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편집인의 "제약바이오, 사람이 전부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_랜선(LAN線) 인터뷰

 릴레이 기획  글로벌 무대의 한국인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K-제약바이오’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이 제약바이오 발전과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사람을 빼면 K-제약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글로벌 무대에 선 한국인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땅을 벗어나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K-제약바이오의 든든한 자산이다.

 

<8> 박미경 대표 (원바이오메드/싱가포르)

X8 prototype 1호와 원바이오메드 박미경 대표.
X8 prototype 1호와 원바이오메드 박미경 대표.

싱가포르에서 차세대 진단기기 개발 스타트업 원바이오메드를 창업한 박미경 대표는 요즘 설렌다. 기술 하나만 믿고 스타트업에 도전한지 6년만에 첫 제품 출시를 앞뒀기 때문이다. 

유전자/핵산을 자동 추출해 전염병 진단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개선한 Xceler8이 그의 첫 제품. X8을 징검다리라고 부르는 박 대표는 30분 내 현장 감지로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봉쇄할 수 있는 혁신을 설계하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독주를 끊고 유전자/핵산 진단기기 분야의 ‘새 세대’가 되겠다는 그를 랜선으로 만났다.

 

안녕하세요? 박미경 대표님. 글로벌 한국인 랜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최근에 한국 다녀 가셨다고 들었어요.

"예, 회사 일 때문에요. 올 상반기 원바이오메드 첫 제품 출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품 생산을 한국의 BK전자가 맡고 있어요. 또 한국에서 첫 론칭을 할 계획인데 VigoLab과 독점 계약을 했거든요. 한국 파트너사들 만나 제품 출시 관련한 협의를 하느라 귀국했었습니다."

 

질문지 보내 드리고 한참 답이 없으셔서 궁금했어요. 창업 6년간 노력이 결실을 맺는 시점이니… 한참 답을 못하신 이유를 알겠어요. 싱가포르 씨엔알HG 김영미 박사 아시죠? 그 분께서 대표님을 글로벌 한국인 인터뷰이로 추천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싱가포르와 한국 양쪽에서 2주씩 격리해야 되는데다 말씀대로 첫 제품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워낙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양해 부탁드려요. 김영미 박사님은 싱가포르 한인과학기술자협회에서 7년 전 처음 만났어요. 싱가포르 헬스케어 업계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네트워크를 김 박사님이 사실상 이끌고 있거든요. 덕분에 저도 좋은 분들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2016년 설립한 원바이오메드(One BioMed) 이야기부터 해 볼게요. 지난 1월에 JW바이오사이언스가 원바이오메드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맞아요. 싱가포르에는 2010년에 왔습니다. A*STAR(과학기술청) 산하 IME(Institute of Microelectronics, 마이크로전자공학연구소)의 생체전자공학(Bioelectronics) 부서장으로 일했는데 그때 개발한 유전자 추출과 감지센서 소자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어요. 진단 테스트를 위한 첨단 플랫폼 기술개발 기업이라고 설명하면 되겠네요. '핵산을 추출하고 정화하는 자동샘플 준비 플랫폼'이 앞에서 말씀드린 저희의 첫 제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첫 제품에 대해.

"제품명은 Xceler8이에요. 줄여서 X8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조직, 세포, 혈액, 혈청, 균, 바이러스를 포함한 다양한 시료나 검체에서 유전자/핵산을 자동으로 추출/정제하는 기기입니다. 코로나 진단 때문에 요즘은 일반인들도 유전자 진단 핵산증폭검사(NAAT)나 PCR 검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에요. PCR검사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료에서 유전자 추출/정제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합니다. 기존 매뉴얼(manual) 제품은 손이 많이 가고, 자동화 기기는 여러 검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지만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어요. X8시스템은 이 과정을 빠르고 간편하게 개선 했어요."

 

X8시스템이 가져올 혁신은 무엇인가요?

"NAAT나 PCR 검사는 투자나 기술개발이 활발한데 반해 유전자/핵산 추출 쪽은 그렇지 못해요. 정확하고 빠른 진단을 위해 핵산 추출 단계 또한 효율적이고 빨라야 해요. X8시스템은 분자생물(molecular biology)이나 임상병리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이에요."

 

기대 매출? 시장목표가 궁금해요.

"글로벌 핵산추출 시장 규모가 2019년 기준으로 4조 정도인데 X8은 이중 2조 시장을 공략할 수 있어요. 올 해 한국과 동남아시아에 론칭하고 내년에는 미국, 유럽,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스타트업이라 마켓 점유율을 높이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5년 안에 전 세계 대부분의 분자진단 실험실이나 임상검사실에서 우리 제품을 쓰는 꿈을 갖고 있어요."

 

X8시스템을 이을 다음 혁신도 준비하고 있나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30분 안에 현장에서 바로 감지할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카트리지에 검체를 주입하고 Prescient(예측) 기기에 삽입하면 유전자/핵산 추출과 PCR 검사를 30분에 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실리콘 광소자 센싱 기술과 분자진단 기술을 통합한 차세대 플랫폼이에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또다른 팬데믹에 대비할 계획입니다. X8시스템은 이 제품으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어요."

2016년 4월 열린 One BiMed Kick-off party. 점박이 무늬 원피스가 박미경 대표.
2016년 4월 열린 One BiMed Kick-off party. 점박이 무늬 원피스가 박미경 대표.

 

뉴스를 보니 2019년에 시리즈A 투자를 유치 했어요. JW바이오사이언스도 그 연장선인 것 같고요. 또 다른 투자유치나 상장(IPO) 계획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150만 달러 규모의 엔젤투자와 ARCH(미국VC), 미래엔(한국VC), JW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450만 달러 규모 투자를 받았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Prescient 제품 개발을 위해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할 생각이지만, 상장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한 바 없습니다."

 

융복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아요. 일반적으로는 퓨전(Fusion)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우리 산업계에도 중요한 키워드가 됐어요. 대표님의 연구개발 활동도 융복합, 퓨전의 영역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미국 휴스턴대학(University of Houston)에서 고분자 박막 연구로 박사과정을 했어요. 그리고 독일 Max Planck Institute for Polymer Research 연구소에서 고분자 박막을 바이오센서로 쓰는 연구를 하면서 바이오 세계로 들어오게 됐지요. 그 후 1년 반 정도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에 있는 Biowarn이라는 생체무기(bio warfare) 감지기기 개발 스타트업에서 바이오 센서와 진단기기를 배웠어요. 싱가포르 IME에서는 반도체 기술을 응용해서 메디컬 디바이스나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부서에서 근무했어요. 여기서는 학제(interdisplinary)간 협력이 매우 중요했는데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Fusion 보다는 Interdisplinary이네요. 미국과 독일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연구경력을 이어오며 쌓은 대표님의 결실이요. 창업의 원동력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어요.

"그래요. 말씀 드린 것 처럼 표면 화학/고분자 박막 분야에서 석박사를 했어요. 응용분야를 찾다 보니 바이오 센서 표면 위에 박막을 까는 연구를 하게 되었고요. 이 과정에서 센서의 원리, 센서를 구동하는 기기, 박막 위에 있는 바이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조금씩 넓혀가면서 각 분야 연구자분들과 일을 하게 된 겁니다."

 

협업은 사실 무척 어려운 과정이잖아요? 분야가 다를 경우에는 특히.

"본격적인 협업은 Biowarn 부터에요. IME에 있었을 때는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에서 중재역할을 많이 했고요. 분야가 다르면 같은 얘기를 다른 용어로 하기 때문에 대화가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이나 연구 방식도 많이 다를 수도 있고요. 중재역할을 하게 되면서 양쪽을 다 이해하는 장점이 저에게 생긴건데, 이때의 경험이 창업에 많은 도움을 준 게 사실입니다."

2015년 11월 A*STAR IME Bioelectronics Program 직원들과 가진 Team Building Activity
2015년 11월 A*STAR IME Bioelectronics Program 직원들과 가진 Team Building Activity

 

서울 생활로 화제를 바꿔 볼게요. 홍익대 화학공학과 92학번이세요. 진단기기 분야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고 학부 때부터 생각하신 건가요.

"아니에요. 4학년 졸업논문 때문에 신동명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간 게 인연이 됐어요. 유기박막을 연구하신 신 교수님 밑에서 석사를 했고 박사는 미국 알라바마 주립대(University of Alabama at Birmingham)에서 했어요. 솔직히 유학까지 가서 박사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안했어요. 박사 할 만큼 공부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그 정도로 집안형편이 넉넉하지도 못했거든요. 특히 영어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어요. 그러니 유학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석사 이후 한국을 떠났잖아요. 영어를 특히나 싫어했다고 하셨는데, 해외로 나갈 결심을 한 특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IMF는 우리 시절 누구에게나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저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실 조교로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미국 지인 부탁으로 3개월 짜리 연구조교(summer research assistant) 추천을 하셨어요. 그래서 간 곳이 알라바마 주립대였어요. 박사 과정은 미국 교수님 조언으로 조교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험 준비를 해서 1999년부터 시작했고요. 그러다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연구실 그룹 전체가 휴스턴대학(University of Houston)으로 옮기게 됐어요. 저도 그 대학에서 2003년 박사학위를 했고요. 3개월 예정으로 서울을 떠났는데… 해외생활이 벌써 23년째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제일 싫어했던 영어’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해요. 극복 비결이 있다면 히트뉴스 독자들에게도 알려주세요.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게 도움이 됐어요. 당시 우리 과에는 한국인이 저 밖에 없었거든요. 영어를 공부로 생각 하지 않고 생활로 받아들이자 그렇게 마음 먹었어요. 문법이 틀리고 세련되지 않아도 과감하게 자꾸 써보는게 참 중요하더라고요. 영어자막을 틀어놓고 미드(미국 드라마)도 많이 봤어요."

 

원바이오메드는 싱가포르 IME로 부터 스핀오프(spin off)한 스타트업이잖아요. 한국에서 창업하기 위해 가능성을 타진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투자유치나 인재풀 등을 생각해서 창업 1~2년 후에 한국으로 본사를 옮길까 고려한 적이 있어요. 싱가포르는 스타트업이 많지 않아서 이코시스템(eco-system, 생태계)은 부족해요. 인재 모으기도 쉽지 않고요. 대신 싱가포르 정부 지원은 많은 편이고 A*STAR와도 협력하고 있어서 계속 남아있게 되었어요."

 

연구자에서 경영자로 변신한지 6년이 되어 가네요. 스타트업 경영자로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창업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쾌감도 있을 것 같아요.

"MBA를 한 것도, 비즈니스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니… 이제는 P&L(손익)이 뭔지도 알고, 백장 넘는 법률 계약서를 다 읽고 협상하기도 하고, 많이 늘었어요 하하. 제일 힘들었던 점은 투자유치 입니다. 제품도, 매출도 없이 기술과 확신만 가지고 상대를 설득해야 되잖아요. 이제는 고비를 넘겼지만, 직원들 급여 때문에 사비를 턴 적도 몇 번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디어가 제품화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했어요.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고, 그 제품이 환자를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뿌듯합니다. 연구만 할 때는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만나 함께 일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경영자로서 꼭 달성하고 싶은 구체적 목표는 뭘까요.

"미국이나 유럽 쪽 회사들이 진단기기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요. 아시아 기반 기업 중에서 아직까지 크게 성공한 사례는 없어요. 유전자 진단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세대를 이끄는 회사로 원바이오메드를 성장시키고 싶어요. 분자진단 실험실 뿐만 아니라 전염병 검진이 필요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우리 제품을 쓰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년 즐기는 스키여행(2016년 12월 미국 와이오밍주 Jackson Hole Mountain Resort)과 그리스 아테네 방문 당시(2017년 12월)
매년 즐기는 스키여행(2016년 12월 미국 와이오밍주 Jackson Hole Mountain Resort)과 그리스 아테네 방문 당시(2017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있으신가요?

"워낙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생활하다 보니 당장 한국에 돌아가 정착할 것 같지는 않아요. 원바이오메드 진단기기가 전염병 시대에 혁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어느 정도 닦은 이후, 저의 창업 경험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유전자 진단기기 분야에서 새 세대를 이끌겠다는 대표님의 목표를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예전의 기억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저도 좋았어요. 글로벌 한국인으로 히트뉴스에 소개된 만큼,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뛸게요. 일 할 때는 열심히, 놀 때는 더 열심히! 후회 없이 살자는 제 인생관 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박미경 대표가 추천하는 Next Interviewee?

홍콩과기대(The 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기술이전센터(Technology Transfer Center) 디렉터로 계신 김신철 박사님을 히트뉴스에서 뵙고 싶어요. A*STAR ETPL(Exploit Technologies Pte Ltd)에서 오래 근무하셨어요. 홍콩대에도 계셨는데 각 대학에서 나온 기술이전을 이끌고 계세요. 특허 라이센싱, 산학협력, 스핀오프 등 다양한 분야를 주관하셨기 때문에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계에 좋은 시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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