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7]   의약품 안전성  ⓛ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780년 7월 28일 사절단이 북경으로 가는 도중 옥전현에서 하룻밤 묵게 되자, 박지원은 옥전현의 성안을 둘러본다. 한 점포에 들러 이름난 사람의 서화 작품과 소품을 보다가 벽 하나가 가득 찰 정도의 액자 형태의 백로지에 적힌 글을 읽게 된다. 박지원은 가히 세상에 둘도 없는 기이한 글이라고 평하고, 작자 미상의 글을 베껴 오는데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범에게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귀신 중의 하나인 이올이 이런 말을 했다. "동문 쪽에 먹을 게 있습니다. 그 이름을 의원이라고 하는데 갖가지 한약재인 풀을 머금고 있어 피부와 살이 향기롭습니다. 이 고기를 잡수시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범이 수염을 치켜세우며 낯빛이 변해, "의원의 의라는 글자는 의심한다는 의 자이다. 자기 자신도 의심이 나는 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시험해 보다가 해마다 죽이는 사람이 항상 수만 명이다. 많은 사람의 분노가 뼈에 사무치고 변해서 무서운 독으로 변했으니, 그 독은 먹을 수 없도다."라고 했다. [1]

오래전부터 약이 안전하다는 것은 복용해도 죽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1938년 미국에서 시판 전 의약품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식품의약품화장품(FDC)법 [2] 이 제정되었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에칠렌글리콜(diethylene glycol)이 함유된 설파닐아마이드 엘릭서제(sulfanilamide Elixir)를 복용하고, 10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론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FDC법이 처음 제정될 때 안전성의 개념은 단순했다. 이 법에 의약품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안전성 개념의 확장에 대비하였다. 과학적으로 적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안전성의 입증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1957년 10월 독일에서 탈리노마이드(thalidomide)가 신약으로 개발되어 46개국에서 허가되었다. 아무도 안전성 자료의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았고, 안전성의 입증을 의무화한 나라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1960년 9월 FDA에 탈리도마이드가 신약으로 허가 신청되었을 때, 1938년의 FDC법이 시행 중이었다. FDA의 심사관 프랜시스 켈시 박사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전임상자료의 문제점을 집어내었고, 또한 의뢰자인 Richardson-Merrell 제약회사에 지적된 문제점의 보완을 요구할 수 있었다. 

탈리도마이드의 허가를 신청할 때 제약회사는 이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동물실험을 통하여 안전성을 입증하였으며, 생쥐에게는 아무리 투여하여도 죽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약국에서 살 수 있도록 서독에서는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되었다. 임부는 물론이고 어린이 등 누구라도 복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약품의 안전성에 대한 켈시 박사의 안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1937년 설파닐아미드 엘릭서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도 사망의 원인 물질을 몰랐다. 심지어 주성분인 설파닐아마미드 때문인지 아니면 용해제로 사용된 디에칠렌글리콜 때문인지도 몰랐다. 당시 학생이었던 켈시는 원인 물질을 규명하는 동물실험을 도왔다. 이때의 경험이 안목을 키우는 실마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제약회사는 더욱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을 것이다.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은 생쥐에게 체중 1kg당 300mg을 투여하여도 실험군의 반이 죽지만 탈리도마이드는 생쥐에게 체중 1kg당 5,000mg을 투여하여도 죽지 않았다. 이 약물은 치사량이 없을 정도라고 주장했다.[3] 그러나 오히려 이런 의문을 품게 하였다. “어떤 물질도 그럴 수는 없다.[4] 체내로 흡수되지 않는 물질이 아닐까?” 약물의 흡수 및 배설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또한 탈리도마이드를 생쥐, 쥐, 기니피그 및 토끼에게 1kg당 100~500mg씩 30일간 투여해도 내약성이 좋았다는 자료도 제출하였다. 그러나 독성이 발현되기에는 짧은 시간이라고 판단하여 장기간 관찰한 독성시험자료의 제출을 요구하였다. 

1960년 12월  British Medical Journal이라는 잡지에 탈리노마이드를 처방했던 의사의 편지 한 통이 게재되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초신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구하였다. 탈리도마이드 100mg을 약 18개월에서 약 2년 넘게 처방한 환자에서 팔과 다리가 고통스럽게 저리는 말초신경염이 발생한 사례에 근거하였다. 

당시 의사들은 임부의 태반에 약물이 침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켈시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 말라리아 치료제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퀴닌이 태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심지어 토끼는 퀴닌을 빠르게 대사하지만, 임신한 토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더욱이 배아 토끼는 퀴닌을 전혀 분해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탈리도마이드 역시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의 신경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계속>

 인용 출처 

1. 김혈조, 열하일기 (돌베개) 393 (2010).
2. The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FDC) Act of 1938.
3. Jack Botting, Animals and Medicine: The Contribution of Animal Experiments to the Control of Disease (May 4, 2015). 
4. Stephen Phillip, How a courageous physician-scientist saved the U.S. from a birth-defects carastrophe, Medicine on the midway, (March 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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