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영 탄생, 대형화·물류 현대화 붐 조성에 기여
거래약정서 중요성 일깨웠다는 점에서 나름 역할 

쥴릭파마코리아(쥴릭)가 노사갈등과 자본전액잠식 등으로 예사롭지 않다. 쥴릭의 요즈음 사태를 보면 초창기 내세웠던 명분과 포부 등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쥴릭은 1997년 1월 공식 출범했다. 1988년경 KLS(Korea Logistics Service)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들어와 1995년경부터 의약품유통분야에 진출하려 했으나 도매유통업계가 당시 투자자였던 한독약품(현, 한독)을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본격적인 출범 시기가 늦어졌다.

2000년 8월부터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전문의약품 시장이 일순간 급팽창됐고, 그 시장의 총아가 된 다국적 의약품들에 대한 독점 공급권을 손에 쥔 쥴릭의 그해 매출도 단숨에 879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쥴릭의 매출액은 2001년 1814억 원, 2002년에는 86.6% 폭풍 성장한 3385억 원으로 나타났다. 그전까지 줄곧 업계 매출 1위 자리를 지켜왔던 백제약품의 2002년 매출액(개별) 3029억 원보다 11.8%나 더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에는 도매업계가 우려한대로 무려 5543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같은 해 백제약품의 뒷걸음친 매출 3006억 원과 비교해 보면, 쥴릭의 수직적 비상이 국내 도매업계에 얼마나 힘든 스트레스로 작용했을까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이후 쥴릭 매출액 퀀텀점프(Quantum Jump) 현상이 과연 얼마나 지속됐는지, 외부에서는 아직껏 아무도 모른다. 쥴릭이 갑자기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간 '수익 인식' 기준을 판매액(매출액)에서 매출총이익과 동격인 용역수수료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쥴릭은 그 이유를 '2001년12월 27일 제정된 기업회계기준서 제4호 수익인식' 조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 뿐이었을까?

2016년 수익인식 기준을, 종전 용역수수료에서 다시 판매액(매출액) 기준으로 환원했다. 형식적 사유는 물론 감사보고서 주석에 나와 있지만, 매출액을 감추었다가 다시 들어내며 밝히고 있는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위·수탁판매(consignment sale)의 성격을 이용한 전략적·의도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처음 수년 동안 쥴릭 매출액의 초고속 성장은 △쥴릭에 자사 제품의 완전독점 공급권을 부여한 다국적 외자제약업체 13곳 △쥴릭 참여 도매유통업체 42곳(처음에는 33곳)의 탈출구가 없는 불가피한 협력 △독점 공급권을 바탕으로 한 쥴릭의 고압적·일방적인 '거래약정서' 등의 합작품으로 분석된다.

쥴릭 초창기, 당시 도매유통업계는 쥴릭의 '시장 싹쓸이' 현상을 자신들의 자연도태 전조로 여기고 심히 두려워했다.

토종 도매유통업계는 2001년 비공식 조직인 '쥴릭투쟁위원회(쥴투위)'를 결성하고 한동안 맹렬한 시위를 벌였다. "Zuellic Go home"을 외쳤지만 초점은 한독약품에 맞춰졌다. 

그럼에도 당시 한독약품 L모 상무의 "기업이 수익증대를 위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쥴릭에 아웃소싱한 이상 도매상에 약을 직접 공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취지의 언중유골적 직설은 타오르는 쥴릭 시위대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의약품도매협회장의 무기한 단식투쟁까지 불러들였다. 

쥴릭 홈페이지 캡처
쥴릭 홈페이지 캡처

당시 쥴릭의 '크리스티안 스토클링' 사장은 몇몇 신문과 인터뷰에서 소신을 지혜롭고 밉지 않게 쏟아냈다. 쥴릭의 한국 진출에 대한 명분과 책무 등에 관한 초심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는 400여 곳의 의약품도매상이 있지만 제약사나 의료기관 또는 약국에 대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몇 안 된다. 쥴릭이 제약사의 물류비를 낮추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데 국내 도매상들은 경쟁력을 높일 생각은 않고 오히려 비난을 하고 있다."

△"국내 도매상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최근 일고 있는 국내 의약품도매업계의 반 쥴릭 운동은 의약품 유통시장의 선진화를 거스르는 것이다." 

△"제약회사가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에 전력한다면 쥴릭은 그 나머지 분야를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대행해주는 것뿐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여러 제약사의 유통과 영업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전국에 6개 물류센터와 170여명의 영업사원을 둘 수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 보면 비핵심 사업을 아웃소싱 함으로써 비용은 절감되고 효율은 높아지게 된다."

△"미국과 유럽 전역에는 각각 큰 세 곳의 의약품도매상이 있지만 한국에는 3백 곳이 넘고 국내 최대라는 백제약품과 동원약품의 점유율도 한자리 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독점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최근 지오영의 설립은, 국내 제약사들한테 우리 같은 회사가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는지 알려질 것이므로 우리 쥴릭에게도 이득이다. 경쟁은 동기부여를 한다는 점에서도 꼭 필요하다." "SK케어베스트·동부약품·성창약품 등을 합쳐 최근 탄생한 최초의 로컬 경쟁자 '지오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동안 외국계 제약사로부터 약을 받아 42개 도매상에만 공급했고 이 때문에 제외된 도매상들의 불만을 사왔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도매업체로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

쥴릭은 사태 수습책으로 공급 도매업체 수를 180곳으로 대폭 확대했다.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도매유통업체들은 모두 포함됐다. 소요 사태가 가라앉았다.

쥴릭은 토종 의약품도매유통업계에 긍정적인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오영'이 탄생됐다. △업체 규모의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물류 현대화 붐이 촉진됐다. △1988년 극렬했던 '백제약품 창원지점개설 저항 사건'이후 찜찜하고 눈치 보이던 시·도 단위의 월경 문제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전국 대상 영업 붐이 조성됐다. △거래약정서 및 내용 문구 그리고 토씨 하나하나까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이러한 쥴릭이 오늘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자가 처방이라는 것이 이달 5월말까지 '약국(8000여 곳으로 추정) 소매사업부의 직거래 조직(약 100여 명)의 철수'로 알려졌다. 대안은 '경동사'일 것으로 예상들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쥴릭의 하는 일은 17곳으로 알려진 외자 제약사들의 제품에 대한 도·도매 행위만 남게 된다.

20년 전 스토콜링 사장이 대변한 패기의 당찬 쥴릭의 초심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도·도매 행위를 목적으로 쥴릭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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