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HLB)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지켜보며

 

 

'나'는 신약개발의 성공과 실패를 함부로 기사에 표현한 적은 없었나?

16일 제약바이오와 증권 분야를 장식한 에이치엘비(HLB) 소식을 접하며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단독기사를 놓쳤다는 아쉬움도 아니었고, 진양곤 회장이 유튜브에서 상세히 밝히겠다는 입장 전달에 그치고 싶지도 않았다. HLB가 허위공시를 특정한 의도를 갖고 행했는지 아직 명확한 판단조차 서지 않는다. 회사 측 공식입장은 '허위공시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HLB가 한 일련의 일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친구같은 매체가 되겠다고 했는데. 친구가 잘못했다고 무작정 비난만을 퍼붓는 경우는 없으니. 일단 그들의 입장 속으로 들어가, 대안을 모색해 보고 싶었다. 물론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옹호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련의 취재 과정에서 대안 모색까지는 쉽지 않았다. 역량 부족으로 업계 전문가들에게 SOS를 청했다. 우선 회사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은 16일 오후 2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리보세라닙' 임상결과 허위공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출처=에이치엘비 유튜브 화면 캡처]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은 16일 오후 2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리보세라닙' 임상결과 허위공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출처=에이치엘비 유튜브 화면 캡처]

 

 #1. 에이치엘비 공식 입장 

지난 16일 경제지 <조선비즈>는 단독보도라는 타이틀을 달아 허위공시 혐의를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에이치엘비가 지난 2019년 항암 치료제의 미국 내 3상 시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허위공시한 혐의에 대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가 심의를 마치고, 증권선물위원회조치를 앞두고 있다. 이 보도에 대해 16일 오후 2시 진양곤 HLB 회장은 유튜브를 통해 회사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후 회사 홍보담당자와 다음과 같은 통화를 했다.

기자=임상 실패로 인한 회사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여기서 임상 '실패'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 결국 신약개발의 성공과 실패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혹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더 나아가서는 해당 의약품 시장에서 결정될 문제였다.)

에이치비엘비 홍보 담당자(HLB)=임상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우선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허위공시를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금융당국의 소명은 가능합니다. 둘째, FDA 외에 다른 곳에서 신약 승인 여부를 두고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다는 점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현재 FDA와 신약허가신청(NDA)을 위해 논의 중입니다. 다양한 적응증 확장을 비롯한 (다양한) 전략으로 항암제 개발에 임하고 있습니다.

기자=FDA로부터 NDA와 관련해 부정적 코멘트를 받은 사항은 무엇인가요?

HLB=재작년 10월 FDA와 사전 신약허가를 위한 미팅(pre-NDA meeting)을 가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FDA가 자료 보완 요청을 했습니다. FDA 요청에 따라 저희는 보완 자료를 준비 중입니다. 보완 자료를 제출했는데, 단순히 부정적 코멘트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신약 개발 실패라고 규정짓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일부 신약개발 실패라는 확정적 보도로 인해 회사 쪽 피해도 큽니다.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저희는 신약개발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자=이번 사태로 주가 하락 등에 대해 회사는 어떻게 대응하고 계시나요?

HLB=주가의 경우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따로 대응할 방법은 없습니다.

기자=임상 실패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 근거한 질문이지만 최종적으로 FDA에서 승인을 거절할 경우 회사 차원의 대응책은 있습니까?

HLB=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향후 FDA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투명하게 공개할 것입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있는 사실 그대로 전달할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실 그대로 전달할 회사 측의 마지막 말이 꼭 지켜지길 바라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2. 에이치엘비 3상에 의문을 품었던 것은… 

지난 2019년 9월 29일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됐고, 주가는 치솟았다. 에이치엘비는 2019년 30일 오전 9시 51분 기준 코스닥에서 전 거래일 대비 24.52%(1만1400원) 오른 5만7900원에 거래됐다.

고백하자면 혁신신약살롱 페이스북 페이지에 원문 그대로 올린 HLB 보도자료와 함께 다양한 신약개발 관계자들의 문제제기 코멘트를 접하지 못 했다면, 아마 나 역시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붙(복사하기, 붙여넣기)하는 기사를 썼을 것이다.

다행히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에서 에이치비엘비의 발표에 정확하게 코멘트를 해 주는 전문가들은 많다.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에이치엘비 3상 '성공'이라는 표현 쓸 수 있을까?>(관련기사 링크)라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회사 측에서 1차지표를 충족하지 못하고, 임상 '성공'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다양한 분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후 HLB는 끊임없이 다양한 학회와 글로벌 행사 참가소식과 논문 및 초록 발표 소식을 전했다. 회사 쪽에서 보내는 많은 보도자료들을 100% 꼼꼼하게 챙겨보지 못 했다. 끝까지 회사 측에 묻고, 전문가분들의 코멘트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대다수의 보도자료는 쓰지 않는 방식으로 여과 과정을 거쳤다.

끝까지 묻고, 또 묻는 작업을 게을리 했다. 어느 순간 HLB를 리보세라닙 도입의 주역인 김하영, 김성철, 최수환 그리고 한국투자파트너스가 떠난 회사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3. 공매도와 에이치엘비 개인 투자자 그리고 BEST ESMO 

아직도 주린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내가 처음 '공매도'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독자로부터 첫 메일을 받았을 때다. <에이치엘비 3상 '성공'이라는 표현 쓸 수 있을까?> 기사 작성 후, 처음으로 누군가 나의 기사를 읽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잘 읽었다는 업계 분들의 칭찬도 있었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오는 공매도 세력이라며 부정적 말투의 험담섞인 말들도 있었다. 새삼 경제지에서 일하는 선배들이 주주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해당 회사에 대한 내용을 알고도 못 쓴다는 것이, 이런 걸까 싶었다.

'공매도'라는 단어를 포함해 험담 섞인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기사에 '성공이라 할 수 없는데 키트루다 옵디보와 함께 BEST ESMO를 줬네요. 세계 종양학 석학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나 역시 궁금했다. 1차 지표도 달성하지 못한 연구결과에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상을 줬다는 사실이. 그래서 ESMO를 비롯해 다양한 종양학회에서 포스터뿐만 아니라 발표자로 여러 번 나선 분께 여쭤봤다. BEST ESMO는 어떤 기준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 분의 답변은 아주 명쾌했다.

 

"연구 혹은 논문 결과의 내용에 따라 주는 상의 개념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얼마나 일목요연하게 도표 혹은 그래프로 잘 표현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임상 결과와 별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보도자료를 다시 보니 회사 측에서도 BEST ESMO '수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경제지 선배 기자들만큼은 아니어도, 주주로부터 다채로운 험담을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진실을 알고 싶을까? 혹시 거짓된 정보라도 주가만 오르길 바라진 않을까?

 #4. '성공' 언급한 임상이 '실패'로...허위공시 이슈 

앞서 HLB 홍보 담당자의 말처럼 신약개발의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있는 곳은 규제당국 뿐이다. 좀 더 나아가 해당 신약이 출시될 경우 시장에서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먼저 성공과 실패를 논한 것은 회사 측이 2019년 9월 배포한 보도자료였다. 규제당국만이 논할 수 있는 성공과 실패 여부를 먼저 논한 것은 회사였고, (회사의 의도는 명확하지 않으나) 성공을 논한 보도자료로 회사의 주가는 20% 이상 상승한 것은 '사실(fact)'이다. 다수의 신약개발 임상에 PI로 참여한 연구자의 말은 다시 한번 새겨 볼 만하다.

 

"규제기관이 아니고, 스폰서(개발주체)가 임상시험을 비롯한 신약개발 전반에 대해서 성공과 실패를 논해선 안 됩니다."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 임상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에이치엘비가 배포한 보도자료. 임상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회사의 말대로 그들은 임상 데이터 자체를 조작해 발표하진 않았다. 1차 지표인 전체생존기간(OS)을 충족하지 못 했으며, 2차 지표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을 토대로 규제당국과 논의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다만 현 상황에서 언론의 신약개발 '실패'라는 표현은 경계하면서도, 1차지표를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임상 '성공'이라고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축포를 터뜨린 회사 쪽 과오도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허위공시 여부는 금융당국이 판단할 몫이다. 불성실공시(허위공시)는 상장법인이 증권선물거래법 및 유가증권시장공시규정에 의한 공시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공시불이행 ▷공시번복 ▷공시변경 유형이 이에 해당한다.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될 경우 증권선물거래소에서 ▷매매거래정지 ▷불성실 공시사실 공표 ▷관리종목지정 ▷상장폐지 등의 조치가 취해 질 수 있다. 이후 금융감독위원회는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에 통보할 수 있으며, 증권선물거래법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금융감독기관의 심의 결과 검찰 수사를 의뢰하면, 결국 허위 공시에 대한 '고의성' 여부를 따지게 되는데, 사실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이에 대해 제약회사 법무팀에 있는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상장사의 허위 공시가 있는 경우에는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게 됩니다. 법상 요건을 보게 되면, '주식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회사의 실적이나 현황에 대한 '거짓 사실을 표시하거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시'를 하는 경우입니다.

 

즉 '고의'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과실(실수)로 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위공시 여부는 검찰에서 수사해서 기소하고, 이후 법원 판결날때까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5. 업계 관계자들에게 요청한 SOS에 대한 회신 

그렇다면 에이치비엘비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피해만 입었을까? 아니다. 분명 그들은 임상 '성공'이라는 보도자료로 주가를 부양했다. 이제와서 '실패'를 언급한 보도에 대해 회사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는 회사 측에서도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에이치엘비에 꼭 전하고 싶은 업계 관계자들의 조언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제가 HLB 연구와 개발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전임상부터 다시 해서 적응증과 병용요법 전략을 다시 수립한 뒤, 임상에 진입할 것입니다. 보도자료 발표 시점(2019년)부터 이런 작업을 했다면, 새로운 프로토콜로 임상에 다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 면밀한 하위분석도 진행할 것입니다. 의생명과학은 세밀하고 복합적인 분야입니다. 때문에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와 냉정한 판단으로 신약개발에 임해야 합니다."(다수의 신약개발 임상시험을 리드한 연구자)

"이 문제를 특정 회사를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 제대로 정립이 안된 국내 기업설명회(IR)와 시장과의 소통(communication) 관련해 선진국들의 제도와 관행들을 차분히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것들을 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단일 신약파이프라인(single asset company)들의 경우 회사(및 주주들)의 운명이 단일 파이프라인자산(single asset)에 달려 있기 때문에 사실 기업 전략으로는 매우 위험합니다. 이번 기회에 single asset strategy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파이프라인의 중요성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동시에 외국의 큰 바이오텍 회사들도 처음엔 기술이전(licensing-out) 전략으로, 이후 다양한 자산(asset)들로 독자개발을 택하는 전략을 왜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 (아직 실력도 안 갖춰져 있는데) 임상 3상을 뛰어드는 것의 위험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임상개발을 잘하는 것이 매우 많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신약개발 전문가)

"분명 국내도 공시 관련 모범 사례가 있습니다. 일례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나 오스코텍의 경우(기술이전 반환이나 임상지표 미충족 등) 모범적으로 공시를 하지만, 이에 대한 내용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여기에 허위공시 등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회사들의 주가가 올라가고,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으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신약개발 연구자)

"의도적으로 허위공시를 했다면 주가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들의 진실성, 영속성, 기술이전 거래 등에 대한 감사 혹은 실사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바이오 업계 전반의 주가에도 영향은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미의 기술이전 반환 때처럼 전체 바이오벤처 주가가 요동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바이오벤처들이 워낙 많이 창업했고, 예전처럼 한 회사의 이슈가 전체 펀더멘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입니다."(금융업계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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