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무파라면과 바이넥스 부산공장 GMP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들과 수십년 만에 만났다. 서울 외곽의 한 친구 야외 농장에 나타난 친구들은 젊은 시절 기세등등했던 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기를 굽고, 막거리를 마시며, 옛 이야기부터 최근 일상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럴 즈음 한 친구가 엇저녁 백종원의 무파라면을 유심히 보았다며 무와 대파를 썰어 냄비에 넣고 새우젓과 들기름, 다진 마늘을 가미해 달달 볶다가 물이 끓을즈음 면을 넣어 끓여냈다.

맛이야 닐러 무삼하리오. 기막혔다. 나나 친구들이나 백종원 씨의 레시피가 한치 어김없이 그대로 구현됐는지, 백씨의 라면 맛과 친구의 라면 맛이 같은지, 유사한지, 다른지 알 방법은 없었다. 다르다 한들 조금도 문제될 것은 없다. ‘백종원 레시피가 무파라면 등 안전에 관한 시행규칙’으로 규제되고 있지 않으니 무파의 양이나, 새우젓과 들기름, 다진마늘을 넣은 뒤 볶는 시간 등등은 친구의 감성대로 하면 그만인 까닭이다. 라면을 끓여준 친구 역시 백씨 레시피를 벗어나도 무죄다.

그런데, 무파라면 요리를 제약회사 공장(법적 용어, 의약품제조소)으로 옮겨 놓으면 어떻게 되나. 의약품 제조소는 정부 GMP 규정(우수의약품 품질관리기준) 아래 움직이는 법적 공간이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백종원 무파라면 레시피는 식약처 허가 또는 신고 사항이 되며 따라서 무, 대파, 새우젓, 들기름은 출처부터 칭량까지 허가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어느 단계서 재료(원료)를 넣을지, 불의 세기는 몇도로 할지, 냄비는 어떻게 세척할지 등등 전 조리방법과 과정은 엄격한 관리를 받게된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한 허가사항 준수는 매우 중요하다.  

뜬금없이 엉뚱해보이는 비유를 한 것은 최근 바이넥스 부산공장의 비상식적인 행태와 이로인한 파장 때문이다. YTN 등 보도에 따르면 부산공장 안에서는 허가사항 이행을 담보하는 제조지시서와 다르게 현장 생산 관계자가 임의로 완제의약품에 들어가는 주성분 용량을 가감한 의혹이 있다. 물론 보도에서 제기된 의혹들이 공식 기관의 조사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식약처는 즉시 진실 규명을 위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단순 과실인지, 작업과정 일탈인지, 의도적 조작인지 파악해야 하는 만큼 사정 당국 수사도 뒤따를 것이다.

동종의 제약산업계 의약품 제조시설 관계자들은 바이넥스 관련 소식들을 접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바이넥스 부산공장 사태가 전체 제약산업계의 바로미터처럼 비치거나, 국내 의약품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것을 극히 우려했다. 실제로 1977년 우리나라에 GMP가 공고된 이래 국내 제약회사들은 시설 투자에 주력하다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운영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GMP를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국내 의약품은 세계 시장에서도 믿을 만한 의약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의약품은 약효보다 생명 안전이 먼저 고려되는 특수상품이라는 점에서 품질 확보에 대한 정부 및 업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GMP 공장만하더라도 제조부서와 품질부서를 독립시키고 그 책임자들도 겸직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상호 견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과거 공장장 아래 제조부서와 품질부서 책임자를 두던 국내 제약회사들도 이제는 외국 제약회사처럼 품질부서 책임자를 본사 기술담당 부사장이나 사장 아래두며 품질 이슈를 예민하게 다루고 있다. 공장장은 어떻게든 발생한 문제를 제조소 안에서 해결하려는 속성이 있다. 본사에 보고해 질책 받지 않고 싶은 탓이다. 

결국 품질 이슈는 회사 최고 경영진 마인드에 달려있다. 예를들어 의약품제조소에서 A라는 의약품을 허가사항대로 제조하는데 타정이 터지는 등 문제가 생긴 의약품이 생산될 때 사장에게 즉시 보고돼야 한다. 이러니 사장의 판단이 결국 GMP 운영 능력의 모든 것이 되는 셈이다. "알아서 적당히 해결하라"는 최악의 지시를 내는 것도, "문제를 해결한 뒤 식약처에 변경 내용을 보고하고, 다시 생산하라"고 원칙을 지시하는 사람도 사장이다. 어느 제약사의 안정적인 품질은 회사 대표의 마인드만큼 유지될 수 밖에 없다. 시스템 위에 대표가 있는 회사에선 더 그러할 것이다.  

근래 K사의 사례처럼 허가사항과 다르게 제조한 사례에 대해 법원은 최근 "식약처의 해당 품목 허가취소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으며, 식약처 역시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개정령’을 8일자로 공포 시행 함으로써 거짓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의약품을 허가 받은 경우 당해 품목 허가취소 할 수 있게 됐다. 이로인해 "문제는 있으나, 약효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헛된 주장을 하고 처분취소 소송 등으로 버티며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제약회사들의 구태도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품질에 관한 이슈는 앞으로 더욱 강경하게 다뤄야 한다.

진위 파악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바이넥스 부산공장 사태는 이미 의약품에 대한 불신을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의약품 유통업체와 약국, 처방 의료기관에 이미 적잖은 불편을 야기했다. 식약처와 수사기관이 조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만약 'GMP 규정을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위반한 행위’가 드러나게 되면 식약처는 의약품 등 안전에 관한 규칙 별표 8 행정처분(행정처분 15일부터 전 품목제조정지까지 규정)을 적극 적용해 품질이슈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꼼냥꼼냥 품질가지고 장난치다가는 GMP 적격 승인도 취소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산업계에, 개별 제약회사 대표들에게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 GMP 적격 승인취소는 사실상 제약회사에겐 사망선고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전체 산업계를 살리는 일이다. FDA는 2014년 인도 랜박시 래버러토리스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생산금지 조치를 내렸다. 세계 모든 제약회사들이 FDA의 단호함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식약처도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단호함을 승복하도록 만드는 권위는 스스로 확보해야할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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