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도입된 임시출원 제도…미국 가출원과 동일 수준

지난 2020년 12월 히트뉴스 칼럼("입이 방정"...특허권 날리는 손쉬운 방법 '자기공지')에서 필자는 출원 전 발명을 공개하는 행위의 위험성을 다루면서, 우리나라의 '임시 명세서 제출 제도' (이하, '한국 임시출원 제도'라 함)나 미국의 '가출원 (provisional application) 제도'의 활용을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국내 기업들이 빠른 출원일 확보를 위해 미국 가출원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필자가 그동안 히트뉴스 칼럼을 통해서 언급했던 특허들만 하더라도 국내 31호 신약인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 (EGFR inhibitor) 특허, 그리고 툴젠의 CRISPR/Cas9 (유전자 가위) 특허 등이 미국 가출원 제도를 이용해 우선일을 확보한 것이다.

반면, 한국 임시출원 제도는 2020. 3. 30. 부터 시행되어 이제 막 1년 정도 지난 상황이라는 점 때문인지, 제도의 존재나 그 활용 방법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되어 이를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한국 임시출원 제도가 어떤 제도인지, 어떻게 활용할지, 주의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제약∙바이오 분야의 특허 실무자 관점에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과거에는 미국 가출원 제도가 유일한 방안

일반적인 상황에서, (특히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출원 의뢰 당일에 완성된 명세서를 작성하여 출원을 완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 임시출원 제도 도입 이전에는 형식적, 절차적 한계로 가공되지 않은 발명 자료 (예컨대, 논문 manuscript, 학회 포스터 자료, 연구노트 등)를 그대로 출원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고, 명세서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만큼 출원일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1995년부터 가출원 (provisional application)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위 제도는, ① 발명자 선언서 및 IDS 제출을 요구하지 않아 절차적으로 간편하고, ② 관납료 비용이 저렴하며, ③ 특허청구범위를 기재할 필요가 없는 등 명세서 형식적 요건의 제한이 많이 완화되고, ④ 출원일이 인정되어 우선권주장의 기초출원이 될 수 있으며, ⑤ 언어 제한이 없는 등의 장점을 가진다.

즉, 미국 가출원 제도는 위와 같이 절차적, 형식적 요건이 완화되어 있으므로 빠른 출원이 가능하다. 예컨대, 출원을 의뢰한 당일에도 제공받은 발명 자료를 가지고 별도의 가공 없이 출원이 가능하다. 따라서, 미국 내 기업들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빠른 출원일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미국 가출원 제도를 애용해 왔다.

 

대안으로 떠오른 한국 임시출원 제도

미국 가출원 제도와 같이 빠른 출원일 선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2007년에 '특허청구범위 유예 제도'가 도입되었다. 출원 명세서에 청구범위를 기재하지 않더라도 출원 자체는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청구범위 제출만 유예해 줄 뿐 다른 절차적, 형식적 요건들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2015년에는 영문으로 명세서를 작성하여 출원할 수 있는 '외국어 출원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이 역시 영문으로 명세서 작성을 할 수 있다는 것뿐이고 절차적, 형식적 요건이 완화된 것은 아니어서, 빠른 출원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 3월 도입된 임시출원 제도는 이러한 절차적, 형식적 요건들을 대폭 완화한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 출원인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그 상태 그대로 제출하더라도 출원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명세서 내용을 이루는 항목들에 대한 형식적 제약은 전혀 없고, 제출 파일 양식도 한글, 워드, pdf, ppt, 기타 그림 파일 등으로 다양하게 인정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로소 미국 가출원 제도와 사실상 동일한 수준으로 빠르고 쉽게 출원일 확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비용이나 절차적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국내 기업이 빠른 출원일 확보를 위해 미국 가출원 제도를 이용할 실익은 많이 감소했다고 생각된다. 특허청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2020년 하반기까지 임시출원 건은 총 2,534건으로 월 평균 360건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여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현행 한국 임시출원 제도는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고, 기존의 특허청구범위 유예제도와 외국어 출원 제도를 이용하면서 명세서 요건만 완화한 제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임시출원일로부터 1년 2개월 내(또는 제3자 심사청구로부터 3개월)에 누락된 청구항을 기재하거나 영문 출원의 경우 국어번역문을 제출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취하 간주된다.

다만, 임시출원의 본질적 측면에서 본다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의 명세서로 출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임시명세서에서 청구항을 추가하는 보정을 하거나 국어번역문을 제출할 실익은 크지 않다. 대신에 실무적으로는 임시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에 완성된 명세서를 작성하여 국내우선권주장 출원을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후속 절차로 우선권주장 출원이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임시출원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살펴본다.

① 실무자는 언제나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

임시출원은 대부분 급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면, 출원인이 특허사무소에 급하게 의뢰하면서 잘못된 자료를 전달한다거나, 임시명세서에 영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출원 언어를 국어로 지정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항상 차분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② 미완성발명은 아닌지, 우선권이 인정될 수 있을지, 인정된다면 어느 범위까지 인정될 수 있을지 항상 고려해야 한다.

미완성 발명은 선출원의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의 확립된 법리이다. 따라서, (명시적인 판례는 없으나) 미완성 발명의 상태로 임시출원을 했다면 이어서 우선권주장 출원을 할 경우에 우선권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임시출원일로 판단시점 소급효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때문에 임시출원된 발명이 미완성발명이 되지 않도록 각 발명이 속하는 분야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데이터는 포함해서 출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합성의약품이라면 적어도 물질의 구체적인 제조방법, 확인자료(NMR, MS 등)까지는 포함시키고, 의약용도발명의 경우 약리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in vitro 실험 데이터를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우선권이 인정되는 범위에 관해 대법원은 i) 선출원 명세서에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는 사항', 또는 ii) 통상의 기술자가 선출원 명세서에 '기재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임시출원 후 완성된 명세서로 우선권주장출원을 하더라도 모든 발명에 판단시점 소급효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필자=김경교 교연특허법률사무소 대표.
                                      필자=김경교 교연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정리하면, 발명이 공개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공개 전 임시출원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출원인은 우선권을 인정받고자 하는 발명의 범위와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실험 데이터 수준을 반드시 고려하여 임시출원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③ 존속기간을 고려해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선권주장출원은 최초 임시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에 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특허 등록을 받는 경우 존속기간은 우선권주장 출원일로부터 최대 20년까지이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임시출원을 빨리할수록 특허권의 존속기간도 일찍 만료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약∙바이오 분야는 통상 존속기간 만료시점에 갈수록 매출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어서 빨리 출원하는 것이 항상 정답이 되진 않으므로, 임시출원 시점을 결정할 때에는 사업화 계획 (예컨대, 의약품의 경우 허가받기 위한 임상계획, 제품 출시 예정 시점)도 함께 고려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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