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에서 탄생하고 심평원 관문거쳐 성장하는 의약품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  식약처 vs 심평원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모두 약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다. 식약처는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으로 의약품의 허가 업무를 관장하고, 심평원은 복지부의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식약처에서 허가된 의약품을 급여의약품으로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식약처는 약의 안전성과 유효성 그리고 품질을 검토하여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심평원은 의약품의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심사하여 급여의약품으로 등재여부를 결정한다. 식약처는 모든 약에 대해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지만, 심평원은 의약품마다 다른 기준으로 심의한다. 약가는 의약품을 허가할 때 무관하지만, 급여의약품으로 등재될 때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의약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약품은 식약처에서 탄생하여 심평원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소멸한다. 심평원의 심사를 거쳐 급여의약품으로 등재되어야 의료기관에서 처방되고 소비되기 때문이다.

한 때는 의약품도 유기물처럼 탄생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소멸하던 시절이 있었다. 의약품이 허가되면 제약회사는 의무적으로 급여의약품으로 등재를 신청해야 했고,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급여의약품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심평원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의료기관에서 처방되고 소비되었다. 흔히 이 제도를 negative list system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운영은 문제점을 낳았다. 약제비가 급속하게 증가하여 보험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2001년 4.1조원이었던 약제비는 2005년이 되자 7.2조원으로 증가하였다. 4년 만에 거의 2배로 불어났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지속 발전에 심각한 도전이었다. 더욱이 보험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었다. OECD 평균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 16.7% (2004년)에 비하여 거의 2배에 달하는 29.2%(2005년)였다.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을 감소시킬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부는 2006년 12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선별등재제도 혹은 Positive list system이라고 한다. 식약처에서 허가 받은 약 중에서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이 뛰어난 약을 선별하여 급여의약품으로 등재하는 제도이다. 궁극적으로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을 감소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정부는 5년 내에 건강보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을 24%까지 낮추겠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였다.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벽의 등장이었다. 식약처에서 의약품으로 허가 받더라도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이다. 심평원에서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급여의약품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심평원에서 검토하는 임상적 유용성은 식약처에서 검토하는 임상적 유효성과는 차이가 있다. 식약처에서 유효성 여부의 판단은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한다. 예를 들면 임상시험에서 가짜약을 투약한 대조군과 신청약을 투약한 치료군과의 효과 차이로 유효성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심평원에서 검토하는 임상적 유용성은 식약처의 유효성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신청약과 기존약과 효과를 비교하여 우열을 보기 때문이다. 급여의약품 중에서 적응증이 동일한 약제를 대체약제로 선정한다. 대체약제와 비교하여 효과가 개선되었다면 급여의약품으로 등재 후보가 될 수 있다. 효과는 동등하지만, 약물의 작용기전이 새롭거나, 복용의 편의성의 개선 혹은 안전성이 향상되었다면 임상적 유용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대체약제가 없다면 대체치료법 등도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  

식약처에 의약품의 허가를 신청할 때는 약가를 제시하지 않지만, 심평원에 급여의약품으로 등재 신청할 때는 약가가 중요하다. 대체약제 중에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비교약제보다 효과가 개선된 만큼에 상응하는 약가를 제안했는지 여부가 보험등재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를 비용효과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약의 효과가 개선된 만큼에 상응하는 약가가 제시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경제성평가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경제성평가의 결과로 제시되는 ICER 값으로 적절한 가격이 제시되었는지 판단한다.

사실 식약처에서 의약품이 허가만 되면 보험약으로 사용되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환자는 허가된 약 중에서 가장 효과가 뛰어나고, 가장 안전한 약을 투여받고 싶어 한다. 또한 투약의 편의성이 개선된 약을 선호한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약가를 원한다. 효과가 좋아진 만큼, 안전해진 만큼, 복약 편의성이 개선된 만큼에 상응하는 정도의 약가를 부담하고 싶어 한다.

심평원이 이런 역할을 대신한다. 임상적 유용성 검토를 통하여 기존의 약보다 효과가 더 좋고, 더 안전한 약을 찾는다. 그리고 비용효과성 검토를 통하여 개선된 만큼에 상응하는 약가의 결정을 유도한다.

심평원은 이러한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요인도 고려한다. 비록 비용효과성이 부족하더라도 사회적 요구가 강하다면 급여의약품으로 등재 여부가 고려될 수도 있다. 이에 비하여 식약처는 사회적 요구가 아무리 강해도 일정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의약품으로 허가하지 않는다. 심평원이 상대적 기준으로 심사한다면, 식약처는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