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릴레이 기획|
곽상훈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전무

"신약개발은 포커와 같은 속성을 갖고 있어요. 자기가 가진 패가 좋다고 판단하고, 게임을 지속하려면 돈을 걸어야 하잖아요. 신약개발 역시 전임상에서 결과가 좋아 임상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자본이 필요하거든요. 유연하게 신약개발을 할 수 있는 벤처들에게 자본을 조달하는 역할을 해 보고 싶었어요."

기업공개(IPO)까지 자본 투입을 통해 신약개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이오 투자 심사역의 주요 역할이다. 곽상훈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전무는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눈 뿐만 아니라 투자한 기업의 팀 빌딩 등 투자가 끝나도 애정을 갖고 투자기업을 바라봐 준다는 것이 업계에서 그를 바라보는 평이다.

투자가에게 투자 회수율을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순히 돈을 쫓는 투자자가 아니라 신약개발 조력자로 함께 하는 그의 진심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바이오 투자 심사역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 주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곽상훈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전무는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눈 뿐만 아니라 투자한 기업의 팀 빌딩 등 투자가 끝나도 애정을 갖고 투자기업을 바라봐 준다는 것이 업계에서 그를 바라보는 평이다.

 

 #1. 고바이오랩 ·스탠다임·이노뷰테퓨틱스의 투자 배경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LG화학에서 산업계 경험을 쌓은 뒤 투자 업계로 오셨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대기업에 있다보니 신약개발에 있어 대기업의 유연한 환경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누구든 좋은 기술만 있다면, 자본을 원활히 투자받아 신약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상황도 인지했고요. 좋은 기술을 가진 벤처에 자본을 조달하는 역할을 해 보고 싶었어요."

 

대기업에 있으면서 신약개발에서 자본 조달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셨나 봅니다.

"17년 동안 LG에서 주로 기술을 들여오는(라이선스 인) 역할을 했어요. 그 당시 좋은 기술을 보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죠. 물론 한계도 있었어요. 대기업은 회사의 영업이익에 따라서 연구개발(R&D) 비용을 책정하다 보니, 신약개발 프로젝트 자체가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적극적인 투자로 신약개발에만 집중할수 있는 벤처에서 자본 조달을 통해 신약개발 생태계를 공공히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죠."

 

첫 투자포트폴리오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회사 고바이오랩이네요.

"투자를 집행할 당시 고바이오랩은 약이 될 수 있는 균주를 약 5000여 종 갖고 있었어요. 합성의약품 관점으로 보자면, 고바이오랩은 파이프라인 수가 탄탄했죠. 뿐만 아니라 갖고 있는 균주를 선별(seletion)하는 과정도 독특했고요.

쌍둥이 코흐트 연구를 통해 유전적 차이를 제외하고, 균에 의한 변화를 보는 기술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죠. 물론 고광표 교수님의 기술력과 유연함, 성품 등도 투자를 단행하는 주요 요소였고요."

 

마이크로바이옴은 아직 상용화 약물이 없잖아요. 이런 요인 때문에 투자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많았어요. 세레스 테라퓨틱스(Seres Therapeutics)가 임상 3상까지 가는 것을 보니 마이크로바이옴이 신약의 모덜리티(modality)로써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특히 고바이오랩은 균주뿐만 아니라 균주가 분비하는 물질까지 구축해 놓았어요. 미생물의 산물(metabolite)은 전통적인 신약개발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거든요."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회사 스탠다임도 투자하셨는데요.

"신약개발 회사에 투자할 때, 신약개발 출발점을 어디로 볼 지 였어요. AI 기술을 활용하면 신약개발 앞단인 발굴(discovery)의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봤어요. 스탠다임은 발굴 플랫폼을 투자 당시 보유하고 있었어요.

특정 쿼리나 타깃을 넣으면, 신약 후보물질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죠. 구조가 다른 4~5개의 물질을 넣으면 약물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물질을 정해주는 것이죠. 일종의 신약개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마이크로바이옴과 AI 모두 전 세계적으로 신약개발 영역에서 새로운 분야잖아요. 이런 분야에 투자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약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비용입니다. AI는 이를 단축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또한 신규 modality는 언제나 헬스케어 생태계에서 활력소입니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규 모덜리티는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신약개발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바이오 사업도 신규 modality 확보를 통해 지적 재산을 쌓아야 합니다. 벤처캐피탈(VC)에서 신규 modality 확보에 일조할 수 있다면 매우 보람있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혁신적인 분야는 유심히 지켜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노보테라퓨틱스는 새로운 신약개발 영위하는 곳은 아닙니다. LG출신 분이 주축이 돼 회사를 창업했던데요.

"LG화학에서 연구소장님을 하셨던 분이 스핀오프 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제가 LG에 재직했던 시절 오랜 시간 봐 왔던 분들입니다. 이 회사는 인적 구성을 보고 투자를 한 곳입니다."

 

 #2. 산업계에서 에이티넘으로 넘어오며 

산업계에서 많은 VC 하우스 중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님이 에이티넘을 추천해 주셨어요. 에이티넘에 와 보니 황 대표님이 왜 이 하우스를 추천해 주셨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어떤 것이 느껴지셨어요?

"오랫동안 바이오에 투자하신 황창석 부사장님은 산업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세요. IT나 플랫폼 기업과 달리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없는 바이오 기업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단순히 자본조달 뿐만 아니라 신약개발 벤처들이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어갈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시거든요."

 

보통 심사역은 상장 전까지 자본조달 역할을 하잖아요. 전무님은 투자가 끝나도 사후관리까지 꼼꼼하게 해 준다는 업계 평가가 있던데요.

"우리 회사의 원칙입니다. 황 부사장님 역시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상장 이후에도 두 번이나 투자를 더 하셨거든요. 단순히 상장 목적이 아니라 좋은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입니다.

저는 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투자업계로 넘어왔어요. 장단점이 있는데요, 산업계 경험을 벤처분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좋아요. 대부분 바이오 벤처는 연구자 기반으로 창업이 되는데요, 개발 역량이 풍부한 산업계 분들과의 가교 역할을 제가 해 드리기도 합니다."

 

투자 기업 중 산업적 경험을 공유해 주신 사례가 있나요?

"고바이오랩도 연구 역량이 뛰어난 고광표 교수님이 창업한 곳이거든요. 좋은 기술이 신약 개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발 경험이 풍부한 분을 추천드려 팀빌딩에 도움을 드렸어요."

 

투자를 고려할 때, 바이오 기업의 가치평가(valuation)는 어떻게 하나요?

"일정한 틀은 없어요. 기술, 인력, 시장 상황을 주요소로 고려하긴 합니다. 기술이 좋아도 바이오 상장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기업이 펀딩을 받을 때 가치(value)는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 기술이 아직 덜 여물었음에도 인적 자원이 뛰어나면 value를 더 받을 수도 있고요. 세 요소의 상황이 모두 좋으면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겠죠.

물론 미국과 같이 빅파마와 제약회사가 많은 경우 RANPV(Risk Adjust Net Present Value)라는 개념으로 가치평가를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개념은 임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에 대해 임성 진척 속도, 환자 수, 마켓 상황 등을 고려해 환산할 수 있는 수치에요.

하지만 현재 한국의 VC들은 보통 전임상 단계에서 투자를 하기 때문에 peer group valuation으로 시리즈 단계 별로 인력, 임상 데이터를 보고 가치를 평가합니다."

 

최근 바이오 섹터 VC 자금이 풍부해 졌잖아요.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아요.

"기술을 가진 분이 과거보다 편하게 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바이오 벤처에서 일해 본 인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산업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모든 기업이 100% 성공하지 못하겠지만, 벤처에서 교육 받은 인력이 또 다른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중요해요.

좀비기업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요. 하지만 바이오 심사역의 선한 영향력을 믿습니다. 바이오 심사역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에서 신약을 개발해 한 명만 살린다 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한 기업이 향후 100명을 살릴 수 있는 신약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요."

 

 #3. 투자 업계에서 바라 본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 

산업계 경험도 있으시고, 현재는 투자 업계에도 몸담고 있으시잖아요. 국내 신약개발, 어디까지 왔다고 보시나요?

"바이오 VC 규모는 많이 늘었다고 익히 들었어요. 기술적으로도 많이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하더라도 네이처, 셀 등에 논문만 게재해도 교수가 됐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더 훌륭한 논문을 내는 연구자 분도 늘었어요. 분명 학술적 역량을 성장하고 있어요.

산업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죠. 2000년 초반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을 받고, SK바이오팜이 글로벌 시장에서 자체 개발한 약물을 판매하고 있어요. 여기에 삼성과 셀트리온이 항체의약품을 생산하는 역량을 토대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고요.

특히 SK바이오팜의 사례는 유의미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팔아볼 만한 약을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잖아요. 향후 사업계의 리더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리더 격의 회사가 나와 좋은 벤처들을 인수합병(M&A)하는 사례도 나오면서, 일종의 헬스케어 업계 포식자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LG, SK, 삼성, 셀트리온 등이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투자 생태계에서 바이오 섹터는 어떻게 변모해 나갈까요?

"바이오 산업의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투자 생태계는 산업의 변화 양성에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향후 국내 바이오 업계도 삼성, LG, 현대와 같은 업계를 이끄는 대기업과 이와 협력하는 중소기업의 형태로 변모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소수 기업이 거의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신약개발 분야는 아무리 화이자가 미국 1위 제약사라고 해도, 과반을 점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에겐 기회입니다. 좋은 기술만 있으면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대기업의 바이오 진출 의지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이들이 투자한 자본이 좋은 인재를 키우고, 해외에서 좋은 기술을 들여오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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