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헌약가(獻藥歌)'

"코로나 진단키트를 5G급으로 개발하고, 대량 진단을 통해 바이러스를 추격하며, 마스크 봉쇄로 인한 산소 부족을 견딘 끝에 K 방역을 이뤄 글로벌 스탠다드로 만든,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제 20년 도전과 모험의 결정체인 바이러스 치료제를 바쳐 코로나 청정국가로 만들겠습니다."

마흔 다섯에 바이오벤처를 세워 시가총액 60조원 기업을 이룬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CT-P59(성분명 레그단미밥)의 글로벌 임상 2상 종료에 즈음해 대한민국 사회에 '헌약가(獻藥歌)'를 노래하고 있다. 서 회장이 성공적으로 노래를 연주하고 나면, 시민들도 입을 모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을 기쁨으로 제창하게 될 것이다.  

서 회장은 최근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코로나 항체치료제 개발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내보내 시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한편 기업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기업인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와 같은 '본질적 가치'까지 되새겨 주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 블루시대 '서정진 타임'으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정책 당국부터 투자자, 일반 시민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중이다.

서정진 회장이 11월 1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라이트펀드가 후원한 '2020 헬스케어 이노베이션포럼' 기조강연에서 발표하고 있다.
서정진 회장이 11월 1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라이트펀드가 후원한 '2020 헬스케어 이노베이션포럼' 기조강연에서 발표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25일 글로벌 임상시험 2상 대상자(300명 목표에 327명 등록) 모집해 투약까지 마쳤다고 했다. 중간 결과를 조속히 도출해 올해 말 식약처에 긴급사용승인 신청을 한 뒤 내년부터 본격 투약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9월말 송도생산시설에서 치료제를 생산해 연말까지 환자 10만명 가량 치료받을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게  셀트리온의 설명이다.

2상 임상 대상자 확보를 위해 코로나 감염 환자가 줄줄이 나오던 미국 루마니아 스페인에 직원들을 파견했던 서 회장은 조만간 세계 10개국에서 임상 3상 시험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뒤 따르는 그의 말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마저 안겨준다. 국내 환자에겐 원가로, 해외엔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제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렇고, 셀트리온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선언이 또 그러하다.   

서 회장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이야기 했을 때 전통의 제약산업계는 무관심했으며 종종 그의 사업적 발걸음에 물음표를 달았다. 바이오 시밀러 비즈니스는 장치산업이자 결국 가격 경쟁이 유발돼 매력이 낮다고 판단한 만큼 서 회장의 도전은 공연한 짓으로 보였던 셈이다. 서른 넷에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을 하다 IMF 여파로 실직한 뒤 '유망하다'는 한 줄의 희망을 붙들고 바이오벤처를 세웠지만, 기존 산업계는 '자동차 하던 사람이 제약(의약품)에 대해 뭘 알겠냐'며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바이오 시밀러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로 서 회장이 항체를 떡 주무르듯하며 치료제를 운운할 때 제약(의약품)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전통 제약산업계는 어떻게 되었나. 몇몇 기업들은 신약관련 기술 수출을하고, 풍부해진 바이오벤처들과 협력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며 글로벌신약을 꿈꾸고 있다. 진전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은 내수 기반 제네릭 비즈니스라는 오래된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불행이라면 오르막이 점차 많아지고 가파라 웃음기 사라진 채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서정진 회장이 신약개발은 너무너무 어렵고, 대한민국 모든 제약 기업의 매출 총액보다 화이자의 연구개발비(R&D 비용) 규모가 훨씬 크다와 같은 좌절감 짙게 섞인 한숨 속에서 자라난 인물이었다해도 오늘의 셀트리온을 키울 수 있었을까?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바이오가 유망하다'는 트렌드 언어를 따라 바이오산업계에 들어와 실패하지 않으려 온갖 발버둥친 도전들의 총합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남들의 발자국이 덜 찍힌 산으로 서 회장이 사냥을 나갈 때, 마치 선배세대들이 드나들던 산에만 사냥감이 있는 듯 익숙한 사냥터를 맴돌던 전통의 제약기업들은 제네릭 생동자료나 자료제출의약품 임상자료를 공유하는데 열중하면서 '위탁생동 1+3'에 맞춰 비즈니스를 계산하고 있다. '제도와 정책에 순응하다가 스스로 갇혀버린 기업들'에게 도전정신이 있을리 없다. 통조림에 갇힌 고등어가 어떻게 바다를 유영할 수 있을까. 

물론 제네릭 비즈니스를 발판삼아 규모의 경제를 노려보는 전략이 나쁜 것도 아닐테고, 서정진 회장이 전통의 제약산업계 미래에 유일한 해답일 수도 없겠지만, 최소한 그가 남들과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꿈을 꾸며 도전해 왔다는 점은 전통제약 산업계가 새겨볼만 하다. 다른 한 측면은, 전통 제약계와 다르게 창업주인 서 회장이 코로나 시대 전면에 나서 변곡점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주목해 볼 점이다. 자신의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적극적인 역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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