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본사로 빠져나간 '지급수수료'가 직접 원인일 듯
경영지도 명목으로 자본금보다 많은 수수료 빠져나가

쥴릭파마코리아(이하 쥴릭)가 '완전 자본잠식(자본전액잠식)' 상태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자본전액잠식'이란, 결손으로 인해 출자금(자본금)이 완전히 다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본전(밑천)을 모조리 들어먹었다는 뜻이다. 기업체의 건강 상태가 가장 나쁜 급에 속하는 '종합 경고장'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쥴릭은 K유통의 잠을 깨웠던 주인공이었다. 지난 12일 금감원DART에 공시된 쥴릭의 2020년 감사보고서 중 재무상태표에 자본금은 137억 원인데 누적 결손금은 151억9834만 원으로 나타났다. 출자 자본금 137억 원을 몽땅 잃고서도 모자란 돈 14억9834만 원이 빚(부채)으로 채워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쥴릭은 노사 문제를 제외하고 매출액이 유통업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1조원을 넘어섰고 콜드체인(Cold Chain) 관련 사업 등 최근 전해지는 근황으로 볼 때 쌩쌩하게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쥴릭 손익계산서의 판관비 내역과 '주석'을 연결시켜 유심히 들여다봤다. 다른 도매유통업체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점이 발견됐다.

바로 '지급수수료' 계정과 관련된 주석 내용이다. 쥴릭의 2001년 감사보고서 주석5 '특수 관계자와의 거래내용'란을 보면 "당사는 주주회사인 쥴릭파마홀딩스리미티드로부터 마케팅 및 정보지원서비스 등을 제공받고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돼 있다.

20년 후, 올 4월12일 공시된 2020년 감사보고서 주석26 '우발부채와 약정사항'란에도 "당사는 Zuellig Pharma Holdings Pte Ltd 등과 사업개발, 회계ㆍ재무, 인사, 법률자문, 전략ㆍ영업 및 기타 지원업무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동 계약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돼 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2016년부터 기록돼 있다.

2001년과 2020년의 중간인 2009년 회계년도 감사보고서 중 주석15를 보면 "당사는 쥴릭파마홀딩스리미티드와의 계약에 의해 상표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으며 지급수수료에 계상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한국 쥴릭은 해외 본사 또는 특수 관계인 등에게 △마케팅 및 정보지원 △사업개발, 회계ㆍ재무, 인사, 법률자문, 전략ㆍ영업 및 기타 지원, 그리고 심지어 △상표사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이하 '경영지도'라 함) 받는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해 왔다.

따라서 이들 명목의 지급수수료는, 지난 20년간 다음 [표]와 같은 쥴릭의 지급수수료 총금액 1929억9800만 원 중 상당부분 포함돼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해외로 빠져나간 쥴릭의 지급수수료 총액은 과연 얼마나 될까. 외부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도매유통업계에서 지급수수료가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요양기관의 카드 결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0년경 이후라로 보인다. 이전에는 별로 문제된 적이 없다. 

2001년에서 2010년까지 쥴릭의 지급수수료 누계금액은 311억6200만 원으로 나타나 있다. 그 시기에는 카드수수료 문제가 별반 불거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중에서 최소한 절반인 50% 즉 156억 원 정도는 해외 본사 등에게 지급한 경영지도 명목의 수수료일 것으로 생각된다. 

2011년에서 2015년 주석에는 경영지도 등을 받고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감사보고서 '주석'에는 뜬금없이 경영지도 내용이 또 다시 나타났다. 수수료 지급 기록이 없는 2011년~2015년분은 제외한다 해도, 2016년부터 5년간은 적어도 2010년 이전에 지급됐다고 볼 수 있는 연 평균 15억6000만 원 이상의 수수료를 제공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합계 금액은 78억(15억6000만원×5) 원쯤 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쥴릭은 경영 지도를 받는 대가로 이제까지 20년 동안 아무리 낮게 잡아도 234억(156억+78억) 원 이상의 수수료를 해외로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쥴릭의 자본금 137억 원보다 73%나 더 많은 금액이다. 

설령 이와 같은 추정이 오류라 해도 분명한 것은 경영지도 등 명목의 수수료가 앞서 언급한 부채로 채워진 '완전 자본잠식' 초과 금액  14억9834만 원(누적결손금 151억9834만 원-자본금 137억 원)보다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경영지도 등에 대한 수수료 지급만 없었다면 한국 쥴릭의 지금과 같은 '완전 자본잠식'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결과론이지만 한국 쥴릭이 해외로 지급한 '마케팅 및 정보지원, 사업개발, 회계ㆍ재무, 인사, 법률자문, 전략ㆍ영업 및 기타 지원 그리고 상표 사용'에 대한 대가인 수수료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판단된다. 만약 그 지급수수료가 효력이 있었다면 쥴릭이 오늘처럼 '자본전액잠식'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쥴릭의 완전 자본잠식 사태의 직접 원인 중 하나는, 해외 본사 또는 특수 관계인에게 지급한 경영지도 등에 대한 '수수료'라고 분석된다.

쥴릭파마코리아는 1997년1월7일생이므로 올해 만24 세로 자립할 수 있는 성년을 훨씬 넘겼다. 특히 서양에서 성년의 의미는 부모의 보살핌을 벗어나 독립하는 시점이다. 24년 세월이라면 국내 풍토에 알맞은 의약품 도매유통에 관한 노하우(know-how)를 자력으로 충분히 쌓아 길렀을 만도 한 시간인데, 언제까지 Zuellig Pharma Holdings Pte Ltd 등에게 기대어 천금 같은 수수료까지 지불하며 효력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영 지도를 계속 받을 텐가.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