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 문제 해결보고엔 '방긋'...회피 보고엔 '이휴, 저걸 그냥'

KBS 개그콘서트, 조별과제 장면. 이 코너에선 말하려는 핵심은 사라지고, 발표자 개인 취향만 강조되는 장면을 희화화하고 있다. 회사라는 조직에선 매시각 보고를 통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지만, 핵심이 없다는 화난 목소리가 적잖게 넘쳐난다.
KBS 개그콘서트, 조별과제 장면. 이 코너에선 말하려는 핵심은 사라지고, 발표자 개인 취향만 강조되는 장면을 희화화하고 있다. 회사라는 조직에선 매시각 보고를 통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지만, 핵심이 없다는 화난 목소리가 적잖게 넘쳐난다.

"김 전무가 보고 하나는 참 잘 해." 회사라는 조직에서 '이 부사장'이 이 말을 하고 다닌다면 '김 전무 그 사람, 능력은 없는데 말은 청산유수'라는 평가 절하의 의미인 경우가 대부분. 라이벌을 깎아내리려는 점잖은 의도가 깔린 것이겠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오너나 CEO들도 '이 부사장'처럼 생각할까?

이 아이템에 대해 알아보려 접촉한 제약기업 오너나, CEO들은 "김 전무가 보고를 잘한다는 것은 업무 이해도가 높고, 책임감이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한 사례"라며 "그는 언변이 좋은 게 아니라 디테일이 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도적이며 종합적 접근법과 해결책을 갖춘 인물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빠른 기업 성장을 이뤄 업계로부터 주목받는 오너 A씨는 "임원이 보고할 때 문제되는 건 보고한 숫자가 틀린 때"라고 꼬집었다. 잘못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삼거나, 엉터리 숫자를 아무 의심없이 인용하는 경우 난감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 임원은 늘 단순 실수로 생각할 것이라고 혀를 찼다.

상세한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보고한 경우도 난감하다고 지적했다. "디테일에 약한 임원들이 종종 있죠. 비즈니스 진퇴가 걸린 사안이라 질문을 하게되는데 내용 파악이 안된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 임원은 숫자 오류나, 다테일 하나 모른 것 뿐이라고 쉬 생각할테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자 입장에서보면 그는 못 믿을 사람인 겁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죠. 다음부터 그 임원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기 어렵죠. 그렇게 눈 밖에 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발표자 스스로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장황한 보고도 최종 의사결정권자에겐 답답한 노릇. A씨는 물론 또다른 대기업 오너 B씨도 "용두사미형 보고, 다시말해 알맹이(요점)이 없는 보고는 빛좋은 개살구"라고 고개를 저었다. 여러 임원들로부터 크고 작은 보고를 수시로 받는 오너에겐 "그래서, 요거다하는 포인트를 말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B씨는 "제일 갑갑한 게 문제를 드러내놓고 겨우 하는 말이 예년엔 이렇게 했습니다에요. 창의적이지 않잖아요. 예년엔 이랬는데, 올해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얻어지는 건 이런 효과다, 리스크는 이 건데 극복할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말해줘야 임원이잖아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스 안에 갇히지 말고 밖에서 생각하려는 자세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해결책이 필요한 현안을 두고 남의 말하듯 하는 임원의 보고는 오너들이 최악으로 꼽는다.

최근 주목받는 중규모 기업 오너 C씨는 "대관 이슈가 생겼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회사 비즈니스에 큰 손실이 나게 생긴거죠. 그런데,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 건 저래서 안된다고 내게 하소연 하듯 말하는 거에요. 다 듣고 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그래서 어쩌라고? 그 문제는 당신이 푸세요라고 들려요. 당신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소리치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으로 시작해 외국계 제약사 국내 대표에 오른 D씨, 보고해보고 보고도 받아본 D씨라면 해법을 갖고 있을까? D씨는 "보고의 본질은 소통이니까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준비해 질문에 대한 사전 준비까지 하다보니 보스와 신뢰관계도 쌓이고 나머지 영역에서 소통도 쉬워졌다"고 그간 생존법을 주머니에서 꺼내 놓았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며 "보스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디테일과 큰 그림을 함게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다방면에서 예상 질문을 감안해 보고해야 하는데, "내가 보스라면"이라는 전제 아래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달리말해 의사결정권자가 듣고 싶은 말은 간과한 채 하고 싶은 말만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장 제약사에서 중역으로 일하는 E씨는 "억대 연봉을 받는 임원이라면 내가 회사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님이, 혹은 회장님께 의견을 여쭤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임원일 수 있겠느냐"며 맡은 일의 A부터 Z까지를 회사 입장에서 납득되도록 만들어 대표나 오너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정갈한 상차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조직에서 보고, 다시말해 소통이 원활하려면 오너, CEO도 유연해야 하는 것은 물론 평소 임원을 임원답게 키워냈어야 한다. '어쩌다 임원들'이 많으면 조직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상급자로부터 뭘 크게 배운적이 없다"는 F 초급임원은 "상급자는 나보다 경험이 많고 시야도 넓으니 보고하기 전에 조언 해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전혀없으니 생트집 잡힌다는 피해의식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실행하고 있는 업무를 중간중간 체크하며 팁을 보태주거나 관심조차 없다가 두루뭉술 보고를 요구해 놓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선배들에게 뭘 배우겠냐고 답답해 했다. 스스로 임원의 역할도 찾아야 겠지만, 임원은 뚝 떨어지지 않고 길러진다는 이야기다.

대학교수로 제법 큰 기업의 사외이사로 회사 발표장에 참석해 본 G씨는 "의사결정권자인 오너가 '3년째 같은 소리냐'고 힐난하는데 그 양반이 심하다기 보다 '혼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부분 임원들이 현황을 깨알같이 늘어놓다 그 안에 갇혀 허우적대다 흐지부지한 결론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제시하는 정보나 수치들은 최종 결론을 이끌어내는 상관관계이자, 인과관계여야 하는데 결론과 동떨어진 경우가 꽤 있었다고 기억했다. 3자 입장에서 볼 때, 발표하는 임원에게 면박을 줘 더듬거리게 만드는 오너도 안쓰럽고, 평가의 자리에 서면서 '나 이 정도 밖에 안됩니다'라고 고백하듯 부실한 임원의 준비도 한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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