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문의 "적극 검토해야" vs 정부 "신중히 접근해야"

보건정책 학계 전문가들도 입장 엇갈려
종양내과-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토픽으로

정부는 '더 이상 신약 급여 등재기간에 대해 논란을 만들지 말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 논란은 지금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위험분담제도와 같은 예외적인 제도가 도입되고 심사평가원의 평가기간 단축노력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등재기간이 줄어들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건 성과다.

실제 김봉석 중앙보훈병원 진료부원장은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패널토론에서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장기간 미등재 상태에 있었던 항암제 등이 급여권에 들어오면서 평균 등재기간이 780일이 넘었는데,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460일, 310일로 굉장히 단축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임상전문가와 환자 관점에서는 갈증이 여전히 크다. 김봉석 진료부원장은 "그렇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쓰이는 항암신약에 대해서는 등재시점을 더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는데, 이런 요구가 결집돼서 지난해부터 정책이슈로 떠오른 게 바로 '선등재-후평가' 제도다.

전문가들의 관심도 뜨겁다. 새로운 제도가 제안될 때는 항상 나타나는 일이지만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진통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열린 두 개 학회에서도 이런 풍경이 만들어졌다. 바로 종양내과학회와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정기학술대회였는데, 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학회인만큼 분위기는 진지하고, 또 뜨거웠다.

종양내과학회 정기학술대회 세션=단초는 종양내과학회가 제공했다. 이 학회는 이날 오전 '암환자의 약제 접근성 확대의 길'을 특별 세션으로 마련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요은 중앙대약대 연구교수는 '선등재-후평가' 제도 도입효과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동철 중앙대약대 교수가 연구책임자인 이 연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등재-후평가'를 정면으로 다뤘다.

김요은 연구교수는 "이 연구는 항암신약 출시와 함께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성, 환자의 약제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분석 결과 A7 조정최저가 또는 9개국의 조정최저가 수준으로 항암제를 선등재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항암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동시에 환급을 통해 재정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선 등재 후 정해진 기간내 평가방법과 평가결과 적용방법 등 실제로 구현 가능한 방안이 추가 도출돼야 한다. 가령 후 평가에 대한 제약사의 수용성 제고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규정을 정비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패널토론에서 "환자들은 약제 신속 허가와 신속 급여 적용을 원한다. 귀중한 건보재정이 신약과 치료가 시급히 필요한 4기 암환자 등 중증질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측은 신중했다. 강희정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2016~2017년 항암제 급여율은 90% 이상이다. 검토기간도 150일정도인데, 기간을 더 단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심평원 단독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 하는 만큼 합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선등재 이후 재평가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을 때 환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우려를 먼저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정적인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정기학술대회 세션=이런 논란은 같은 날 오후에 열린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에서 재현됐다. 세션 주제는 '위험분담제도 성과와 개선방안'이었는데, '선등재-후평가' 논란을 비켜갈 수 없었다.

김봉석 진료부원장은 이날 패널토론에서 위험분담제 개선방안을 제시하면서 "오늘 열린 종양내과학회 이슈 중 하나가 '선등재-후평가'였다"며 "항암신약 등의 급여를 빨리 적용하기 위해서는 선등재한 다음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사후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방식이 현재 쏟아지고 있는 신약들을 필요한 환자들에게 조기 적용하는 길"이라고 언급했는데, 주제발표자였던 이태진 서울대교수가 이 지적을 놓치지 않고 쟁점화시켰다.

이태진 교수는 "위험분담제(RSA) 재계약과 재평가에서도 비급여 우려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선등재-후평가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정부는 제도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 의견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송영진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곽명섭 과장과 동일하게 역시 신중론을 폈다. 그는 "(RSA 재평가 과정에서 환자보호 조치를 놓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환자 접근성만 보고 (선등재-후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봉석 진료부원장이 바로 받아쳤다. 그는 "미국에서 신속심사로 등재된 신약의 64%가 임상근거가 부족해 탈락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만큼 환자들의 니즈가 컸다는 얘기다. 우리도 일단 선등재하고 사후평가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 대신 퇴출장치를 명확히 마련하고 합의하면 된다"고 했다. 안정훈 이화여대 교수는 "등재는 빨라질 수 있지만 위험성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재정측면에서는) 총액제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김성호 다국적의약산업협회 전무는 플로어 토론을 통해 앞서 종양내과학회에서 발표된 김요은 연구교수 모형과 조금 다른 접근법을 내놨다. 그는 "선등재-후평가가 위험분담제도나 경제성평가 면제제도 등을 대체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심평원 경제성평가 검토기간이 150일 정도 걸린다면 이 검토기간 동안 선등재해주고 나중에 약가가 정해지면 차액만큼 약품비를 정리하면 된다. 제약사도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나중에 '배째라'는 식으로 불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호 전무의 이런 설명은 환자단체연합회가 제안한 '임시약가'를 먼저 매겨 등재시키고, 나중에 평가를 통해 약가를 재조정하자는 주장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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