP)와 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회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말해주듯 1.5세대의 장점을 한껏 활용해 한국과 미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 왔다. 헤켄섹 병원 암연구소 소장 시절, 아내가 먼저 도전했던 디아그노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빠져 산다'는 서 대표를 랜선으로 만났다. 평생을 몸 담아온 진단(Diagnostic, Patient Selection) 분야를 기반으로 맞춤형 암치료 기술 개발에 도전하는 꿈을 그는 꾸고 있다.

 

서광순(K. Stephen Suh) 대표님, 반갑습니다. 미국에서 제약바이오 분야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우정훈 BW Biomed 대표께서 다음 인터뷰 주자로 대표님을 추천해주셨어요.

우 대표님은 2013년 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장으로 오면서 인연을 맺었어요. 제가 회장으로 활동했던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나 재미제약인협회(KASBP)에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요. 이후에 서울바이오허브 센터장으로 가셨는데 BW Biomed를 창업한 현재까지도 자주 만나면서 서로 의지하고 있어요. 덕분에 이런 인터뷰 기회까지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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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에 대표님 관련 정보를 검색해 봤어요. KSEA회장으로 선출된 첫 재미동포 1.5세대라는 보도가 있더군요.

맞아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11살이던 1976년에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Dallas Texas)로 이민을 왔어요.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힘든 이민생활을 이겨내면서 속은 미국인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한국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속은 미국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넓게는 과학, 좁게는 제약바이오를 매개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활동을 하셨으니 밑바닥 애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약바이오의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 한인 1.5세대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연결고리 역할이라 생각해요. 재미 과학인 3만명 중 이민 2세대 (Young Generation으로 표현했다)는 6000명쯤 됩니다. 1.5세대인 저에 비해 1세대들은 이들과 문화적인 갭(gap)이 있어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리는 쉽게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주제도 한국분들은 그러지 못하거든요. 영어의 장벽만 넘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1.5세대의 역할은 이런 분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과 맺은 협약식.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과 맺은 협약식.

 

현재 대표로 계시는 디아그노신은 어떤 회사인가요?

2007년 헤켄섹(Hackensack Meridian Health group) 병원 암연구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아내와 상의해 창업한 회사에요. DiagnoCine은 Diagnostic(진단)과 Medicine(의료)의 합성어인데 지금은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는 3만종 이상의 시약을 정부기관, 기업, 대학 연구소 등에 유통하고 있어요. 영양학(Nutrition)을 전공한 아내가 전체 경영을 맡고 저는 비즈니스와 기술분야를 전담하고 있어요. 우리 가족이 사는 헤켄섹 집의 절반 정도를 사무실로 쓰는데, 상주 인력은 10명 정도고 그들은 e-비즈니스를 주로 맡고 있어요. 해외 remote offsite 인력은 약 30명 정도 됩니다.

 

디아그노신은 제약바이오 시약유통 분야를 메인으로 하는 기업이네요. 학부 때부터 관련 전공을 하셨나요?

아니에요. 제 스펙트럼이 좀 넓었어요. 고등학교까지는 텍사스에서 다닌 후 아이오와(Iowa)주에 있는 코넬대학(Cornell College)을 진학했어요. 대학원은 다시 댈러스로 돌아와(University of Texas Dallas) 분자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학부 때는 전기공학에 끌려 공대생으로 출발했는데 법학 강의를 듣다 매력을 느껴 법대준비생이 되기도 했지요. 2~3학년이 되어서야 생물과 화학 쪽에 관심이 생기면서 분자세포생물학의 길을 가게 됐어요. 대학원에서는 암세포에 관한 signaling과 조직학을 같이 전공했는데, 이런 과정들을 통해 기초과학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어요.

 

박사학위 이후에 곧바로 산업계로 들어오신 건가요?

학계에서 연구생활을 먼저 했어요. 국립보건원(NIH) 국립암연구소(NCI)에서 포닥 (postdoctoral)과 연구원으로 10년 있으면서 동물실험을 통해 암세포의 시작과 끝을 연구했어요. 연구하기 가장 편리한 피부를 모델로 동물실험을 했는데 전임상 결과들을 분석하면서 응용과학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어요. 이후에 연간 600만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헤켄섹 메리디안 병원 암연구소 디렉터로 12년간 있으면서 임상 현장에서 맟춤형 암치료를 연구했어요.

 

NCI 재직 시절 서광순 대표.
NCI 재직 시절 서광순 대표.

 

전주기를 경험하신 걸로 보면 되겠네요. 전임상에서부터 임상단계까지.

그렇다고 볼 수 있겠어요. 특히 병원에 있으면서 헬스케어 분야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요긴하게 필요한지 알게 됐어요. 또 환자 치료에 필요한 부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산업에 대한 관심이 생겨 났어요.

 

환자치료에 대한 이해와 산업은 어떤 연관관계가 있나요?

제약산업은 clinic이라는 end point를 잘 이해해야 하니까요. 이 때부터 산업계에 계신분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지식을 공유하려고 노력했어요. KSEA, KASBP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속은 미국인이라 하셨지만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누구보다 깊을 것이라 생각해요. 한 가운데에서 지켜보셨으니까요. 현재의 수준을 냉정하게 이야기한다면 어떤가요?

NCI 재직 시절.
NCI 재직 시절.

우리도 갖출 것 다 갖췄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한국분들이 많은데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아직 그런 레벨은 아니에요. 한국의 탑티어 회사들도 미국에서는 벤처 레벨 밖에 되지 않잖아요? 글로벌 50위 안에 들어와야 비즈니스 레이더 망에 제대로 걸려요. 한국에서는 인보사 사태가 떠들썩했지만 여기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거든요. 다행히 한국이 내놓는 임상시험 결과들을 미국 의사들이 인정하기 시작한지 10년쯤 되어가요. 임상시험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면 다음은 뭔지 아세요? 바로 제약바이오입니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위상이 많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수준은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다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빨리빨리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주 꼼꼼히 분석하는 태도로 문제를 풀어가야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있어요. 정부도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를 긴 안목에서 봐야 하고 산업계에서도 제약바이오의 메카인 미국에서 인적 네트워킹을 활발히 진행해야 합니다.

 

인적 네트워킹이라면 사람, 인재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인가요?

결론적으로는 그런 뜻이지만 방법적으로는 좀 달라요. 기업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글로벌 인재 한 두명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요. 원천기술을 가진 회사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 정도는 생각해야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에 시너지를 더할 수 있어요. 정부 차원에서 외국의 원천기술을 들여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요. 사회적 차이는 어차피 극복하기 어려워요. 이런 차이는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서로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통해 이겨낼 있다고 생각해요. 국립암연구소 10년 동안 여러 나라 연구원들과 일했지만 한국 과학자들 만큼 뛰어난 머리와 적응력을 가진 인재들은 찾기 어려워요. 인프라만 구축된다면 속도는 문제가 아닐 겁니다.

 

협회 활동을 하시면서 한국의 제약바이오 관계자들과도 인연을 많이 맺으셨잖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을까요?

20년전 KASBP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후원해 주신 대웅제약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창업자인 윤영환 명예회장님도 한 번 다녀가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을 위해 뛰기도 하지만, 한국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재미 과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좋은 의도를 가지고 꾸준히 도와주신 점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KITEE(재미 한인혁신기술기업인협회) 멤버들과 함께. 2015년.
KITEE(재미 한인혁신기술기업인협회) 멤버들과 함께. 2015년.

 

이제 랜선 인터뷰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기업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꾸는 꿈 이야기를 히트뉴스 독자들에게 들려주면 좋겠어요.

제가 올해 56세가 됐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병원을 그만뒀어요. 사실 제 전공이 페이션트 셀렉션(Patient Selection, 치료대상 선정), 환자 고르는게 전문이거든요.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약제(방법)를 찾는 것. 이게 진단이에요. 여기에 제약바이오를 연동시켜 환자 맞춤형 치료를 구현하는 연구소를 만들 계획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회사를 좀 더 탄탄하게 키워야해요. 10년쯤 후가 될까요? 암질환을 맞춤 진단하고 바이오마커와 AI를 통해 최적의 치료방법을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꿈꾸고 있어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잖아요? 헝그리 정신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해요. 히트뉴스 독자 여러분들도 헝그리 정신으로 파이팅 하세요!

 

암환자를 위한 맞춤진단과 맞춤치료라는 대표님의 꿈을 히트뉴스도 독자들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광순 대표는

디아그노신(DiagnoCine) 대표 (2018~2021년); 재미한인제약인협회(KASBP) 회장 (2019~2020년);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회장 (2017~2019년); 헤켄섹 메리디안병원 암조직 연구소장 (2007~2018년);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 (1998-2007년); 텍사스주립대 분자세포생명공학(Molecular & Cell Biology) 박사; (1965년) 서울 출생

 

글로벌 한국인 랜선 인터뷰_서광순 디아그노신 대표.

 

서광순 대표가 추천하는 Next Interviewee?

정상목 박사님을 히트뉴스에서 뵙고 싶어요. 제미제약인협회와 재미과학기술인협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FDA에서 21년 근무하셨고 곧 산업계로 무대를 옮겨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히트뉴스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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